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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노예로 보는 것은 어떤 자본이든 똑 같다

[불법사장 찾아 3만리](2) 순회투쟁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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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사수대 동지들이 새벽 야심한 틈을 타 동양시멘트 관리자가 ‘49광구’에 전격 투입됐다는 보고가 왔다. 집결지가 바쁘다. 상황 발생! 출동이다. 신광산(49광구) 입구에 집결한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들이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사측은 노동조합 조합원을 개별 설득하여 동료를 배신하고 작업에 복귀할 것을 강요했다. 관리자들의 비호 하에 설득된 일부 ‘조합원’이 작업재개를 위해 현장에 들어왔다. 조합원들이 막아섰지만 쪽수로 밀어붙이는 사측 폭력에 우리 바리케이드가 뚫렸다. 전쟁이 시작됐다.

막으려는 자와 들어오려는 자! 하지만 이 공장이 누구의 것인가?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은 신광산 개발을 시작한 93년부터 이곳에 있었다. 길을 닦고, 갱도를 뚫고, 석회석을 깼다. 장비를 손질하고, 닦은 것도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들이었다. 이 석회석 산의 최초 높이는 415미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100미터가 낮아진 320~280미터다.



그 긴 시간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은 안전한 현장을 만들었고, 괜찮은 일터가 되었다. 그런데 동양자본은 관리자를 동원하여 쫓아내려 한다. 그래서 공장의 주인이 자신의 작업장을 지키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은 전쟁을 선포했다.

고요

분진과 크레샤(분쇄기) 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공장이 고요하다. 신광산(49광구)에 정적이 흐른 이유는 이렇다.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들은 동일과 두성이라는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했다. 하지만 진짜 사장이 동양시멘트(대표이사 최종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고용노동부는 2015.2.13. 다음과 같이 진정결과를 통지했다.

동일(주), (유)두성기업은 사업주로서의 독자성과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결하여 동양시멘트(주)으 노무대행기간과 동일시 할 수 있을 만큼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동양시멘트(주)는 실질적으로 동일(주), (유)두성기업 소속 근로자들로부터 직접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결정하였는 바, 동일(주), (유)두성기업 근로자들과 동양시멘트(주)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우리지청에서는 동양시멘트(주)에 동일(주), (유)두성기업 근로자들과 근로계약 체결 등 직접 고용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하도록 통보(근로자 파견관계는 성립하지 않음)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판정을 이행해야할 동양시멘트는 동일(주)와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급기야 설 명절을 하루 앞둔 2015.2.17. 도급계약해지에 따라 사내하청노동자 101명을 집단해고 통보했다.

당사는 동양(주), 다물제이호(주)와 도급계약을 체결 운영한 도급사로 2015년 02월 28일자 원청도급사로부터 도급계약 해지 통보를 받아 2015년 02월 28일 이후론 당사는 더 이상 사업 지속이 불가능하여 근로관계계약 종료를 통고하오니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모두가 해고되자 당연히 공장은 멈췄다. 역설적으로 49광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되는 순간이었고, 해고 통지를 한 진짜 사장이 동양시멘트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멘트는 석회석을 주원료로 한다. 석회석을 쪼개서 트럭이 실어 수직갱도에 넣으면 1차 분쇄기가 작동하여 석회석을 잘게 쪼갠다. 이것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흘러 2차 분쇄기에 들어가고, 더 잘게 쪼개진 석회석은 압력으로 운영하는 컨베이어에 실려 생산 공장으로 들어간다. 무려 이 길이가 10킬로미터 정도다. 처음 구멍을 뚫고, 발파를 하고, 포크레인으로 트럭에 실어 수직갱도에 넣고, 분쇄기를 돌리는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연결과정에 있다. 동일시멘트와 두성시멘트가 존재할 수 없듯이 동양시멘트를 만드는 노동자는 동일(주)로, (유)두성기업에 속하 수도 없다. 그래서 박근혜가 임명한 이기권이 장관으로 있는 고용노동부도 동일(주)와 (유)두성기업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정했다. 한마디로 유령회사, 위장도급이다.

분노

울진에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10년 이상을 일했던 또 다른 노동자가 있었다. 이들은 지금 모두 해고자다. 왜? 한국수력원자력에게 파견법에 따라 2년이 초과한 날로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것을 검토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계약해지) 되었기 때문이다.

노무사에게 자문을 구해 한국수력원자력 차장에게 “우리가 알아보니 불법파견에 해당되는 것 같다. 회사도 알아보고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2주 후인 2010.6.2. 야간근무를 하고 있던 2명은 근무일지 결제를 받으러 가서 조기퇴근 명령을 받았고, 퇴근하는 길에 키 카드와 차량출입증을 강제로 빼앗겼다. 그리고 나머지 11명은 문자로 해고통지를 받았다. 이유는 업체와 계약기간이 2010.6.3.부로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3명의 노동자는 10년 전 입사한 이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고로 6월 3일까지 근로계약을 맺지도 않았다. 도급계약이 종료되었다는 하청업체는 아직도 울진한수원에 버젓이 업무를 보고 있고, 그들이 일했던 작업은 다른 노동자에 의해 대체됐다.

억울해서 밤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투쟁을 결심했다. 노동조합도 없었고,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었다. 상여금, 성과금도 없이 월 200만 원(퇴직시 2010년)만 받고 일했던 청춘이 아까워 텐트를 사고, 청년회에 있던 확성기를 빌렸다. 울진한수원 앞에 텐트농성을 하며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소송을 준비했다. 권영국 변호사를 찾아가 소송을 대리인을 요청했는데 확답이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올라가 확답을 받았다. 텐트 농성이 길어지면서 5명의 동료들이 소송포기를 조건으로 울진한수원 하청업체로 취업했다. 회유와 협박이 도를 넘었지만 나머지 8명이 똘똘 뭉쳤다. 한수원이 우리에게 했던 비인간적인 대우가 우리 마음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텐트농성이 일주일을 한 달을 넘기자 가족들이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직접적인 투쟁을 접었지만 소송은 이어가기로 했다. 분노가 내 삶을 바뀌게 했다.

절규

동양시멘트를 만들었던 위장도급 노동자가 말한다.

“작년에 눈이 2미터가 넘게 왔을 때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이 눈을 치웠습니다.”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험했던 길을 지금은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만든 사람입니다.”
“수직갱도에 돌이 끼어 막히면 목숨을 걸고 발파작업을 했습니다.”
“경력 25년에 반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시급은 5520원입니다. 200시간이 넘는 잔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너무나도 억울해서 가슴에 맺힌 말들을 쏟아낸다. 그렇게 25년을 살아온 인생이 아까워 정년을 7개월 남긴 형님들도 투쟁대열 맨 앞에 선다. 분진과의 사투, 3조 3교대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야간작업, 그래도 회사가 잘나가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고 살았던 그 수많은 시간에 아쉬움, 내 삶과 같았던 작업장을 들어갈 수 없는 그 상심이 긴 한숨과 함께 표현된다. 그런데 그런 고통을 나누고 함께 투쟁하자고 했던 20년 지기 동료가 회사 관리자의 보호를 받고 일하는 있는 모습에서 억장이 무너진다.

정년퇴직을 앞둔 형님에서 일감을 몰아주었던 동생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동생들에게 형님 한번 몰아주자고 설득했던 형님들은 더 미안해서 답답한 가슴을 쥐어짜며 20년 지기 동료에게 “제발 사람답게 살자”고 애원한다. 이 절규에 눈물이 난다. ‘해고’라는 살인무기로 형님과 동생으로 서로의 삶을 이해했던 노동자를 적으로 돌려놓는 그 비열함은 현대자동차나 동양시멘트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다. 자본에게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라 돈 버는 기계니까? 한 늙은 노동자가 외친다.

“우리는 더 이상 동양의 노예가 아니다. 직접고용 쟁취하자!”
“해고는 살인이다. 최종구를 구속하라!”


희망

죽을 것 같은 현실에도 언제나 살아갈 구멍은 있다. 그 빛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모든 것이 어둠이지만 희망을 느끼면 미세한 빛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10년을 투쟁을 한 노동자나, 하루를 투쟁한 노동자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하루가 쌓이고 쌓여야 10년이 되기 때문이다.

10년을 싸운 노동자와 17일째 투쟁하는 노동자가 만났다. 서로의 투쟁 경험을 얘기하고, 배운다. 왜 파업이, 투쟁이 노동자의 학교인지 바로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얘기가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듯하다. 이심전심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10년을 포기하지 않고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와 지금은 생계를 하고 있지만 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노동자가 만났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노동자를 만나서 신이 난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인데 거침없이 내 얘기를 한다. 눈치 볼 필요도 없다. 투쟁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멀리서온 노동자를 위해 식사를 대접하고, 다시 만나서 꼭 술 한 잔 하자며,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내일 일정이 있지만 자리를 뜨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것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여기, 저기, 도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단결하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를 갈라놓는 포기하게 만들어 계속 노예로 살 것을 강요하는 현대자동차, 동양시멘트, 한국수력원자력에게 질만큼 우리는 나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양시멘트 작업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기가 막힌다. 동양시멘트지부 지부장 최창동 동지가 "꼭 이겨서 이곳에서 일출 보게 해줄게요. 여기만큼 일출이 좋은 곳이 없습니다." 뿌연 모래 먼지가 걷히면 바다가 더 선명하게 보인단다. 진짜진짜 이쁠 것 같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덧붙이는 말

순회투쟁 후원계좌 : 농협 302-0800-6304-91 / 김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