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비가 쏟아졌다. 바람도 거세다. 일본 열도를 강타한 태풍 봉풍의 위력이 멀리 떨어진 구미의 굴뚝까지 영향을 미친다.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오늘로 굴뚝에 오른 지 140일이다. 따뜻한 5월 봄날에 올라왔는데, 얼마 안 있으면 겨울이다.
100일 넘게 고공농성을 했던 동지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몸이 망가진다고 했다. 좁은 공간이지만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꼼짝없이 천막 안에 쳐 박혀 있어야 한다.
텔레그램과 페이스북에서 구미공단 1호 사업장 KEC 폐업 반대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반도체 회사 땅에 백화점과 호텔을 짓는다는 것이다. 구조 고도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용지를 상업용지로 변경하도록 특혜를 준다는 것이다.
2010년 금속노조 구미지부 수석부지부장으로 있을 때 KEC지회 교섭에 참여했다. 4월 중순이 넘어 교섭 상견례를 했는데 금오산에는 눈이 내려 심상치 않는 예감이 들었다. 회사는 KEC홀딩스라는 신설 법인을 만들어 KEC에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해 돈을 빼돌렸다.
나아가 700여명의 용역깡패를 투입하고 해고 손해배상 가압류를 통해 민주노조를 없애려고 했다. 노동조합은 파업, 공장점거, 분신으로 저항했고,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5년째 투쟁을 하고 있다. KEC 조합원들은 공장 담벼락을 넘어 지역의 투쟁은 물론 전국의 연대와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에도 적극 결합하고 있다
KEC의 옛 이름은 한국전자다. 박정희 정권 때 구미공단 1호 사업장으로 10만 평의 부지를 헐값에 받았다. 박근혜 정권에 와서 그 부지를 팔아 이익을 챙기겠다고 한다. KEC는 반도체 제조업체로서 200여종의 유해 물질을 취급하는데 이곳에 대규모 상업시설이 들어서면 시민의 안전은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다.
KEC는 작년 구조 고도화 사업을 신청하고는 대상 부지에 있던 공장을 폐쇄했다. 2012년과 2014년 정리해고를 자행해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부산은 해운대2030프로젝트에서 보듯이 돔구장을 짓는다는 명분하에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KEC 구조고도화로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 몰릴 위기이다
구미공단이 섬유산업에서 전자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그리고 경쟁에서 도태된 폐업한 공장 부지가 많다. 방림방적 LG전자(구 금성사) 한국전기초자 대우전자 등 빈 부지가 널려 있다. 그런데 잘 가동하고 있는 KEC부지를 폐업해 노동자를 길거기로 내몰려고 한다.
KEC 자본이 구조고도화에 참여하는 이유는 이익창출이지만 뒷면에는 민주노조 탄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구조고도화가 승인되면 노동자의 일자리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사람 나고 돈 낳지 돈 나고 사람나지 않았다.
KEC지회 간부들이 지역을 다니며 서명을 폐업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자본이 더 이상의 헛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구조고도화 반대 투쟁에 같이 나서야 한다.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아 갈수 있도록 굴뚝에서도 뭔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