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박정식 열사에게 드리는 약속

[기고] 8월 31일 울산에서 행복하게 투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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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 우리 지회 사무장이었던 박정식이라는 35살의 청년이 집에서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박정식은 2004년 8월 25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입사해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한 순박하고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2010년 7월 최병승 동지에 대한 대법원판결,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보고 박정식은 2006년 8월 26일부터 이미 정규직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대법판결은 지켜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늘 웃으며 가장 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3년 후 2013년 7월 그는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그 3년 사이, 우리 지회 조합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0여 명의 조합원이 현장에서 용역깡패와 관리자들에게 폭행당해 다리가 부러지고 코뼈가 주저앉고 얼굴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울산, 아산, 전주 모두 합해 100명이 넘는 조합원이 해고당했고, 최병승과 천의봉은 296일 철탑 위에 매달려 목숨을 걸고 농성을 해야 했습니다.

3년 동안 현대차의 입장은 변한 것이 없고, 우리 조합원을 탄압하던 하청업체 어용 비정규직 1588명은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되었습니다. 투쟁하는 우리 지회 조합원들은 해고되고 징역살고 폭행당해 뼈가 부러지고 죽는데, 회사 측에 굽실거리며 우리 조합원을 탄압했던 비정규직 어용들은 정규직이 됩니다. 지난해 현대차의 당기순이익은 9조600억이고 박정식은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내가 박정식을 죽였습니다. 우리 지회 조합원들은 모두 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괜히 만들었습니다. 10년 전에 송성훈 동지가 월차 쓴다고 말했다가 칼에 찔렸을 때, 한 달 일하면 당연히 발생하는 월차가 근로기준법에 있는데,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법도 지켜지지 않는구나, 이대로 살다가는 라인에서 칼 맞아 죽겠다는 두려움에 노동조합 만들었는데, 그러지 말걸 그랬습니다. 정규직보다 힘든 노동, 적은 임금, 차별과 멸시의 눈빛 모두 그냥 감당하며 살 걸 그랬습니다.

감히 노동조합 만들어서 소나타와 그랜저 오른쪽 문짝을 다는 정규직 노동자와 왼쪽 문짝을 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은 사람이니 당연히 동일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꿈 따위는 꾸지 말걸 그랬습니다. 법에 있는 월차도 안 지켜지는 현대자동차에서 감히 파견노동은 불법이라고. 대법원 판결이 났으니 이제 우리도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비정규직 주제에 법이 지켜질 거라고 꿈을 꾸다 우리 정식이가 죽었습니다.

동지들, 이렇게 살아온 것이 10년입니다. 그런데, 정식이가 죽었고 영안실에 넣어둔 채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며 41일.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를 냈다가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박정식 열사가 죽은 후 열사의 영전 앞에서 통곡하며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 하늘에서 정식이는 웃으며 나를 보며 응원하고, 동지들을 보며 웃을 사람입니다. 정식이를 위해, 나를 위해, 조합원동지들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 우리 모두를 위해 행복하게 투쟁하겠습니다. 그것이 박정식 열사가 바라는 것이고, 행복하게 투쟁하겠습니다. 이것이 박정식 열사께 드리는 저의 약속입니다.

8월 31일입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그것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꿈이 되어버렸습니다.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고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지난 10년 동안 현대자동차 울산, 전주, 아산의 조합원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꿈이었습니다.

8월 31일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오십시오. 가장 비천한 노동자들과 한편이 되어 놀아주십시오. 겨우 정규직이 되려고 목숨 거는 바보 같은 조합원들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규직이 되려면 노조 탈퇴하고 회사 편으로 줄서면 되는데, 똑똑하고 계산 빠른 것들은 그렇게 하는데, 그걸 못하고 올바른 것, 정의와 의리 때문에 죽을지언정 동지를 배신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조합원들이 동지들을 기다립니다.

8월 31일, 울산에서 동지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미 2005년에 죽은 류기혁과 아직 장례도 못 치른 박정식이 만납니다. 296일 철탑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최병승, 천의봉이 만납니다. 10년을 투쟁하여 우리도 사람임을 스스로 검증해온 울산, 전주, 아산의 3지회 조합원들이 동지들을 기다립니다. 동지들, 우리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다. 동지들과 만나 서로 어깨를 두드리고 격려해서 한바탕 놀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우리의 꿈을 마침내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우리가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동지들, 8월 31일 울산에서 동지들을 기다리겠습니다. 8월 31일 울산에서 동지들과 행복하게 투쟁하겠습니다. 이것이 박정식 열사에게 드리는 저의 약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