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 올라온 지 160일이 넘었다. 며칠 동안 비와 바람으로 굴뚝 위의 일과가 엉망이다. 며칠을 천막 안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다. 요리만화 식객부터 자본론까지 책장을 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체력에 신경을 더 쓰지만 쉽지 않다. 108배는 투쟁일수만큼 하루에 한번 씩 더 절을 하고, 걷기 횟수도 늘려간다. 어제는 심리치료를 하는 페이스북의 친구가 굴뚝에 방문해 전화통화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 중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코오롱 정리해고자 김혜란 동지와 통화를 했다. 최일배 동지가 단식투쟁을 한다고 걱정이다.
처음 최일배 동지를 만난 것은 2000년이다. 당시 구미지역은 화학섬유회사 노조의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장, 조직부장 등 직책별 모임을 했다. 잘 나가던 시절, 구미지역에서 집회를 하면 몇 천 명씩 모였다.
부위원장 모임을 하면서 만난 최일배 동지가 눈에 확 들어 왔다. 예의와 인간미를 갖춘 사람, 가끔은 유머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 일구이언하지 않는 동지. 그는 어용에 가까웠던 코오롱노조를 민주노조로 만들어 온 사람이다.
코오롱은 2004년 임단협을 하면서부터 민주노조를 길들이기는 술수를 썼다. 그 해 6월 중순에 시작한 64일간의 전면파업. 임금동결과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로 마무리했지만 사측은 그 때부터 반격을 시작했다.
부서장이 전 조합원을 면담하며 조직력을 무너뜨리고 그해 12월에는 사측이 원하던 인원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희망퇴직을 신청했는데도 계속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다음해 1월에는 노동조합에서 상여금 200% 삭감에 합의했지만 자본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민주노조의 불씨가 될 만한 조합원 78명을 정리해고했다.
이렇게 공장을 쫓겨나 10년 동안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투쟁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싸웠다. 노동자는 매일 일하고 매달 받는 월급으로 살아간다. 그런 노동자에겐 정리해고란 곧 죽음이다. 옛말에 사람 나고 돈 낳지 돈 나고 사람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10년을 싸운 노동자가 이제 곡기를 끊었다. 노동자는 노동자가 살려야 한다. 코오롱 불매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우리 지역에서는 팔공산과 금오산, 함지산을 등반하면서 코오롱 불매운동을 했다.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기아차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나눠주는 등산복을 코오롱제품으로 선정해 불매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오롱 투쟁은 멈출 수가 없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현실이 서글픈 시간이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 조합원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들여왔다. 하늘에 오르고, 곡기를 끊고, 목숨을 끊어야 하는 세상, 노동자가 일어서야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