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지났다. 박근혜 씨의 지지율은 연휴 직전보다 더 떨어져 33.5%로 나타났다. 역대 대통령들의 설 연휴 직후 지지율이 통상 올라갔던 것에 비해 이례적이라면서 언론들은 호들갑이다. 이해할 수 없다. 서민들이 보기에는 박근혜 씨의 지지율은 아직도 턱없이 높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도 않고(세월호 참사), 노동기본권을 말살하고(전교조, 공무원노조, 특수고용노동자 등), 공안 탄압을 조장하며(통합진보당 해산), 부자들의 재산을 늘리고 지키기에 앞장서는(공적연금 개악, 담배세, 연말 정산 파동) 정권이 30%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다.
그러나 문제는 박근혜 씨의 지지율이 아니며, 지지율 등락에 울고 웃을 일이 아니다. 박근혜 씨에 대한 일정한 지지율은 진보 진영과 노동자들을 적대시하고 탄압한 결과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척결을 빌미로 박근혜 씨가 자행해온 가짜 정상화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박근혜 씨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준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2014년 한 해 동안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장들을 해임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협박하여 이른바 1단계 가짜 정상화를 마무리했다. 그 결과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복리후생을 축소하고 단체협약을 개악했다. 정부 지침대로 이행하지 않은 국립대병원 11곳과 출연연구기관 2곳은 2015년 임금을 동결 당했다. 가짜 정상화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결의했던 양 노총 공대위를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노조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한 채 지리멸렬하게 후퇴했고 개별 노조 단위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던 결과인 셈이다.
공공기관노조에 대한 임금교섭권 박탈에 이어 사실상 단체교섭권까지 앗아간 박근혜 정부는 숨 고를 틈도 주지 않고 노동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작년 12월에 연이어 발표한 정책들을 보라. 12월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 23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채택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원칙과 방향’ 기본 합의문, 29일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모두 노동자 서민 쥐어짜기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자들을 제물로 삼아 부자들의 재산을 늘리고 권한을 더욱 크게 하겠다는 것이다.
급기야 지난 1월 16일에는 공공기관운영위를 통해 2단계 가짜 정상화 계획을 확정하였다. 공공기관 기능 조정방안을 마련하고, 성과 연계 보수 및 조직운영을 확산하며, 공공기관 1차 정상화 기틀을 조속히 정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공공기관의 중복 기능들을 조정하고,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하며(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것(이진아웃제)이 핵심 내용이다.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듯 거침이 없고 망설임이 없다.
성과연봉제와 이진아웃제는 이명박 씨가 지난 2010년에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다가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기본연봉에 대한 차등과 누적식 적용, 성과연봉 차등폭의 대폭 확대를 통해 연봉의 20-30%를 차등하겠다는 당시 성과연봉제 지침은 공공기관 노조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간부 직원들에게만 일부 적용하는 것으로 슬그머니 후퇴했다. 상대평가를 통해 최하위 등급 10%에 두 번 연속 해당되면 퇴출하겠다고 한 이진아웃제는 사용자들의 동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고 좌초했다. 임금피크제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정부가 지침을 내느니 마느니 하면서 끌어오던 뜨거운 감자이다. 공공기관에서 이미 검증된 것들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1단계 가짜 정상화 과정에서 충분히 자신감을 얻었다는 얘기이고 동시에 공공기관의 노동조합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와 다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공기관을 그룹별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의 여지를 약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성과연봉제의 경우 공기업은 2015년 말까지 도입하고 준정부기관은 2016년 말까지 시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성과연봉제의 구조는 기관의 특성에 맞게 설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안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기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아웃제는 간부직에 대해서 우선 시행하도록 하여 공공기관의 분위기를 살피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2016년 정년 60세 연장에 맞추어 도입하도록 하되 경영실적 평가에서 반영하겠다고 하여 강제 시행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03년 김영삼 정권 이래로 20년 이상 공공기관의 공공적 공익적 기능은 신자유주의의 약육강식 논리에 따라 위축되거나 폐지되어 왔다. 그만큼 국민들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질은 떨어졌고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있었지만 승리는 드물었고 2014년 1단계 가짜 정상화 투쟁은 실패의 결정판이었다. 이제 다시 공이 노동조합으로 넘어왔다. 1단계 가짜 정상화 투쟁의 실패를 거울삼아 공공기관의 노동조합들이 제대로 투쟁을 조직한다면 박근혜 씨의 조기 레임덕과 맞물려 승산은 충분히 있다.
지난 3년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을 모두 겪었다. 지금 확실한 것은 반노동자 반서민 정책만 양산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상식 수준의 결의가 우선 필요하다. 2단계 가짜 정상화에서 다루고 있는 성과연봉제, 이진아웃제, 임금피크제 등은 모두 단체협약뿐만 아니라 취업규칙과 각종 규정들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집행부가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조건을 개악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조합원들의 정서, 실리적 이해타산 등을 핑계 삼아 정부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노동조합 대표자와 집행부가 조직적으로 결의해야 한다.
다음은 결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결의의 과정과 내용을 소상히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조합원들의 결의로 확산하도록 한다. 가짜 정상화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박근혜 씨의 무능과 실정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대응방안을 토론하고 수렴하도록 한다. 그 최선의 결과는 2단계 가짜 정상화 저지 투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정상화 투쟁이요 박근혜 씨 퇴진 투쟁이면 좋겠다. 그것이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