민중언론 참세상

마르크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기고]국민모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원칙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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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른바 「국민모임」은 전혀 논란과 논의의 대상일 수 없다. 167년 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미 통렬하게 비판한 각종 사회주의와도 거리가 먼 부르주아지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돈보다 인간”, “이윤보다 생명”, “신자유주의와의 결전” 등의 구호가 마치 “사회주의”인 것 같은 색깔을 갖고 있다 해도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2014년 12월 105인 선언과 2015년 2월 1050인 선언에 참여하고 있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치행동이다. 우리는 1050인의 이름과 “야권교체로 정권교체”, 그리고 또 다른 부르주아지의 분파인 “정의당”과의 보궐선거연대, 그리고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당적, 계파, 소속을 넘어 연대 단결하자”는 주장을 확인하고 더 이상 이들의 행보를 기다릴 필요 없이 우리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로 한다.

105인과 1050인 가운데 학계의 면면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변혁운동에 앞장 서 왔던 대표적인 지식인들을 발견할 수 있고 그들이 몸담고 있는 단체들이 우리사회의 진보적 지식인 운동의 견인차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민교협」은 특히 전노협의 정신과 투쟁에 연대하고 그 활동을 지지·후원하는 교수 조직이었고, 「교수노조」는 전교조 초기에 함께 하다가 분리하여 독립적인 노동자운동을 해왔으며, 「학단협」은 기존의 부르주아 학회를 비판하고 새롭게 구성한 진보적 학회들의 모임으로 학술운동의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또한 「맑스 코뮤날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모임으로 2년마다 대회를 열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벌여오기도 했다. 이들과 이들 단체가 지난 40년간 우리사회의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변혁적 사회운동의 토대를 마련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단체들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의 「국민모임」에의 참여와 주도는 앞으로 우리사회의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진보적이고 비판적 지식인 운동의 발전에 옳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 우려된다.


2015년은 2005년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의 모임”이 제안되고 그 토론과 활동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 결과의 하나로 2008년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이 결성되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탄압받고 2014년 10월 부르주아 법정의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지 6개월도 지나지 않는다. 더욱 자세한 역사적 평가는 조금 미루더라도 우리는 다시 한 번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지금에서의 의미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 주요 입장을 선언하였다. 첫째, “반정부당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적수들로부터 공산주의 세력이라 비난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좀 더 진보적인 반정부당이나 반동적인 적수들에게 공산주의란 낙인을 찍으며 비판받지 않은 반정부당이 어디 있는가? 였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는 공산주의가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목적, 의도를 공공연하게 세계에 밝히고 공산주의 유령이라는 동화(童話)에 당 자신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적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반동세력이 준동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활동을 강하게 압박한다 해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결연히 맞서서 투쟁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이해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 정당들과 대립되는 별도의 당을 결성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실천적 측면에서 개량적인 정의당 및 정치세력들과 결별하고 노동자계급 전체 운동의 이해를 대변하는 실천운동에 복무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하는 사회·정치 질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운동은 개량적 운동이 횡행하면서 노동자 민중운동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은 한국의 진보운동이 혁명운동으로의 본격적 발돋움을 요구하는 것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총단결로 노동자계급의 하나됨을 위한 계급의식 고취와 혁명운동의 분위기 고양에 매진해야 함을 의미한다.

지금은 어떠한 정치적 수사나 담론보다는 운동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문제의식만 공유하고 무거움을 안고 산산이 흩어지는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무거운 마음을 실천으로 승화시키는 정치적 자세와 태도야 말로 마르크스주의자의 본령이다.

국민모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목표로 하는 대중적 진보정당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코뮤니스트 선언」이 나온 이후 100년이 지난 1948년 10월 「국제주의(Internationalism)」38호에 게재된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의 본질과 기능」이라는 글을 참고로 소개하며 본 글을 마치고자 한다.


<부록>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의 본질과 기능」은 100년 동안의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모든 표현물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통해 미래(1948년 이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948년 이후 지금까지의 혁명적 노동자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비판적 재검토는 대체로 이루어졌으며 그와 관련된 문헌이 혁명적 코뮤니스트 기관지와 웹사이트에 실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다섯 개의 소주제 아래 29개의 태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소주제에서 정리한 핵심적 내용을 정리하기로 하고 완역한 글을 다음에 제출할 계획이다.

1. 사회주의와 의식

1) 한 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이었던 당이 퇴행한 결과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기구가 되었다.
2) 계급 개념은 경제적 분류가 아닌 현존하는 사회질서에 반대하는 역사적이고 정치적 개념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소멸에 대한 역사적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다.
3) 부르주아 혁명은 저발전의 생산력이 지배하는 인류의 전사(前史)이며, 반대로 사회주의는 계급의 모든 개인과 사회적 부와 모순되는 생산력의 발전에 근거한다. 사회주의 의식은 혁명적 계급 행동에 선행하고 그 행동을 조건화시킨다.
4)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성취한 실현 위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모든 시도는 본질적으로 실패할 운명이다. 역사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은 사회주의 의식의 형성과 같고 사회주의 의식은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2. 역사에서 계급당의 형성

5)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계급의 선택이나 위임이 아니라 계급 자체의 존재 양식과 삶이다.
6) 사회주의 의식은 자발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런데 그 의식의 발전은 자본주의 모순의 발전에 의해 조건화되고 제한된다.
7) 사회주의 혁명은 절대다수의 노동계급의 의식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의식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모든 노동자가 예속되어 있는 조건에 맞서면서 이루어지고 혁명적이고 역사적인 사명인 노동자의 의식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파괴하는 조건에 맞서서 이루어진다.
8) 당의 역사적 기능은 계급의 행동을 이끄는 참모부가 아니다. 당은 계급을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고 부르주아적인 의미의 “신뢰”를 요구하지 않는다.
9)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일이다.
10)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
① 사회주의는 필요성이다. 왜냐하면 생산력의 발전은 계급으로 분화된 사회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② 이 필요성은 피억압계층의 의지와 의식적 행위를 통해 실현된다.
③ 객관적 필요성과 주체적 의지로서의 사회주의는 목적을 의식하는 혁명적 행위로만 표현된다.
④ 혁명적 행위는 혁명적 강령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11) 프롤레타리아트 당 형성을 향한 경향은 자본주의 사회의 탄생과 함께 나타난다. 그 맹아가 마르크스의 「코뮤니스트 동맹」이다. 1851년 첫 번째 해산 결정은 유럽에서의 혁명의 실패와 반동의 승리 이후 였고, 두 번째는 1873년 파리코뮨의 실패 이후의 제1인터내셔널의 해소였다.

3. 혁명 투사의 임무

12) 제2인터내셔널의 경험은 반혁명적 상황이 두드러진 기나긴 시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유지가 불가능함을 확인시켰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의 참여는 당의 기나긴 퇴행만을 드러냈다. 코민테른에서의 공산주의당들의 역사는 혁명적 흐름의 부침 속에서 당을 방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
13)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35년부터의 「트로츠키 인터내셔널」 같은 당 그리고 이탈리아의 「국제주의 공산주의당」의 결성은 가공적인 것이었고 혼란과 기회주의의 기획일 뿐이었다. 낡은 강령과 의회주의, 조합주의 같은 전술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4) 당의 조직으로서의 존재의 붕괴는 계급 이념의 발전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강령적 정교함에 대한 긍정적인 비판작업은 옛 당으로부터 나오는 유기체를 통해 추구된다. 이것들은 후퇴의 시기에서 그리고 새로운 혁명적 고양의 시기에서의 미래의 당의 건설에 적극적 요인을 구성한다. 보기를 들면 「코뮤니스트 동맹」의 해산과 제1인터내셔널의 창설 사이의 마르크스의 분파, 1919년 코민테른 창설을 낳게 한 1차 세계대전 동안의 좌익 흐름, 코민테른의 퇴행 이후 혁명적 과업을 지속시킨 좌익 분파를 들 수 있다.
15) 새로운 계급당의 건설을 위한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사민주의나 스탈린주의로부터의 여러 흐름을 기대하는 것은 당의 개념에 대한 기본 토대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16) 노동자의 경제적 착취가 노동자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의식에서 절대적으로 불충분한 조건으로 나타난다면, 이러한 의식의 발전은 혁명적 투사들이 그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어렵다.
17) 지난 30년(1918-1948) 동안의 경험에 기반하여 우리가 범주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요구와 이른바 “민주적” 요구(의회, 민족자결권 등)가 아니다.
18) 우리는 계급운동을 결성하는 유일한 요소로 제시되는 자발적 투쟁 행위의 개념뿐만 아니라 그 운동의 단순한 피동적 반영으로서의 기계적인 당 개념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
19) 가공적이고 설익은 당건설은 계급의 유기체로서의 건설을 부정하게 만든다.
20) 제1인터내셔널의 경우 같은 조직 축소나 해소 같은 당의 소멸, 제2 그리고 코민테른 같이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경로를 통한 당의 소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의 시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를 두 번 경험했고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의 거대한 당들의 배신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았고 트로츠키와 보르디가는 공산주의 당의 퇴행과 괴물 같은 자본주의 기계로의 전환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투쟁에 대한 자아비판, 과거 개념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강령의 정련화, 의식의 성숙, 그리고 새로운 간부 및 투사의 형성이다.
21) 이 시기에는 국가자본주의, 쇠퇴와 같은 자본주의의 진화와 혁명의 실패 사이의 변증적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괴물 같은 국가자본주의체제로부터의 사회주의적 해방을 분리시키는 능력을 통하여 계급해법과 그의 실현을 위한 수단을 회복하는 것이다.
22) 현 시기는 혁명적 투사들이 소그룹으로 제한적 영역에서 선전 작업을 하는 동시에 연구와 이론적 명료화를 위한 끈질긴 노력을 해야 할 시기다.

4. 미래의 당

23) 당은 계급투쟁의 진화를 따르고 역사의 각각의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유기체로서 특정한 형식에 조응한다. 19세기 전반에는 국지적 투쟁, 교리 학파, 정차, 동맹의 출현이었는데, 가장 발전된 표현이 「코뮤니스트 동맹」, 그리고 「코뮤니스트 선언」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나타났다. 제1인터내셔널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유럽 주요국가에서 사회·정치적 투쟁에 효과적으로 진입하고 노동계급의 단일조직으로서 정점을 찍었으며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임금 노동의 경제투쟁과 사회·정치투쟁의 분화로 나아갔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와 쇠퇴의 시기를 열었으며 코민테른에서는 투사의 철칙이라는 조직적 수단을 통해 대응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24) 혁명이 조직문제를 포함하지만 조직의 문제는 아니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넓은 대중 속에서의 의식의 성숙이라는 이념적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직도 어떤 당도 계급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들의 과업이다.”
25) 당은 지시와 집행의 조직이 아니다. 이 기능은 계급의 단일조직에 속한다.
26)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의 시기에는 당을 전체주의체제의 「단일 당」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당은 국가와 구분된다.

5. 당의 내부체계(27-29)(생략)

우리에게는 67년 전에 정리된 마르크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에 대한 테제를 지금의 시점에서 재검토하고 앞으로의 30년을 조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이 시기 우리사회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세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동으로 토론하고 구성해야할 과업이다.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자, 혁명적 사회주의자, 코뮤니스트라면 그들이 현장의 투사이건 연구자이건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러한 과업에 매진해야 한다.
  • 제 3세력

    아이고, 마르크스 주의고 뭐시고 일단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정치에 참여해야 뭐라도 해볼거 아닙니까? 국민들은 이념논쟁 싫어합니다.

  • 보스코프스키

    바로 제 3세력님과 같은 식이 문제입니다. 예로부터 지지가 먼저가 아닌 역량이 먼저라고 한 말씀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작선집(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감수자 김세균 교수를 비롯한 자들을 모조리 타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