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인 절차를 거쳐도 불법으로 옭아매는 한국 사회에서 총파업은 민주적 절차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더라도 불법의 딱지를 피할 길이 없다. 한 번 예외는 있었다.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고 나서 그 다음 해 겨울에 벌였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에 맞선 총파업이 그것이다. 연인원 400만명 가까이 파업에 참가했고 조합원의 90%가 최소한 하루 이상 파업에 참가했다. 규모도 컸지만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한 파업이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 씨는 선진국에서 어디 노동쟁의가 있느냐고 처음에는 짜증을 부렸다가, 총파업의 규모와 국민의 지지에 놀라, 있는 걸 없는 것으로 말한 것은 잘못이었다며 직접 사과했다. 불법 파업을 합법으로 만드는 것은 파업의 명분과 규모와 국민의 지지에 달려 있다.
그 후 20년 가까이 민주노총 이름의 총파업 결의는 많이 있었지만 실패를 되풀이했다. 파업의 명분은 분명했지만 그 규모와 국민의 지지는 96년 총파업에 비길 수 없었다. 이번 총파업은 어떨까?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재벌 살리기 정책에 맞서는 투쟁의 명분은 넘친다. 모두 함께 살자는 총파업이다. 해고는 쉽게, 임금은 낮게, 비정규직은 확대하는 노동 정책을 바꾸자는 것이 목적이다. 노동자를 더 쥐어짜면서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포장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 공무원연금 개악을 중단하고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을 강화하라는 것, 최저 임금 5,580원을 1만원으로 올리라는 것이 주요 요구이다. 공공기관 노동자라면 공공기관에 대한 2단계 가짜 정상화 중단을 핵심 요구로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
정세와 요구로 보아 이번 투쟁은 피해갈 수가 없다. 문제는 총파업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의 규모이다. 민주노총과 각 산별조직들이 의결 기구를 거쳐 총파업을 결의했지만 직접 파업을 조직하고 실행해야 하는 단위노조들은 고민이 많다. 총파업에 대한 인식과 참여 경험이 간부들 사이에도 편차가 크고, 어떤 현장 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총파업의 이유를 설명하고 참여하게 하는 데 자신감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4월 8일까지 일제히 실시하고 있는 총파업 찬반투표를 서명이나 인터넷 투표 등으로 대신하고 있는 사례에서도 현장의 어려움이 묻어난다.
특히 공공기관 노조들로서는 1단계 가짜 정상화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각자 살길을 찾아갔다가 전열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조직력과 투쟁력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공공부문 산별노조들이 각각 투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양 노총 공대위도 재가동했지만 작년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의 성패가 2단계 가짜 정상화 투쟁의 시금석이라고 인식하고는 있지만 정작 공공기관 노조들은 총파업 투쟁 조직에 사활을 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고 있는 모양새다.
반면에 정부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2단계 가짜 정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3월 24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2단계 정상화 워크숍’을 열고, 1단계 정상화 대책의 성과를 자랑하고 정상화 추진 방향을 공표했다. 정부는 1단계 정상화를 통해 18개 기관의 부채를 24.4조원 감축했고, 302개 대상 기관 중에서 290개 기관이 방만경영 개선을 완료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부가 기관장을 해임하겠다고 협박하고, 성과급 지급 중단, 임금 동결 지침을 무기로 직접 노동조합을 탄압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단체협약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노동자들을 회유해 노동조건 개악 동의서에 서명하게 하고, 그것으로 지침을 이행했다고 정부에 거짓 보고한 사용자들도 있다. 정상적인 노사관계조차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1단계 가짜 정상화다.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척결을 내세웠지만 1단계 가짜 정상화가 노렸던 칼끝은 공공기관 노조를 겨냥했던 것이었다. 가스, 철도, 의료, 연금, 발전 등 공공서비스 영역을 이윤 증식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정권과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에게 저항하는 공공기관 노조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단체협약에 보장된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려고 한 것이 1단계 가짜 정상화가 노렸던 진짜 이유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부가 사용자들을 닦달한 결과, 임금과 고용 안정 등 단체협약의 주요 ‘합의’ 조항은 ‘협의’로 개악되었다.
[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
이렇듯 정부는 1단계 가짜 정상화를 통해 일단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공공기관을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모범적 선행 사례로 삼으려고 2단계 가짜 정상화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공공기관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성과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가득하다. 정부가 말하는 성과주의라는 것은 일 잘하는 사람에게 임금을 더 주고 일 못하는 사람은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제도로서 정부가 강제하려고 하는 것이 성과연봉제와 이진아웃제이다.
알다시피 성과연봉제와 이진아웃제는 2010년에 이명박 정부가 시도했다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묵묵히 일 해온 노동자들을 저성과자로 지목하여 임금을 깎고 심지어 일터에서 쫓아내려는 폭력적인 제도를 다시 강행하겠다는 박근혜 씨의 시대착오적인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공동대응 공동투쟁의 약속이 속절없이 무너졌던 1단계 가짜 정상화 저지 투쟁의 실패가 박근혜 씨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닐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이 실패한다면 해고요건과 취업규칙 개악 절차를 완화하고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법과 시행령이 바로 통과될 것이다. 공공기관 2단계 가짜 정상화의 1차 저지선이 뚫리는 것이다. 총파업 투쟁을 우회하여 2단계 가짜 정상화에만 대비한다면 소 잃고 나서야 외양간 고치겠다고 못과 망치를 준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공공기관 노조의 간부들은 총파업 투쟁이 2단계 가짜 정상화 저지 투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당장 조합원들에게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투쟁에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 고용과 임금을 지키고, 공공기관이 국민을 위해 제몫을 다하도록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