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희망, 우리는 감히 꿈꾸면 안되는 것인가

[기고] 희망버스라는 플레시몹, 그 눈부신 경험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98학번이었던 내가 다녔던 대학의 광장에선 노동과 투쟁이란 단어가 거의 사라졌었다. 바로 전 해 극렬 시위를 하던 대학생들이 잡혀갔다던 뉴스가 온 방송을 채웠고 학교 건물이 불이 탔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도 몰랐고, 시위와 투쟁이 폭력적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게 되었다.

그 후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뉴스도 관심조차 가질 수 없었던 오지의 촬영장에서 영화를 찍고 스텝으로 일하며 20대 후반을 보냈던 나는, 당연히 거리에서 깃발 들고 조끼 입고 팔뚝질 하는 아저씨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왠지 모를 거리감까지 느꼈었다.

그리고 서른 남짓하던 해, 2011년 나는 어느 조선소 용접공 출신 노동자 언니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궁금했다.

“왜, 거기 있어요?”

그녀는 배를 만드는데 쓰이던 높고 푸른 크레인 위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농담도 잘했고 깔깔깔 웃기도 잘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갔고 환한 미소와 하트 인사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하트로 인사를 했다. 그 소박한 하트 인사가 내가 그녀를 응원하게 된 첫 인사였고. 그것이 그 모든 싸움의 시작이었고, 눈부신 경험의 시작이었다.

이 글은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이끌어낸 어떤 경험에 관한, 고백이다. 운동권이 사라지고 혁명도 꿈꾸지 않았던 대학시절을 보낸 후 열심히 자기계발서를 읽고 경쟁을 통과의례 삼아 사회에 입문했던, 그때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노조도 투쟁도 낯선 작가, 방송인, 예술가, 디자이너, 개발자, 사무직, 마케팅 회사원 등 우리 시대의 평범한 ‘노동자’ 들을 향해 쓰는 글이다. 푸른색 작업복 입은 사람들과 결코 다르지 않을, 우리들을 향해 쓰는 글이다.

2013년 인터넷 포털 뉴스에는 여전히 경제성장과 부자들에 관한 뉴스가 떴다. 삼성은 16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현대차의 회장님은 무려 2000억원에 달하는 사재 출연을 했다는 등의 뉴스들. 우리나라는 지난해 경제 성장 몇 퍼센트, GDP몇 퍼센트를 이루었다는 보도들, 또 부자 되는 법과 대박 주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광고들. 평소 같았으면 멋지고 긍정적이고 찬란한 뉴스들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뉴스들이 어느 순간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아니, 세상이 바뀌었다기 보다 내게 보이는 세상이 이전과 달리 판이하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의 눈부신 영업실적에 대한 언론의 찬사 뒤에 안전장치 없이 산재로 죽어간 노동자들이 읽혔고, 노조를 만들다 폭력적으로 쫓겨나고 해고된 사람들이 읽혔고, 현대차 회장님의 사재 출연이라는 찬사 뒤에 270여 일째 벽도 따뜻한 바닥도 없는 철탑 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읽혔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말하는 뉴스를 본 후엔, 과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나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부자되는 법을 말하는 광고의 유혹 뒤엔 늘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혼자 잘 사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가’

이것은 희망의 버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2011년 여름 겪은 그 눈부신 경험이,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를 바꾸어놓았다.

언젠가 인사동에서 열렸던 아리랑 플래시몹 연주 영상을 본적이 있다. 인사동 쌈지길. 한 사람이 보면대를 세우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연주자가 첼로를 켜고 같은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리고 군중 속에서 또 누군가 나타나 클라리넷을 불며 화음을 맞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군중 속에서 나타나 보면대를 편다. 플룻, 비올라, 콘트라베이스도 동참한다. 순식간에 하나의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되어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관객들은 숨죽여 감동으로 지켜본다.

그런 아름다운 플래시몹은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아니, 본 적이 있었다. 희망버스는 그런 것이었다.

희망버스를 타자라는 웹자보와 기고 글 몇 편. 그 악보 하나를 보고 사람들은 버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함께 갔다. 자발적으로 각자의 악기를 들고서. 번역할 줄 아는 사람들은 번역을 했고, 노래할 줄 아는 사람들은 노래했고, 그림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시를 썼다. 기자들은 보도했다.

여기저기서 예측할 수 없는 깨알 같은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이것은 놀랍게도 하나의 큰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13년 만에 대기업 회장을 보란 듯이 청문회에 세웠고, 정리해고에 대한 커다란 경고장을 날렸다. 그리고 위태롭게 농성하던 한 노동자를 살아서 걸어 내려오게 했다. 사랑이 형태가 있다면 그런 것이었을 거다. 아마도 사랑이 힘을 가진다면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희망버스 이전과 이후.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사실 진짜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노동 탄압은 계속되었고, 재벌은 절대 기득권을 버리지 않았으며, 복직된 사람들은 휴직자가 되었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좌절과 절망 끝에 또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슬픈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세상이 있었다. 적어도 그때 희망버스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놀라운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던 사람들에게는. 희망버스가 가져온 변화의 의미를, 나도 뒤늦게 알았다. 사람들의 내면이 변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너만 잘 살면 돼! 잘 살기 위해 남들을 밟고 올라가!’ 라고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혼자 행복한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돈으로는 착한 세상을 만들 수 없다

한때는 착한 부자가 나타나 세상을 알아서 바꾸어주기를 꿈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최근에 깨달았다. 어째서 착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운가를. 어째서 착한 부자가 나타나 세상을 알아서 바꾸어 주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가를.

착한 세상은 돈으로 만들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사람 혼자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세상을 착하게 만들 수 없다. 회장님의 거액 사재 출연과 기부로도, 부자의 올바른 회심으로도. 몇만명을 돈으로 움직여도 그 동기가 욕망인 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가 만들어서 그냥 주는 복지와 시스템으로도 사람들은 바뀌지 않으며, 시키는 것을 따르는 것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돈으로 평등하고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더라도 그걸로 끝이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 안에서 또다시 욕망을 추구할 것이고, 더 빼앗고 더 싸울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 건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완전히 공유할 때 일어난다. 그 의식이란 세상에 대한 균형 감각이다. 내가 많이 가지면 다른 이는 분명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의식. 나 혼자만 살 수 없다는 의식. 세상의 모든 나는 연결되어 있고, 다른 사람이 어려우면 나도 버티기 힘들다는 감각. 혼자 행복한 것은 의미 없다는 의식. 이 의식이야말로 돈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착한 세상은 여러 사람들이 힘껏 그리고 ‘함께’ 싸워서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의식이 하나하나 바뀌어야 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내면의 세상이 바뀌면 진짜 세상이 바뀐다.

희망버스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그 세상에 가깝게 가는 길이었다. 그토록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동기로 자발적으로 움직여서, 함께 살자 라는 구호를 외치며 누군가를 돕기 위해 움직였던 적이 있었나. 사람들은 함께 싸웠고, 또 깨달았다.

세상엔 우리를 욕망으로 몰아가는 힘이 있다. 돈과 권력이 그렇고, 경쟁이 그렇다. 이것이 사랑을 잊게 했다. 그 힘으로부터 끊임없이 반대 방향에 서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감으로써 균형을 잡아내는 거다. 이 중력 같은 힘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끊임없이 에너지를 다해 이 힘을 거꾸로 돌려야 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잊게 하는 것으로부터 사랑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희망버스. 88만원 세대가 꿈도 못 꾸는 정규직을 위해

이번 20일 희망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현대차 비정규직을 위한 투쟁을 260여일째 철탑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최병승, 천의봉씨를 향하여. 뼈빠진 야근과 복지조차 없는 일회성 비정규직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해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가 보기엔 높은 임금, 너무나 좋아 보이는 복지를 위한 이 투쟁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170여 억원의 손배소를 감수하면서, 그것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를 좇는 사람들을.

다들 힘든데, 너도 힘들게 살아야지!
감히 꿈꾸지 마라.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이 가장 많이 듣는 소리일수도 있다. 이것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가장 외롭고 힘들게 만드는 목소리다. 다들 힘들고 어렵게 일해서 열심히 기업을 살려야지,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응원했고 희생했다. 그 결과 대기업들은 2000년 이후 10 년 동안 매출이 두 배가 되었다. 그러나 일자리는 2.8% 밖에 늘지 않았다. 기업이 살아나면 일자리가 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그 어떤 자료도 이를 증명한 결과를 보지 못했다.

물론, 일자리는 늘었다. 똑 같은 노동을 하면서 절반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이것은 ‘하청’ 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대기업은 하청 ‘업체’ 에 일을 주고, 업체는 중간의 마진을 챙기고 다른 여러 사람에게 일자리를 준다. 이 사람들은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데, 이는 ‘직접고용’ 이 아니라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 하나다. 당연히 균형이 깨져버린 이 시스템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특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악성 바이러스가 아주 보편화 된 2000년도 후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작은 기업은 원래 그렇지. 이런 임금을 받는 건 보통 아닌가? 그나마 나는 이 정도라도 받는 게 어디야. 대기업도 아닌데 뭐.

하지만 그중 일부 사람들은 이에 항의했고, 거부했고, 분신했고, 자살했고, 높은 탑 위에 올라가 벽도 따뜻한 바닥도 없이 270여 일째 투쟁중이다. 이 이해 못할 투쟁을 고통스럽게 해 나가는 것을 길바닥의 깃발과 물대포 밖에서 구경하던 소심한 우리들은 모를지도 모른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를.

그동안 영화판과 방송 쪽에 뛰는 스텝들을 많이 봤다. 디자이너도 작가도 보았다. 촬영과 영화와 미술, 작가라는 멋진 꿈을 위해 뛰던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자고 싸우자고 하면 결코 이상하게 잘 모여지지 않는다. 노조라는 이름도 낯설고, 조끼 입고 길바닥과 철탑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라는 이름의 저 사람들도 낯설고, 왠지 우리는 저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어찌 보면, 생산직 노동자인 그분들은 지금의 디자이너이자 작가이자 사무직이자 영화노동자인 우리보다 조금은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우린 뼈 빠지게 일해도 생활할 만한 돈이 벌리지도 않는데, 그분들은 가족과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급여와, 살 만한 생활비와 야간수당과 유급휴가를 갖고 있었다. 아주 부자가 될 만한 급여는 아니지만, 집 대출금 값고, 아이 먹여 살리고, 조금은 여가도 즐길 수 있는, 정직하게 일하고 받을 수 있는 딱 충분한 대가와 당연한 행복이라는 이름의 급여. 그때 깨달았다. 우린 몰랐다. 그들이 그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내기 위해 피 말리도록 싸우고, 수십명의 사람이 죽고, 분신하고, 체포되고, 벌금 맞고, 빚지고 압류 당하고, 길바닥과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에서 농성하고,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손가락질하는 그 조끼와 깃발을 들고, 그렇게 촌스럽고 고통스럽게 싸워 왔다는 것을.

자본은 결코 공짜로 주는 법이 없다. 공장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말아야 하며,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서 사람의 안전은 생략할 수 있고, 복지와 휴식은 최대한 줄여야 하고, 최대한 일을 시켜서 최대한 적게 주어야 한다. 이것은 그저 자본의 ‘도덕’이다. 이와 고통스럽게 싸워서 몇십 년에 걸쳐 겨우 겨우 얻어온 것들. 근로 기준법과 복지들. 거기에 우리는 무임승차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뤄온 것들이 십여 년 전을 기점으로 다시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는 감히 꿈꾸면 안되는 것일까? 소박한 행복이라는 이름의 정당한 급여를. 우리가 이번에 달려가고자 하는 희망버스는 그 작은 하나의 변화를 위해서다. IMF이후 최근 십여 년간 사라진 그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행복’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힘껏 응원해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