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아산공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지 10년, 2004년에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전체 사내하청에 대한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 난지 9년이 지났다. 10년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제 그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점에, 어이없게도 헌법재판소가 공개변론을 열겠다며 긴장을 걸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구 파견법 6조 3항(고용의제) 위헌 판결은 불가능하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흔히 갖고 있는 오해가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구 파견법 6조 3항이 ‘불법파견 고용의제’에 대한 조항이라는 오해이다. 하지만 정확히 알고 가야 한다. 구 파견법 6조 3항은 “불법파견 2년 경과하면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이 아니다. “합법이건 불법이건 파견으로 2년 경과하면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이다. 즉, 현대차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불법파견’만이 아니라 ‘합법파견’에 대해서도 고용의제 조항 자체가 위헌이라는 취지이다.
따라서 이 조항이 위헌이라면 불법파견만이 아니라 합법파견에 대해서도 모조리 고용의제가 부당하다는 의미가 된다.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파견법은 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8년에 제정되어 벌써 15년째 시행되고 있다. 불법파견에도 고용의제가 적용된다는 것은 사실 상식이나 다름없었지만, 문제는 당시 파견법 6조 3항이 불법파견에도 적용된다는 명문의 규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본 측은 불법파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얼토당토않는 주장을 펼쳤다. 기나긴 세월 법정공방이 진행되다가 2008년에야 비로소 대법원은 파견법 6조 3항이 불법파견에도 적용된다는 판결을 함으로써 ‘불법파견시 고용의제 적용’은 확고한 판례로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논란은 고용의제가 불법파견에도 적용되느냐 여부였지 고용의제 자체가 쟁점이 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합법파견에 대한 고용의제는 파견법 시행 2년 뒤인 2000년부터 이미 적용되어온 조항이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나는 동안 이 고용의제 조항에 대해 자본가들이 딴지걸거나 위헌소송을 벌인 적이 없다. 헌데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법적 공방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불법파견이 문제되니 고용의제 조항 전체를 문제 삼는다?
따라서 이 조항을 감히 위헌이라고, 그래서 지난 15년간 진행되어온 일체의 법률관계를 무효 또는 취소로 만들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동흡 같은 자격미달자가 헌법재판소 소장이 될 뻔한 해프닝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리 썩었어도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언할 법관들로 가득 찬 수준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현대자동차(주), 그리고 그들의 사건을 대리하는 김&장 법률사무소의 주장은 이 조항이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직접 고용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 불법파견 사내하청을 직접 고용으로 간주하는 것은 계약의 자유를 위배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인정된다면 사실 기간제법상 2년 이상 되면 무기계약으로 간주하는 조항도 위헌이 되고 만다.
게다가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과 기간제법의 무기계약 고용간주 조항은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규정한 ‘규제’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에, 이 조항이 위헌이라면 사실상 파견법과 기간제법 전체가 위헌이라는 말이 된다. 아니, 현재 거대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갑을 관계법’ 전체가 위헌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갑을 관계법’ 역시 일정 수준에서 ‘갑’에게 책임을 지우는 법안 아닌가! ‘갑을 관계법’의 원조 격이라 할 노사관계법과 노동조합법 모두 위헌이 된다. 따라서 이 모든 사회적 논란과 비난을 얻게 될 위헌 판결은 가능성이 없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왜 헌법소원을 끌고 가는 것일까?
판단컨대 현대차는 실제 위헌 판결을 얻어내겠다는 목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공개 변론’이라는 절차까지 열어주며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미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지방법원에서 승소하고 고등법원에 올라갔을 때, 현대자동차 자본은 서울고등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제기한 바 있다. 즉, 고용의제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고등법원은 이 사건을 진행하기에 앞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물어봐야 한다는 요청을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자본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기각하고 원심대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고등법원은 사측이 제기한 논리들, 이를테면 ‘명확성의 원칙 위반’ ‘과잉금지 원칙 위반’ ‘계약 자유, 사적 자치의 원칙 위반’ 등의 논리에 대해, 한 가지 한 가지를 모두 반박하며 이 신청의 ‘이유 없음’을 소상히 밝힌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들이 이처럼 법관의 소신대로 간명하게 판결한 사안이기에, 사실 헌법재판소 역시 공개 변론 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현대차의 헌법소원 자체를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내리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논란을 벌이는 핵심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현재 수많은 사업장에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제기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그 재판들을 모조리 현재 상태로 묶어두거나 진행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자칫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 판결하게 되면, 지금 대법원 판례는 의미가 없어지는데, 만에 하나 대법원 판례대로 판결하게 되면 나중에 법관 승진과 인사배치에서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메시지를 대법원 및 하급 법원의 판사들에게 은연중에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장 법률사무소가 대리하고 있는 현대차 관련 소송에서 그들은 서면을 통해 “헌법소원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조만간 판결이 나올 것 같으니, 그 판단을 보고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나온 금호타이어 관련 판결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소송들이 이유 없이 연기되거나 진행이 멈춰져 있다.
6월 13일 공개 변론이 진행된다고 해서 곧바로 판결 선고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또다시 말도 안되는 수많은 이유들을 들이대며 최종 판결과 선고를 최대한 늦추려 할 것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없고 조직력 약하고 돈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포기하거나 사측의 부당한 압력에 굴욕적 타협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3년 전에 현대자동차 울산·아산·전주 2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1심 판결 결과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이미 1년 전에 나왔어야 할 현대자동차 아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법원 판결 역시 도대체 언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모든 정황들이 현대차의 헌법소원 제기와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미 지방노동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몇 개월 안에 결론을 냈던 사안들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의 법관은 헌법상 각각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법과 양심, 소신에 따라 판결하면 된다. 그러나 거대 재벌의 힘으로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이런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줄세우기 사법부’ ‘졸렬한 사법부’를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진행할 용기 있는 판사들을 죽이는 것! 그러나 이러한 압력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용기 있는 판사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