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글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이미 수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노후 핵발전소 폐쇄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오늘은 오히려 탈핵으로 가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 혹은 핵발전 사고국으로 가는 헬게이트가 노후 핵발전소 하나가 아님을 말하려고 한다. 우리가 노후 핵발전소보다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될 마지노선 혹은 헬게이트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계획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부지만 선정된 신규 핵발전소, 그중에서도 영덕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신규 핵발전소다.
2015년 3월 지금, 영덕 신규 핵발전소 이슈가 특히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부지만 선정된 채 확정되지 않았던 계획이 올해 상반기에 수립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말이다.
삼척과 함께 영덕이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된 것은 핵발전소 사고가 난 2011년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12월 23일이었다. 시점과 수법이 악명 높은 악법을 날치기할 때, 딱 그때 같지 않은가. 핵마피아 입장에서 시작은 좋았는지 모르겠으나, 후쿠시마 이후 열린 국민의 눈과 귀는 매서웠다. 결국, 눈치만 보며 질질 끌던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신규 핵발전소를 유보하고, 이를 특혜로 득실거리는 화력으로 빼곡히 채웠다.
이어서 소위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마치 이명박 정부와는 다를 것처럼 뉘앙스를 흘리다가 역시나 2014년 1월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도로' 핵발전 확대를 천명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결과물, 그러니까 어디에 무슨 발전소를 얼마만큼 지을지를 담게 되는 것이 이번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전력정책심의회의 소위원회들은 활동이 거의 중단 상태이건만, 정부는 이미 영덕에 1,500MW급 핵발전소 4기를 새로 건설한다는 자체 계획안을 마련해두고 있음이 언론을 통해 사실상 폭로되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탈핵 시장을 선출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 유치 반대가 85%에 달한 삼척 대신 영덕에 몰빵하기로 한 것이다.
노후 핵발전소 폐쇄가 핵심은 아니지만 잠깐 이야기하자면 시민사회의 다음 요구는 고리, 월성 1호기 모두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폐쇄를 명시하자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덕을 용인하게 된다면 고리, 월성 1호기는 물론 다음 절차인 고리 2, 3, 4호기와 영광 1, 2호기까지 그것도 설계수명이 만료하는 시점에 모두 폐쇄한다고 해도 전체 핵발전량은 확대된다는 것이다. 아래 표는 용량만으로 본 것이지만 사실 노후 핵발전소는 이용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높지 않아야 좋은 거다!!) 신규 핵발전소 확대가 좀 더 뼈아프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 결정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조건이 있는데 하나는 전력수요 증가율이 점점 낮아져 지난해에는 0%대에 진입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6차 계획의 17개 발전설비 15,730MW의 준공이 지연될 예정이나 전력수급은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전기 소비가 더 늘어나지 않고 있고, 그래서 발전소를 저렇게나 많이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영덕 민심이라고 조용할까? 사실 삼척도 마찬가지이지만 영덕은 과거 핵폐기장 반대 투쟁을 격렬하게 했던 곳 중 하나다. 슬프게도 핵폐기장은 막아냈으나 지역은 철저히 파괴되었는데, 특히나 고립된 지역으로서 핵마피아들은 협박과 회유로 주민들의 핵발전소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억눌러 왔다. 그래서 삼척에서 탈핵 시장이 당선될 때까지만 해도 영덕의 주민들은 부러움을 속으로만 삼켰더랬다.
아니 어쩌면 그때 이미 영덕의 주민들도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척의 이어지는 주민투표 성사와 압도적인 핵발전소 유치 반대 결과는 기어이 영덕의 민심에도 불을 붙였다. 농민들이 먼저 조용히 들고 일어났다. 군의회에 핵발전소 유치 재검토를 위한 청원서가 접수된 것이다. 그 다음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군의회가 이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원전특위를 구성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한 번 더 기름을 붓는다. 삼척에서 밀린 조바심에 국무총리가 나서서 조기 진화하겠다며 영덕을 찾은 것이다. 그것도 하필 군의회가 원전특위 구성을 확정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비공개 간담회까지 불사하며 특별지원사업을 약속한 국무총리의 얕은 속을 오히려 영덕 주민들이 잘 꿰고 있었다. 미온적이던 군의원들까지 적극성을 띠며 원전특위 구성이 통과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약속한 특별지원사업 예산의 편성을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마지막 기름도 정부가 부었다. 위에서 언급된 ‘삼척 대신 영덕에 4기’ 폭로 말이다. 결국 지난 3월 2일 영덕에서는 영덕천지원전건설백지화 범군민연대가 출범했고, 이제 3월 14일(토)에는 ‘탈핵’을 내건 시내 행진을 앞두고 있다. 자, 이쯤 되면 이날 우리가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영덕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더 이상 핵발전소를 지을 수는 없다. 늘릴 수는 더욱이 없다. 게다가 숨죽이고 있던 주민들마저 움직이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올 기회일지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남은 주저함이 있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누구는 그래도 신규 핵발전소는 건설하기까지 막을 시간이 있지 않겠냐고. 과연 그러할까? 우리는 이미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를 소리 없이 받아들였고, 심지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신고리 3, 4호기조차 고이 가동시킬 판이다. 신고리 5, 6호기 반대에는 누구 나서는 이가 있던가? 사업이 결정되는 순간 한수원과 정부는 돈 잔치를 시작할 것이고 다시금 지역을 매수하고 협박할 것이다. 4호기만으로 끝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고립된 영덕에 또다시 원전제국을 짓지 못하도록 전국이 함께 막아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핵발전소를 확대하게 된다면 우리는 훗날 도대체 후쿠시마에서 무얼 배웠다고 할 텐가. 핵발전소 사고가 난다면 그때도 안타까워하며 예고된 인재라는 말만 반복해야 할까??
3월 14일 토요일, 영덕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