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문제로 전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었던 남양유업 사태가 여론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울트라 슈퍼 갑’ 현대제철에서 다섯 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휴대용 장비 하나 지급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사건도 금세 잊혀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럼에도 남양유업 사태는 참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갑의 횡포와 을의 눈물을 뜨거운 화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이라는 회사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재벌과 대기업의 탐욕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가 남양유업이라는 한 우유회사로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윤창중 성추행 때문에...
그렇다면 남양유업은 나쁘고 다른 우유회사들은 괜찮을까요? 남양유업을 보면서 예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3년 전인 2010년 7월 21일 부천 역곡역 2층 매표소에 있는 스토리웨이에서 평소 즐겨 먹는 800원짜리 종이팩 커피우유를 샀습니다. 물론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우유를 마시는 순간 약간 냄새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괜찮겠지 하며 삼켰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뭐가 씹혔습니다. 점심에 먹은 라면 건더기라고 생각하며 다시 우유를 한 모금 더 마셨는데, 다시 역한 냄새가 풍겨왔고, 이물질이 입 안을 맴돌았습니다.
조금 남은 커피우유를 들고 구입했던 가게로 가서 주인에게 상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주인아저씨도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본사에 전화를 걸어 제품번호를 불러줬더니, 남은 우유를 가지고 돌아가면 본사에서 찾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기업 횡포에 대한 분노가 남양유업으로
상한 우유를 손에 들고 전철을 타고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금속노조 사무실로 왔습니다.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낄낄거리고 웃으면서, 곧 우유 한 박스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화가 걸려왔고 3시까지 오시라고 했더니 다음 날 오면 안 되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뜨거운 여름인데 우유를 상한 채로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가져가서 검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그제야 3시까지 오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어느 나이 드신 분이 우유 한 박스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서울우유 ***대리점 점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넸습니다.
“이런 일이 가끔씩 있었습니다. 다 대리점 잘못이고, 유통과정에서 상한 겁니다.”
“우유가 상한 원인이 생산과정인지 유통과정인지 판매과정인지 정밀검사를 해야 하는데 대리점에서 나오시면 어떡합니까?”
“고객님이 잘 몰라서 그러시는 건데, 제가 10년 넘게 일했는데 이건 모두 대리점 잘못입니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시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모든 치료비를 물어드리겠습니다.”
“점장님이 책임지실 일이 아닙니다. 이 우유 가지고 돌아가세요.”
대리점 사장 시켜 우유 한 박스 보낸 서울우유
본사에서 나오지 않고 대리점에게 책임을 맡긴 것에 ‘뚜껑’이 열렸습니다. 본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특수영업팀으로 연결됐습니다. 과정을 설명하고, 검사결과를 알려달라고 요구했고, 중간 진행 과정도 통보해 달라고 했습니다. 평소 웬만큼 상한 음식에도 위와 장이 멀쩡했고, 그날도 별다른 탈이 없었습니다.
품질보증팀 박 아무개 과장에게 중간 검사결과를 알리는 전화가 왔고, 7월 30일 김 아무개 과장이 전화를 걸어와 8월 2일 만나자고 했습니다. 여름휴가이기도 하고, 굳이 만날 필요가 없으며,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상한 우유의 책임을 대리점에 돌리는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사의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메일을 열어보았더니 ‘커피우유 변질 원인규명서’가 와 있었습니다. 서울우유는 “고객님께 본사 직원이 아닌 대리점 사장이 방문을 해서 불쾌하게 한 점도 정말 죄송”하다며 앞으로 본사 직원이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본사 과장이 만나자고 연락
답장 메일을 썼습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정부까지 나서 대기업의 원하청 불공정거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마당에 서울우유를 애용하는 소비자로서 눈앞에서 명백한 불공정거래의 현장을 확인했고, 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시정, 회사 차원의 재발방지 약속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다시 한 번 제가 당한 이번 사건에 대해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해주셔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번 일로 하청업체인 *** 대리점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동료들이 회사의 공식사과 문서가 안 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서울우유 본사 앞에서 1인 시위 하고, 집회도 하고, 언론에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8월 19일 ‘서울우유 공식사과 문서’가 왔습니다.
서울우유는 그동안 우유가 상하면 대리점에게 책임을 떠넘겼을 것입니다. 대리점 사장을 시켜 우유 한 박스로 입막음을 하고 끝내왔던 것입니다. 막강한 원청회사의 힘 앞에서 아무 잘못도 없는 대리점 사장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지내온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서울우유가 대리점주에게 이런 횡포를 부리지 않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남양유업 사태는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들이 하청업체나 대리점들에게 얼마나 심각하게 온갖 부당행위와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저질러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한 달 만에 공식 사과문서 보내와
회사는 하청업체에 일방적 단가인하 등 불공정거래를 하지 않으며, 하청업체와의 납품단가 결정 시 원가 및 물가연동제와 집단조정제, 집단소송제를 도입한다.
회사는 평균을 초과하는 이윤의 일정액을 하청업체에 공유하는 이익공유제를 도입 시행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올해 노사 간의 단체교섭에서 사측에 보낸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에 대한 요구입니다. 현대, 기아자동차 등 ‘울트라 슈퍼 갑’이 자동차 부품회사에게 저질러온 온갖 불법, 부당행위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5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인하한 자동차 부품회사 서한산업에게 하도급대금 지급 명령과 과징금 5억44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1차 부품회사인 서한산업은 신규 차종에 대한 부품 수주에 실패하자 2009년 8월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인하하고 이를 소급해 적용했습니다.
완성차는 놔두고 부품사만 족치는 정부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부당하게 감액한 하도급대금 및 지연이자 2억9200만원을 지급하도록 하고, 과징금 5억4400만원을 부과하며 “앞으로 대기업과 1차 협력사는 물론 2차, 3차 협력사 간의 부당 단가인하 및 감액 행위에 대해서도 직권조사 확대 등 감시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서한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수법은 바로 현대와 기아차가 수년 간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범죄의 원흉인 현대기아차는 손도 대지 않고 있습니다. 깡패 두목은 놔두고 똘마니만 잡아 족치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남양유업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다른 회사들에도 있었는지 확인하고, 서한산업에 대한 조사와 똑같이 현대와 기아차를 조사해서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리한 요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