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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매 마음으로 울산 가자

[기고] 철탑농성 280일, 울산으로 떠나는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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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산중에서 싸우고 있는 밀양 할매들이 지난 5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765킬로볼트 송전탑 건설 공사를 온몸으로 막고 싸웠기 때문이다. 산중에서 한전의 직원들과 용역들, 그리고 경찰들 앞에서 알몸으로 저항했다. 그 할매들은 올해 5월 지옥을 봤다고 말했다.

그 할매들이 지난 1월 14일, 15일 ‘희망의 순례’를\ 버스를 타고 돌았다. 대선 결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곳곳에서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줄을 잇던 때였다. 할매들은 버스를 타고 와서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바람이 불면 훅 하고 날아갈 것만 같던 늙은 몸으로 평택으로 가서 송전탑에 올라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아산으로 가서는 회사 앞 굴다리에 올라가 있던 유성기업 홍종인 지회장을 안타깝게 격려했다. “우리도 죽지 않을 테니 당신들도 꼭 살아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당신들이 손수 지은 감자랑, 사과랑 거기에 고추에다가 라면 박스까지, 바리바리 싸서 들고 어렵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던 그들은 우리 싸움 끝나면 전국 투쟁현장을 돌면서 밥 지어주자고 한다. 그러게 지금부터 곗돈 붓자고 하는 할매들이다. 전국에서 달려와 준 많은 이들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는 그 할매들이 오는 7월 20일에는 울산에 간다.

이미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과 천의봉이 송전탑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곳을 지지 방문했던 그들이다. 까마득히 높은 송전탑 위에 올라서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는 그들을 보고 눈물짓던 분들, 쭈글쭈글한 손, 주름투성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이긴다”고 했던 그 할매들... 그런데 폭설과 혹한의 겨울 지나고, 꽃피는 봄도 지나고, 폭염과 태풍의 계절이 돌아오도록 그 할매들이 머리 위에 하트를 그리며 이름 불렀던 그들이 아직도 거기에 있다. 300일, 9개월째 그들은 송전탑 위에서 잠자고 밥 먹고, 일도 보면서 그렇게 버티고 있다.

300일째 송전탑 위의 사람들

전국에서 국정원을 규탄하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응당 촛불은 더욱 크게, 더욱 넓게 타올라야 한다. 촛불이 들불 정도는 되어야 국기를 뒤흔든 국정원의 반민주 폭거가 시정될 수 있으리라. 그러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작은 촛불과 한 주마다 한 번씩 드는 촛불은 너무도 소중하다.

그와 함께 20일에 1박2일 일정으로 울산으로 떠나는 희망의 버스도 소중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벌이는 투쟁이니 노동자들의 투쟁이라고 말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민주정권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노동 배제 민주주의’의 민낯을 보았다. 우리가 이루었다고 믿었던 정치적 자유라는 것도 사실은 사상누각이었음을 매 순간 확인하지 않았던가. 사회경제적 토대가 약하거나 아예 없는 그런 민주주의는 대통령 하나 바뀌는 것으로도 도루묵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국정원은 이미 이명박 정권의 초기부터 민간인 사찰만이 아니라 노동사건, 언론 문제까지 사사건건 개입해 왔다.

오늘 국정원을 규탄하며 드는 촛불도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국정원장을 독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그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그때부터 바람 앞의 촛불이었을 뿐이다. 다만 우리는 촛불집회를 가로막았던 경찰의 폭력만을 보았을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4대강 사업이며, 용산참사며, 쌍용차 사태며, 유성기업 사태, 언론사 파업 등등에 개입한 민주주의의 적은 보지 못했다.

모두 민주주의 투쟁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2009년 “함께 살자!” 구호를 내걸고 77일간 파업을 단행했다. 지금까지 함께 살기보다는 동료가 죽어도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을 경쟁에서 이기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던 것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었다. 경쟁에서 이기는 1%만을 위한 ‘고원의 평등’이 허용되는 야만의 사회에서 나부터 살겠다는 게 아니라 “함께 살자”고 그들은 고립과 절망 가운데서도 외쳤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억울한 일이 아니라 거기에는 자본폭력과 결탁한 국가폭력의 실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러므로 쌍용차 대량해고의 진실을 밝히고, 해고자들을 공장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은 지금 국정원 규탄 촛불처럼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의 판결마저 거스르며 이행하지 않는 현대차 재벌의 오만불손함이 그대로 들어 있고, 재벌의 손아귀에 잡힌 행정, 입법, 사법의 문제까지,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오롯이 거기에 있다. 불평등의 대가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파탄은 궁극에 사법 시스템마저도 완전하게 자본권력에 종속되게 만든다. 반면에 노동자들의 사소한 항의마저도 사법처리 된다. 파업 한 번 했다고 수십 억, 수백 억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노동조합 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동조합 없는 민주주의, 노동조합의 힘없이 이루는 사회복지국가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울산 가서 물꼬를 트자

밀양 할매들 말처럼 죽지 않고 싸워 이기는 일이 중요하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강고한 지배동맹에 균열을 내는 투쟁은 중요하다. 그런데 먼저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 그들은 너무 오래 거기 있었다. 300일이면 너무 하지 않았는가. 사람이 절실히 원하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한 평도 안 되는 허공 위에 있다. 171일 만에 송전탑을 내려왔던 한상균 쌍용차 전 지부장이 말한다. “삼복더위가 찾아왔고 태풍이 몇 개가, 어디로 지나갈지 모릅니다. 철탑 위에서 의지만 가지고 낙관하고 견디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을 내려왔던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이 말한다. “춥고 더운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고립감이었습니다. 아무도 주시하지 않을 때,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듭니다.”

송전탑 위에 올라앉은 그들이 다시 땅을 밟고 투쟁할 수 있도록 우리 어깨동무하러 7월 20일에는 울산 가자. 쌍용차 해고자들도 버스 타고 가고, 밀양 할매들도 간다고 하잖는가. 전국에서 촛불 들던 이들이 희망의 버스 만들어 타고, 울산으로, 울산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주제가 있는 인문학 버스도 시동을 건다. 가서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현대차 재벌을 비롯한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에게 다시 한 번 알려주자. 고립된 허공의 두 사람을 지지하는 많은 손들이, 목소리가 전국에서 달려왔음을 확인하자. 희망이 곤두박질하는 이때 우리가 다시 희망을 만들자. 그들의 300일 투쟁을 받아 안아 다시금 민주주의를 살리는 투쟁의 물꼬를 트자. 참으로 간절하게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