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지난 3년간 벌어진 일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국회에서조차 수리연 김동수 소장의 해임과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관련부처인 미래부의 방조아래, 수리연 설립과 기관장 선임 등 수리연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한수학회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김 소장을 앞세워 기관을 정상 운영하라는 요구를 회피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기관 임무
수리연 설립은 정부의 필요성보다는 대한수학회의 요구가 시발이 됐다. 대한수학회는 정책연구를 통해 새 연구소가 연구허브 기능과 국가 R&D사업 수행 등 두 가지 기능을 할 것을 주문했다. 수리연은 다른 출연연에 비해 설립요구자인 수학계의 요구가 많이 반영됐다. 리서치 허브 기능(개방형 사업)을 기관주요 임무로 삼고 있는 출연연은 국내에서 수리연이 유일하다.
수리연 지배구조는 최근 3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김 소장은 2012년 9월 부임하자말자 연구소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준비와 능력이 부족했던 김 소장의 연구소 운영은 바로 문제점을 드러냈다. 독립청사 예산을 반납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필두로, 자신이 부당하게 해고한 두 명의 직원들의 문제가 원인이 돼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 소장의 진짜의도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김 소장은 개방형 사업과 국가 R&D과제 수행의 두 기둥 중에서 국가 R&D 과제수행을 과감히 포기하고 개방형 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지난 5~6년간 연구소가 땀 흘려 일구어온 주요 연구 사업들은 축소되고 내팽개쳐졌다.
연구원들 또한 차가운 거리로 내몰렸다. 연구소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삭감된 연구개발 관련 예산은 전부 개방형 사업에 쏟아 붓고 있다. ‘수학원리응용센터’는 이러한 김 소장이 추진한 개방형사업의 결정판이다. 센터장으로는 ‘소장 위 센터장’으로 불렸던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교수 박모 씨를 데려왔다. 그는 재직 시 노사관계 등에서 물의를 빚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수리연 직원들이나 출연연 관계자들 어느 누구도 수리연이 출연연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출연연의 지배구조나 기능조정 등 관련해 이견이 있지만, 개방형 사업이 기관 주요사업일수는 없다는 점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수학의 학문적 특수성이라는 말로 수학대중화니 인력양성이니 하는 명분을 내걸고서 출연연의 본래 기능은 도외시한 채 학계의 편의제공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에서 정부가 요구하는 연구는 하지 않고, 자신들이 속한 학계의 연구편의를 충족시키는 연구소로 개조하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연구자들을 초청해 주는 것을 출연연이 할 일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수학계와 수리과학연구소의 유착
사실 수학원리응용사업은 김 소장이 국내외 수학계에 푼 돈 보따리에 다름 아니다.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으로 인해 연구비 따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든 상황에서 학술행사 개최, 학자 초청, 연구원 채용 등을 해결해 주는 수리연의 존재가 수학계로서는 단비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설립의 실질적인 목적 중의 하나가 안정적인 연구수행의 인프라 확보란 점에서 수학계로서는 이제야 원하던 설립목적이 실현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계 내부에서 수리연이 풍비박산이 나든 말든 자신들의 연구편의만 추구하고 있는 일부 인사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정작 시급한 수학계의 현안은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충족시키는 이기적인 행태라는 것이다. 일부 수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일관되게 수학계 민원해결 창구 역할에 열을 올려온 김 소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학과 연구일선의 수학자 다수는 이러한 수학계 지도층의 행태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에 의하면 수리연 안팎의 무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 및 연구소 운영에 관한 강경 드라이브 정책을 구사하는 배경에는 김 소장의 개인의지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김 소장 뒤에는 대한수학회 내 기득세력이 자리 잡고 있으며, 김 소장은 수리연 운영위원회 등 각종 채널을 통해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아가 미래부, 수리연, 수학회는 수년에 걸쳐서 의견을 조율하면서 수리연을 국민의 연구소가 아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조해 오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장기적인 발전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영향은 고스란히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노동조합의 목소리에 향해 기관폐쇄 운운하는 등 되레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출연연, 어디까지 황폐해지는지...대표 사례 수리과학연구소
정상화의 희망을 담아
수리연 파행운영 실태는 한마디로 출연연 운영에 대해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공공기관이 황폐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공공기관으로서 매년 국정감사까지 받는 등 감시의 눈길이 결코 소홀하지 않음에도 이러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첫째,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기초과학연구원 감사와 이사회의 기능이 보완되어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수리연과는 독립적인 기관일 뿐이라며 수리연 문제에 개입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리연 내부에 대한 자체 감사기능을 전무하다. 특히 무경험, 무능력 인사들을 대거 채용한 이후 발생하는 운영미숙의 문제는 심각하다. 과거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담당했던 내부감사 및 이사회 역할이 절실한 실정이다. 둘째, 무능하고 소통이 불가능한 기관장과 경영진의 사퇴가 절실하다. 현 사태의 해결능력이 없는 현 기관장과 주요 간부들은 연구소 파행운영의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하며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한다.
셋째, 수리연 운영에 절대적 영향을 발휘하는 수학회의 과도한 간섭도 없어져야 한다. 수리연은 지난 역사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확립해왔다. 수학회는 설립에 대한 공로가 인정되지만, 더 이상 지금과 같이 과도한 방식으로 수리연 운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규정 재개정 등 실질적인 조치를 통해 과도한 개입이 규제되어야 한다. 넷째, 미래부의 적절하지 못한 관리감독과 부적절한 개입이 없어져야 한다. 수학계의 과도한 간섭을 제어할 곳은 주무부처인 미래부이다. 그럼에도 미래부는 수학계의 과도한 간섭을 제어하기는커녕 수리연 문제를 미봉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수리연 문제를 감독함에 있어서도 기관우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여섯째, 수리연은 다시 연구회로 재이관돼야 한다. 기관장의 독주, 학계의 과도한 간섭, 관련부처의 후원이 빚어낸 수리연 파행운영은 구조적으로 이러한 영향이 상대적으로 불가능한 연구회 재이관으로 가능하다. 현재 연구회도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수리연의 파행운영이 방치될 만큼 부정적이지는 않다. 일곱째, 수리연의 기관 미션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수리연의 임무를 설립초기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함으로서 기관장이 부임할 때마다 변경됐다. 수리연이 수행할 연구 과제를 재설정하는 작업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며, 미션 수행과 관련해 내부직원들과 출연연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되돌아보면, 고집불통의 소장이 자신을 선임해준 대한수학회와 미래부의 비호아래 연구소를 망쳐가는 일은 순식간이었다. 정부의 기초과학연구에 대한 정책적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우선 출연연인 수리연이 사단법인인 대한수학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황당한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기관장의 무한 권력에 대한 제동과 이를 제어를 하지 못하는 기초과학연구원 감사나 이사회, 주요한 순간마다 문제를 미봉하고 수학계와 김 소장의 편을 들어준 미래부의 행태 아래서 수학계 몇몇 인사들의 수리연 농락은 충분히 가능했다. 이점이 바로 수리연 파행운영의 문제가 김 소장 개인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2, 제3의 김동수 소장의 출현에 대한 가능성은 항상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