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MTU)'가 당시 민주노총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강당 가득 모인 1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2003~2004년 명동성당에서 380여 일의 농성투쟁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당시 노예연수제라 불리던 산업연수생제도 대신에 노무현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서 미등록 노동자들을 쫒아내려고 가혹한 강제 단속추방을 실시하였다. 이에 맞서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네팔투쟁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2003년 1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명동 성당 들머리에 농성 천막을 치고 먹고 자면서 투쟁하였다. 농성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 다수가 활동가로 성장하였고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의 연대를 이끌어내며 운동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이어 이주노조를 건설하였다. 이주노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을 하였다.
<이주노조 창립선언문 중>
우리는 다음과 같은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전면 합법화되는 노동허가제 쟁취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 근로기준법조차 사문화되어 있는 현장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 법에서조차 인정하고 있는 노동3권을 쟁취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동자들의 조직, 노동조합을 사수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 전국의 40만 이주노동자들을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한국 노동자들과 하나되어 어깨걸고 투쟁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주노조는 결성시기부터 시련을 겪었다.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아느와르 후세인 위원장은 5월 14일 새벽 1시 경 뚝섬역 출구에서 출입국단속반원들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되어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갇혔다. 그는 1년 여 기간 구금되어 있다가 건강 악화(우울증, 기억장애, 식사장애 등), 국가상대 손배소송 재판 등을 이유로 일시 보호해제 되어 다시 노조 위원장 활동을 하다가 2007년 8월에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다.
2007년 11월 27일에는 까지만 까풍 위원장, 라주 구릉 부위원장, 모니루자만 마숨 사무국장이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표적단속되어 연행되어 12월 13일 출국되었다. 이주노조는 즉각 농성에 돌입하여 99일간 투쟁하였다. 2008년 4월에 선출된 토르너 림부 위원장과 압두스 소부르 부위원장은 5월 2일에 또 다시 표적단속 되어 5월 15일에 출국되었다. 2009년 7월에 이주노조 총회를 통회 처음으로 고용허가제 지위를 가진 미셸 카투이라 씨가 위원장이 되었는데 정부는 그에 대해서도 가만두지 않았다. 노조활동을 목적으로 ‘허위취업’ 했다며 출입국이 2011년에 비자를 박탈한 것이다. 이 역시 위원장이라는 것을 이유로 한 표적탄압이었다. 노조에서 투쟁을 하며 소송을 했지만 행정법원 1심에서는 승소하였으나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는 패소하였다. 이러한 지도부 표적탄압 이외에도 간부,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단속과 추방이 자행되었다.
이러한 극심한 ‘씨말리기’ 탄압이 있었지만 이주노조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에 대한 반대 투쟁, 여수보호소 화재참사 규탄 투쟁,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 투쟁, 마석 대규모 단속사태 대응 투쟁, G-20정상회의를 빌미로 한 이주민 탄압에 대한 농성 투쟁 등 정부의 야만적 이주노동자 정책을 규탄하고 이주노동자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최근에도 사업장 변경 지침 개악 철회 투쟁, 퇴직금 제도 개악 철회 투쟁 등에 있어서도 다른 단체들과 함께 최선두에서 활동하고 있다.
[출처: 미셀 위원장의 모습] |
설립신고마저 거부한 정부, 8년째 판결 회피하는 대법원
2005년 5월 3일에 이주노조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이주노조의 설립을 알리고 합법적인 노조로서 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5월 9일에 서울노동청은 신고서 보완을 요구했는데, 일반적으로 노조설립신고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들이었다. 모든 조합원과 소속 사업장의 명단을 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노조는 이를 거부했고 노동부는 6월 3일에 “불법취업 외국인은 노동3권 행사의 주체로 볼 수 없다”면서 설립신고서를 반려하였다. 이주노조가 보완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노조 가입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을 주된 구성원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주노조는 설립신고 반려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2006년 2월 1심 판결에서는 패소, 2007년 2월 고등법원에서는 승소하였다.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매우 단순하고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나 당연히 보장되어 있다. 즉 아무리 미등록 노동자라 하더라도 근로를 제공하고 그 근로에 대한 임금수입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이므로 그가 귀국하거나 추방되기 전까지는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산재신청도 할 수 있고 체불임금에 대해서 진정도 할 수 있는 등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은 처지인데 노조 결성 여부만 예외로 둘 이유가 없다. 그래서 ILO(국제노동기구), UN 등에서조차 지속적으로 정부에 권고하고 있는 것 아닌가.
ILO이사회가 이주노조 관련하여 한국정부에 내린 권고
323차 ILO이사회(2015년 3월 12~27일, 제네바)가 채택한 374차 결사의자유 위원회 보고서 중
(a) 이주노조 설립 신고에 관해 이주노조에 유리하게 내려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정부가 제기한 상고가 8년째 계류되어 있다는 점을 규탄하며, 위원회는 다시 한 번 이주노조의 지위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이, 이주노조 설립신고 반려가 이주노조 간부 및 조합원에 대한 표적단속을 동반해 왔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더 이상 지체 없이 내려지기 바란다. 이 동안 위원회는 정부가 위원회의 결론,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부분을 대법원이 검토할 수 있도록 대법원에 제출하고,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판결문 사본을 위원회에 제공할 것을 촉구한다.
(b) 위원회는 다시 한 번 정부가 이 결론에 비추어 이주노조 설립신고를 위한 모든 노력을 지체 없이 기울이기를 바라며 이에 대한 세부 사항을 제공하기를 요구한다.
(c) 이주노동자들이 단결권을 실질적으로 부정당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위원회는 정부가 이러한 상태에 관한 심층 검토를 관련 노사단체와 협의하여 실시하고, 이를 통해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문제에 관해 교섭을 토대로 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관련 노사단체와 대화를 우선시 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위원회는 다시 한 번 이에 관한 진척사항을 알려줄 것을 요청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상고를 철회하지도 않고 있고, 대법원은 8년이 넘도록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2005년 노조 결성 시에도 ‘시기상조’라고 정부와 주류 언론은 입을 모아 반대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그 시기는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합법화 판결을 촉구한다
정부가 써온 전략은 이주노조를 법적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판결을 질질 끌면서 그 사이에 이주노조를 고사시키는 비열하고 야만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주노조는 꿋꿋이 살아남았고 꾸준히 활동을 하며 이주노동자 권리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더 이상 사회 분위기, 시기상조 운운하며 합법화 판결을 미뤄서는 안된다. 정부는 소위 다문화사회를 얘기하면서 이주민과 내국인의 조화로운 공존을 말하지만, 오히려 지난 십여 년 간 이주노동자를 억압하고 내국인과 분리, 분열시켜온 것은 정부였다. 노동력만 곶감마냥 빼먹으려 하고 무권리 상태를 방치하고 지속시켜 이주노동자를 사회의 가장 하층에 고정시키고 차별을 받는 집단으로 만들어 온 것이 정부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가 말하는 사회통합이나 다문화 공존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들이 집단화, 조직화되어 스스로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사회가 건강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진전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 한편으로 동정과 시혜로, 다른 한편으로 착취와 배제로만 일관한다면 갈등은 더욱 더욱 커질 것이다. 십년 뒤만 생각해보더라도, 국제결혼 가정의 2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여전히 빈곤과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조차 어렵다.
올해 연말이 되면 체류 이주민이 200만 명이 된다고 한다. 정부는 관광객과 투자자, 전문직들만 좋아하지만 이주민의 대다수는 노동자들과 결혼이주민, 중국동포들이다. 정부의 바램과는 달리 이들의 숫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주노조 합법화를 통해 이주민들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이 ‘이주의 시대’에 더 많은 긍정적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