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일을 맞아 철탑아래 마당에서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연리’라는 이름을 가진 행사입니다. 연리. 아시나요? 다른 뿌리에서 자라난 두 그루의 나무가 오랜 시간 맞닿아 지내면서 서로 하나의 나무처럼 합쳐지는 것을 연리 나무라고 합니다. 연리 문화제는 연리 나무처럼 서로의 마음과 삶이 닿길 바라는 기원제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내 마음이 그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아버린 나이인지라, 두 몸을 맞대고 앙증맞게 잎을 피워 올리고 있는 연리나무 그림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날이었습니다.
화전을 굽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진달래 꽃잎을 동그랗고 하얀 찹쌀 전위에 올려 굽는 화전. 봄 들판을 옮겨 놓은 듯 진달래 꽃잎과 여린 쑥잎이 올려진 전은 참 어여쁩니다. 지난 봄, 미리 따서 얼려 놓은 야생의 잎들은 누군가의 정성입니다. 화전을 굽는 일은 상상으로는 즐거운 일이지만 막상 내게 노동으로 다가오니 즐겁지가 않습니다. 화전을 팔아 연대 기금을 마련한다는 대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누구에게나 좋은 노동이 될 수는 없나 봅니다. 절반도 넘게 남은 반죽을 두고 나는 화전 굽는 일을 그만 둡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카메라를 메고 취재 수첩을 들고 나는 밖으로 나옵니다. 여전히 주방에 남아 전을 굽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남지만, 내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야 할 이유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그만 미안한 마음도 싹둑 잘라 버립니다. 마당엔 온통 신기한 것들 투성이입니다. 올해 나온 신간 책을 그냥 가져 가라는 곳, 짚으로 만든 수세미, 그리고 설탕가루를 넣고 돌리면 솜처럼 돌돌돌 나무 젓가락에 동그랗게 말리던 솜사탕. 딱히 사람이 올일 없이 그저 차들만 즐비하던 송전탑 옆 주차장이 200일 만에 이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송전탑 위에는 붉은 천막이 서 있습니다. 오늘 따라 웃음이 많은 두사람. 병승 씨, 의봉 씨. 젊은 그들이 너무 오래 저 곳에 있는 일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마음에도 굳은살이 박히는 걸까요. 아프다는 것도 이제는 한참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습니다. 병승 씨가 쓴 글을 보고 호미 끝이 파고든 듯 날카롭게 가슴속이 아파오던 날처럼 말입니다.
“200일이 지나 300일이 되어도 이 착한 조합원들이 저항을 멈추지 않는 한 제가 먼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우리는 함께 가야 할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정몽구 회장의 결단을 촉구합니다.”(_최병승의 편지글 중에서)
여기 하늘 위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 달라는 그. 포기하지 않는 힘을 달라고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기도를 한다는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굳은살이 걷히고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어린아이 같고, 소년 같고, 그저 푸르른 나무처럼 잎을 피워 올리는, 있는 그대로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도 산천에다가, 막막한 허공에다가 기도하고픈 날입니다.
참, 이 날, 병승 씨가 ‘함께 가야할 운명’이라 했던 조합원들은 서울 양재동 현대 기아차 본사 앞에서 불법 파견을 저지른 정몽구 회장을 구속하라며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천막을 다 빼앗겨 버리고 여러 날을 벌써 서울의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길 위에서 이어지는 운명의 소식이 병승 씨와 의병 씨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도 속속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것도 연리일까요? 스마트폰으로 소식이 날아오고 서울 본사 앞 집회를 사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산 철탑에서 환호하는 목소리들. 이게 연리 나무의 모습은 아닐까요.
마당 한쪽에는 나무를 조각해 만든 작품들이 있습니다. 현대 자동차 열사 추모사업회에서 일하는 대식 씨는 목판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긴 작품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재료비에다가 그의 노동력을 최저 시급으로 계산한 것이 작품의 판매 가격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노동 가치를 투쟁 기금으로 기부하는 셈입니다. 얼추 계산해도 그가 이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 반나절 이상 공을 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이 일을 해온 장인은 아니랍니다. 연리 문화제에 내다 팔기 위해 이제 막 시작한 일이라고 합니다. 이제 막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빼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내말에 그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숨어있는 재능이 있다고 답합니다. 기회가 오고 때가 오면 할 수 있는 많은 재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게 깃든 재능을 떠올려 봅니다. 우울했던 시절에 오랫동안 바느질만 한 적이 있습니다. 손바느질로 만들어 낸 커텐이며 발판이며 베갯잇을 바라보면 지금도 나는 어디서 이렇게 신기한 재능과 기운이 솟았을까 싶습니다. 그 시절 나는 내속에 있는 힘을 뿜어 우울함을 지나고 있었나 봅니다.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안한 맘이 들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대식 씨는 ‘전혀 미안하지 않다’고 합니다. 미안한 맘이 왜 드냐고, 나는 함께 싸우고 있다, 마음에 부담이 있으면 나와서 함께 투쟁하면 되는 거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행한 과오는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그것은 개인적 미안함과는 다르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나는 미안했습니다.
이 젊은 노동자들보다 앞서 투쟁하고 앞서 살았던 80년대 운동권이었기에 더욱 미안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 세대의 잘못 같아서 자주 미안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안하다는 그 마음이 나를 움츠리고 시간속에 머물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안하면 함께 싸우면 된다’. 잘 알겠습니다. 맞습니다.
민주노총 울산 본부장인 강성신씨가 조각해온 솟대가 어둠속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화줏머리에 앉은 수십마리의 새들이 날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길게 다듬어 놓은 부리가 어둠속에서 빛납니다. 솟대 위의 새들은 날지 않아도 이미 날아가는 새입니다. 그것은 아픔을 씻기 위한 염원이며,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철탑 아래에도 긴 솟대 하나 솟아 있습니다. 철탑 위에서 새들이 날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