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정리해고 투쟁을 처음 알게 된 건 2년 전이다. 그때 난 8년이란 세월의 아득함을 먼저 느꼈던 것 같다. 8년이라... 어떤 힘으로 8년을 싸울 수 있을까. 8년을 복직을 목표로 싸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때 이후로 2년이 훌쩍 지나고 이제 10년째 접어든 싸움.
난 다시 그 긴 세월을 생각한다.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가면 그때 나는 무엇을 했었던가.
세상은 더딘 걸음이라 할지라도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나이가 들면서, 생활에 쫓기면서 조금씩 사라졌던 시기.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일은 나와 무관하다는 태도로 살았다. 세상의 벽은 저렇게 높고 견고한데 시민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내 가족 챙기기도 벅차고 힘이 드는데 세상은 그럭저럭 또 굴러가겠지 그런 심정으로 지냈던 시절. 가끔씩 뉴스나 신문에서 보게 되는 소식에도 무감동하게 지나치듯 흘려버렸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분노보다는 무력감이 더 컸던 그 때에는 몰랐었다. 세상의 벽은 너무 견고하다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뭐가 있겠냐고, 그저 애 잘 키우고 내 생활이나 똑바로 하면 그만이라는 나 역시 그 높고 견고한 벽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10년 투쟁 중 8년은 그런 싸움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몰랐던 그 시간 동안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은 단식을 했고, 송전탑에 올랐으며 청와대 앞 크레인 고공농성 등 할 수 있는 싸움은 다했다. 2년 전 처음 코오롱 투쟁에 연대라는 걸 하면서 내가 몰랐던 8년의 시간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가끔씩 문화제에 참석도 하게 되었고 작년에는 정리해고 투쟁 3000일 집회에 함께 했었다. 그러면서 그 긴 세월의 싸움의 의미를 조금씩 배워나갔던 시간들.
변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고개를 돌렸던 그 시간에도 끊임없이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런 우직한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나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그 마음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우리를 지탱하게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코오롱 투쟁에 연대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이다.
2013년 4월부터 코오롱스포츠 불매 운동이 시작되었다. 매장 앞 1인 시위. 불매 산행. SNS에 불매계란 인증사진 올리기 등 다양한 불매 운동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꾸준하게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도 내게 직함(?)을 준 적이 없지만, 코오롱 투쟁에 연대하는 시민, SNS 홍보담당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목요일마다 불매계란을 삶아서 꾸미고, 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올리는 일을 한게 1년이 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매사진을 봐 줄까, 이런게 힘이 되기는 할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거고, 그러면 코오롱제품을 살려고 하다가도 손이 멈칫하게 되고 이건 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언제까지 불매계란을 만들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 대답은 코오롱 싸움이 끝날 때까지였다. 내가 하는 일은 작은 실천일 뿐이지만 적어도 난 이제 고립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끔 중학생인 딸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무엇을 하고 살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10년 후면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때에도 정리해고라는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세상일 수는 없지 않은가. 노동이 천시되는 사회, 노동의 가치를 뭉개는 사회를 그대로 두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10년간 싸워온 코오롱 정리해고 투쟁이 단지 코오롱 해고노동자들의 싸움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리해고 문제를 우리 세대에서 풀고 가지 못하면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우리 자식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정리해고가 남발되는 사회를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이제는 사회적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었다. 그만큼 정리해고 문제는 일부 노동자의 문제이거나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오롱 불매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노사합의를 마음대로 깨고,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10년을 싸워온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나 한 사람이 불매운동에 동참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나 한사람부터, 내 가족부터, 내가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부터 코오롱 제품은 사지 말자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언제나 한 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큰 힘을 이루는 것이고, 그 힘으로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니까.
10년을 싸워온 코오롱 정투위 노동자들에게 나 한사람부터 코오롱 불매로 연대하자. 10년의 싸움이 11년이 되지 않도록, 이 긴 싸움을 이제는 끝낼 수 있도록, 정리해고라는 괴물 같은 제도를 없앨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