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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조합원 탈퇴서를 손에 쥐고서

[기고]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노조가 의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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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걸그룹 티아라의 멤버 함은정이 SBS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에 출연이 확정되었다가 촬영 직전 퇴출당한 일이 있었다. 함은정 측은 이미 ‘다섯손가락’의 배역을 소화해내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배역 연구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돌연 하차를 통보받았고 이면계약서까지 요구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는 함은정 조합원의 부당한 하차에 대해 SBS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 공방에서 쟁점이 된 것은 함은정의 노조가입일이었다. ‘다섯손가락’ 제작진이 함은정에게 하차를 통보한 날이 7월 21일, 함은정이 한연노에 가입한 것이 22일. 따라서 하차 통보 이후에 노조에 가입한 것이며 한연노 측에서는 방송국에 대한 영향력을 더 확보하기 위해 함은정이라는 이슈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의혹이었다. 하지만 이 논란에서 함은정의 노조가입일이 하차통보 전인지 후인지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가입 이전과 이후에 따라 보험혜택이 적용되는 것처럼 노동자와 노조와의 관계가 그러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노조가입일이 쟁점이 된 것인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운동의 관점 혹은 노동의 본질 등과 같은 이야기들을 일단 접어두고 생각해볼 때 노동조합이 가지는 가장 말초적인 역할이 노동자를 조직하고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확대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명확히 드러낸 일이기 때문이다.

[출처: 뉴스민]

이에 대하여 지금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는 어떠한가. 2010년에 이어 또다시 노동부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수정·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대법원에서는 동일한 규정을 들어 전교조가 비합법조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대통령 후보 TV토론회에서부터 타 후보에게 전교조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 있지 않느냐고 발언한 박근혜 집권 이후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포함한다면 비합법조직으로 간주하겠다는 외부의 압박은 전교조를 강도 높아 몰아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인다면 이제까지 ‘해임교사’라는 이름으로 싸워온 전교조의 활동가들에게 전교조는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정규직 노동자 혹은 국가공무원의 비율이 매우 높은 전교조는 상대적으로 노골적인 탄압은 타 노조에 비해 드물었지만, 전교조는 창립 시기부터 끊임없는 해직·해임의 역사이기도 했다. 창립대회 참여자 전원이 다 연행되었고 최근에도 정당가입, 일제고사 반대, 시국선언 조직 등의 이유로 해임·해직 혹은 다른 징계가 내려진 교사를 복직·복권시키는 싸움이 중심이 되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영어전문회화강사(이하 영전강)라는 제도가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정책 하에서 탄생하고 박근혜 정부가 이를 승계하지 않겠다 선언하여 전국 학교의 영전강 교사들이 해고될 상황에서 전교조는 영전강제도 폐지 서명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학교 내 비정규직을 확대시키는 제도를 폐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노동조합이 응당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 같은 학교에서,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전강 교사들에 대한 대안을 제기하고 그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서 계약해지와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은 영전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노동조합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일까.

  전교조의 영전강 폐지 서명 운동 홍보 자료 [출처: 뉴스민]

영전강 문제를 둘러싸고 노노갈등이라는 문제제기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에 대해 전교조도 학교비정규직 노조도 ‘이것은 노노갈등이 아니다’라는 대답뿐, 설득력 있는 대답은 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융합과학전문강사(이하 과전강)나 스포츠강사 등 새롭게 발의되고 추진되고 있는 학교 내 비정규직 양산 제도에 대해서는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적 대응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교조가 벌이고 있는 영전강 제도폐지서명운동은 학교 내 비정규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전강을 없애라는 이야기로 이해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회적 의제들은 전교조에 기대어 있고 결국 전교조는 그 문제들 사이에 끼여 이도 저도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 위치하고 있다. 커진 조직의 크기로 인해 지도부와 평조합원간의 거리는 멀어졌고 새로운 활동가들이 발굴되거나 조직내 공유지점을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힘겨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급진적이거나 근본적인 노선을 취하기에는 조합원들의 거부감이 부담스럽고, 대중적인 노선을 취하자니 활동가 집단의 반대에 부딪히는, 운신할 수 있는 폭은 갈수록 작아지는데 조직 안팎으로 어느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위기상황이라고 해서 본질을 잠시 잊고 있을 수는 없다. 위기 상황에서는 살피고 챙길 수 있는 것이 한정된다. 비행기폭파사고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다친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인 것처럼, 조직이든 개인이든 위기상황에서는 자신의 본질 및 본연의 역할, 원칙 등을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잘 매겨야 한다. 영전강 교사들의 고용안정을 전교조가 선명하게 주장할 수 없는 것, 불법조직이 되는 것에 대해 절박한 두려움을 가진 것, 이 두 가지 모두가 조합원들의 거부감을 피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조직이 안전해야 한다는 압박에 전교조가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압박에 사로잡혀 끌려가면서 전교조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에 맞지 않은 우선순위로 지켜진 조직은 결국 본질을 잃고 퇴색한, 원래와 다른 이상한 다른 무엇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으로서의 본질에 대해, 조직의 크기나 영향력의 유지 이상으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시점이 전교조를 스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 선택을 바라보며 손에 쥐고 있는 조합원 탈퇴서의 향방이 정해질 거 같다.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혹은 보호하지 않는 노동조합의 의미가 내게는 지나치게 희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