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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평등하지 않다

[기고] 우리는 왜 밀양에 연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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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투쟁을 겪으며 한국 사회에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제기되고 있다. 연대도 확산돼 지역을 넘어선 탈핵희망버스가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에 다녀오기도 했다. 밀양 송전탑이 아랍에미리트의 핵발전소 건설계약과 맞물려 있다는 언론보도를 통해 보듯이, 에너지 문제는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문제라도 전체 에너지 문제와 관계 맺고 있다. 또한 핵, 전기, 석유 등 에너지의 형태와 무관하게 전체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관통하는 큰 흐름이 존재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누구를 위해 생산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착취’ 경제가 그대로 반영되는 ‘에너지’

2008년을 기준으로 미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 중 4.56%(3억 5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소비는 18.6%(26,600TWh)를 차지한다. 반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인구를 합치면 14억 4천6백만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21.6%에 달하는데 에너지 소비는 10.1%(14,400TWh)에 불과하다. 국가별로 GDP와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거의 비례한다는 사실도 많은 연구와 통계에 의해 밝혀져 있다. 그런데 이런 통계를 부유한 나라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절반의 진실을 목격할 뿐이다.

  인구당 에너지 소비량을 표시한 지도. 색이 짙을 수록 1인당 에너지소비량이 많은 것이다. [출처: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한국은 GDP 성장률과 에너지소비 성장률이 거의 비슷해서 이는 어느 항목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상관관계가 높음을 보여준다. 경제학에는 투입된 에너지 당 얼마나 생산에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에너지 생산성(GDP/에너지)이란 지표가 있는데, 한국생산성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미국/일본 모두 경제성장률이 낮을수록 에너지 생산성도 낮았다. 이는 경제성장률이 낮은 해에 오히려 경제성장률보다 에너지소비 증가율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에너지소비가 늘었다는 것은 그 증가분이 생산에 투입되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2008년, 전 세계에서 사용된 에너지의 51%가 산업(생산)에 쓰였고 18%만 가정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결합시키면 에너지 소비의 증가는 생산의 확대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그래프는 세계에너지기구에서 2006년에 발표한 세계에너지통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출처: 위키피디아]


[출처: 참소리]

에너지 소비 증가를 이끄는 것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해야 하는 자본주의 경제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1세계 국가의 부가 제 3세계에서의 노동력 착취, 자본수탈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런 에너지 소비의 편차 또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평등의 결과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윤창출을 위해서라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도 괜찮다?

이 불평등의 야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야를 들판으로, 산으로 조금 더 넓혀보자. 공장을 돌리는 데에는 여러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필수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노동력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매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재충전하기 위해서는 입으로 들어오는 에너지, 곧 식량이 필요하다. 지구 전체 에너지가 불평등하게 소비되듯이 이 식량 또한 극단적으로 불평등하게 소비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9억 명이 기아에 내몰려 있고, 20억 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지구 한 편에서는 누군가 굶주려 죽어가는데 그 반대편에는 거리마다 버려진 음식이 있는 걸 목격하며 세상의 부조리를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거리에 버려진 음식을 보며 굶주리는 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바뀌기 어려운 너무 커다랗고 강고한 구조가 버티고 있다는 데 있다.

2008년에는 광우병을 둘러싼 커다란 논란이 있었고, 이때 광우병의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이 지목되기도 했다. 공장식 축산을 에너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비극은 더 끔찍하다. 지구상에 식용으로 사육되는 소는 13억 마리 정도 되고 이들 소를 비롯한 가축들이 전 세계 곡물의 40% 정도를 소비한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밀의 20%, 옥수수의 65%가량이 사료로 소비되는데, 곡물을 소에게 먹여서 그 소를 먹는 것은 곡물을 직접 먹는 것에 비해 약 10배 정도의 농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아로 고통받는 9억 명 중 매해 4~6,000만 명이 굶주려 사망한다.

그렇다면 육류 소비를 줄이면 기아 인구가 줄어들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기아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식량수출국이고, 이미 전 세계 총 식량 생산량은 전 인구를 부양하는 데 충분하다. 문제는 식량에너지가 여타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이윤창출을 위한 생산에 우선 투입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식량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하늘이 내려주신 소중한 먹거리가 아니라, 지붕 없는 공장에서 에너지가 투입되어 생산된 결과물이다. 현대 농업은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의 투입 없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 원료․기계를 생산 운행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투입되는 등 농업의 석유의존도는 매우 높다.

요즘은 여기서 더 나가 대안에너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바이오디젤 사업이 각광받고 있다. 바이오디젤은 경유를 대체할 수 있는 식물성 연료를 말하는데 옥수수, 콩 등 식량에너지를 이용해 기름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2007년 미국에서 바이오연료 생산에 투입된 옥수수는 813만 톤으로 미국 옥수수 생산량의 25%를 기록했고 이는 2002년 13%에 비해 12% 늘어난 것이다. 2006년 이후 세계곡물가격이 30% 이상 급등한 것은 바이오디젤 생산 확대가 원인 중 하나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이 곡물가 폭등으로 세계 기아인구가 최소한 1억 명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다.

석유에너지에서 식량에너지로, 다시 바이오디젤에너지로, 이렇듯 에너지는 계속 순환한다. 에너지의 형태와 무관하게 이런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의 순환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원칙이 있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상품이 생산되고 에너지도 그에 맞춰 투입된다는 원칙, 이 생산의 이익은 사회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게 돌아가고 생산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그 소수를 제외한 사회 전체가 책임진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그 소수는 고기, 바이오디젤의 생산을 위해 굶주리는 사람이 발생하는 것을 외면하고, 자신이 쓸 에너지를 위해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의 위험에 사람들이 노출되는 것을 외면한다. 심지어 핵발전소의 부품을 바꿔치기 하면서까지 자신에게 돌아갈 몫을 늘린다.

밀양 송전탑이 그/녀들만의 싸움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

도시 사람들의 과한 전기 사용이 문제니 전기 소비를 줄이자는 제안을 종종 접한다. 하지만 1세계 국가의 노동자들이 3세계 국가 노동자들보다 누릴 수 있는 부가 크기는 해도, 이는 생산의 규모가 커지면서 떡고물의 양도 늘어난 것일 뿐이다. 이를 두고 1세계 국가 노동자들이 3세계 국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또한 생산의 규모가 큰 1세계 국가에 집중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떡고물을 얻고 있을 따름이다.

도시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밀양의 어르신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공범이 되는 게 아니다. 가진 이가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야만의 구조를 직시하지 않고, 그래서 내가 쓰고 있는 많은 것들에 누군가의 피눈물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때 공범이 된다. 이 구조에는 사람을 종이컵 버리듯 쓰고 버리는 정리해고가 있고, 돈 아끼겠다며 같은 일 시키고도 돈 조금 주며 인간적인 모멸을 주는 비정규직도 있고, 구조 자체를 지탱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과 무기생산도 있다. 이 세상을 직시하고 바꾸기 위한 한걸음으로 밀양 송전탑 투쟁에 연대하자. (출처=참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