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우리의 내일을 위한 시간

[기고]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 3차 오체투지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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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월)부터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끝장 노숙투쟁에 돌입한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백일 넘게 장기파업을 벌이고 있는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월말까지 교섭을 타결하려고 했으나 경총과 협력업체 사장단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는 않고 시간만 끌었다. 결국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비정규직 지부 노동자들이 SK서린빌딩(본사 앞), LG 트윈타워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2월 5일부터 7일까지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 3차 행진’에 나선다고 한다. 이번엔 천여 명이 넘는 이들이 오체투지로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행진을 한다. 기륭여성노동자들이 처음 출발했던 때의 십수 명이, 2차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앞장서 100여 명으로 늘더니, 거의 열 배 가까운 진화다. 1, 2차에 함께 했던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스타케미칼, 한솔로지스틱스, 세종호텔, 그리고 얼마전 다시 직장폐쇄를 당한 삼성전자서비스 마산센터, 학교교육공무직 비정규직들 등 모든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나선다고 한다. 이젠 더 이상 지렁이 행진이 아니다. 거대한 용이 어울릴 것 같다.   


지난 1월 10일 나는 우리 인천 '기찻길 옆 공부방' 공동체 식구들과 2차 오체투지에 나선 노동자들을 응원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공동체와 지역에 일이 많고, 인형극 준비까지 있어 여유가 없었지만 한 나절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흰 민복을 입은 노동자 오체투지단을 만났다. 돌을 앞둔 아이는 엄마에게 업히고, 다섯 살 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는 오체투지를 하는 노동자들 곁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공부방 친구들과 함께 만든 손 피켓도 들었다.

"지렁이들이 꿈틀하기 위해 긴다", "잘못한 사람은 의자에, 죄 없는 노동자는 굴뚝에", "일자리를 돌려 달라"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오를 때쯤 사진을 찍던 어떤 이가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이런데 데리고 오다니..."

고등학생들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는데 옆에 있던 2학년 한울이가 말했다.

"어, 나 아무 것도 모르지 않는데. 나는 다 아는데."

나는 한울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한울이는 다 알아? 그럼 여기 왜 왔어?"
"오체투지하는 노동자 아저씨들 응원하러요. 노동자들을 회사로 빨리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는 거잖아요. 나도 다 아는데 저 아저씨가 무시해서 기분 나빠요."

한울이는 지난 한 해, 동갑내기 한선이와 함께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주말을 늘 거리에서 보냈다. 안산, 청계천, 시청, 광화문으로 이어진 문화제에 갈 때마다 아이들은 스스로 돗자리를 챙기고 촛불 아래서 읽을 책을 골랐다.

주말마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소풍을 가듯 서울로 올라가는 이유는 416광장에서 문화제를 하거나 때로는 해고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와 거리 농성에 함께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도 그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까닭은 그 길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추운 겨울 전광판에서 농성을 하는 씨엔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평택 쌍용차와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에 오른 노동자들의 싸움이 어른들만의 일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416을 기억하고, 노동자들의 싸움에 연대의 손을 내미는 그 짧은 순간이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른의 일, 아이의 일을 나누고, 노동자의 일, 유가족의 일, 철거민의 일 따위로 나누고 가르다보면, 우리 아이들의 내일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노동자라는 걸 안다. 공부방을 하면서 만난 아이들은 거의 다 노동자가 되었다. 가끔 교사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 공부방을 졸업한 아이들 중 성공한 아이가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또는 공부방을 졸업한 아이들은 주로 어떤 직업을 갖느냐고도 묻는다.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되물으면 십중팔구 좋은 직업, 좋은 학교가 따라온다. 나는 그때마다 나는 공부방 졸업생들이 건강한 노동자로,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쁘다고 대답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미래가 노동자라는 것을 실패로 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삶을 부정하게 되고, 자신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현재와 다르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그 노동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1월 10일 오체투지단이 지렁이처럼 보도블록 위를 걷고, 건널목에서 경찰과 부딪칠 때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무표정하거나 인상을 찌푸렸다. 거리를 지나던 이들의 반이 노동자였을 텐데도 말이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자꾸 미뤄지고,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저렇게 긴 시간을 싸워야 하고, 스타케미칼 차광호가 굴뚝에서 1년 가까이를 보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다.

올해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공부방 졸업생들은 대부분이 계약직 노동자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대학 4년을 마치고 꿈꾸던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업을 한 사회초년생의 연봉은 1600만 원이다. 출근 시간은 있으나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수당도 없다. 사회복지사 정규직을 찾던 졸업생은 구직이 뜻대로 되지 않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을 얻고도 계약직을 알아보기로 했다. 어린이집 교사와 유치원교사 1년 차 청년 둘은 최근 어린이집 사태에 CCTV 감시가 강화돼 하루 종일 죄수 같은 느낌으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울상이다. 아이들의 인권만큼 보육노동자들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간단하게 무시당한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위탁교육을 받고 미용사가 된 청년은 한 프랜차이즈 학원에서 하루 12시간씩 근무를 하지만 백만 원도 받지 못한다.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준 두 딸의 미래 역시 잘해야 무기 계약직이다. 이 청년 노동자들의 미래가 바뀌려면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외쳐야만 한다.

오체투지단이 경찰에 가로막혀 대치하고 있는 동안 이모들과 잠시 피해있던 6살 한빈이가 말했다.

"경찰이 풀어줘야 아저씨들 다시 기어서 절할 텐데, 그래야 아저씨들 집에 갈 텐데. 그래야 생일날 생일 편지도 받고 그럴 텐데."

그러자 동갑내기 래원이가 말했다.

"하느님이 위에서 다 보고 있는데 참고 있다가 내년에 경찰들 혼내주려고 하는 거예요. 왜냐면 하느님이 다 보고 있으니까요. 다 아니까요"

2차 오체투지 때 청소년들은 노동자들이 법을 지키며 평화적으로 하는 행진을 오히려 법을 어기며 막는 경찰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에게 국가가, 경찰이 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대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몹시 부끄럽고 안타까웠지만 우리 공동체 식구들과 아이들은 이번 3차 오체투지 행진에도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부모로서,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육자로서 우리 아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고 스펙을 쌓게 다그치는 대신,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고, 역지사지를 가르칠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은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는 해가 되기를, 우리 아이들이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씨앗을 뿌릴 수 있어야 한다.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설치수리기사들이 노동권과 인권을 되찾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생존권을 보장 받는 일은 바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장 받는 일이다. 이번 주말은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손을 잡고 길 위에서 함께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