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다.”
지난 2월 25일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광화문 광장에서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 달라”는 한 집배원의 요청을 읽고 한 얘기다. 그는 총선과 대선에서 “사회양극화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라며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대기업 비정규직 정규직화 유도를 약속했고, △사내하도급 보호법 제정 △비정규직 사회보험 지원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고용형태 공시 등을 공약했다.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36만 명 중 올해 상담원, 사무보조, 청소노동자 등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4만1000명 이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 때인 지난해에는 2만2000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 문제는 상생 화합으로 가는 우리시대의 화두이자 새 정부의 중요한 국정과제이므로 공공부문의 기관장들이 의지를 갖고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적극 추진해달라”고 말했다.
박근혜 제 1공약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4월 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2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24만 9614명이고, 파견·용역 노동자는 11만 641명으로 총 36만 255명이다. 이 중 기간제 노동자가 54.69%, 청소 등 용역노동자 28.32%로 이 둘을 합하면 83.01%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산전후 휴가, 육아휴직, 병가 등 업무대체자나 특정한 기간 동안 업무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업무는 대체로 단기간 노동자(아르바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노동자들은 대체로 1년에 9~10개월 이상 상시, 지속적 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부분이 정규직 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전환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진행되어 왔다. 정부는 2011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2011.11) 및 추진지침(2012.1)’에 따라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2012년 2만 2069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2012년 전환계획 대비 실적 비율은 96.3%이며, 일부 기관에서 2013.1.1자로 7백여 명이 전환된 점을 감안하면, 무기계약직 전환은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이명박 정권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정부 공약에 따라 한 단계 더 진전된 방향으로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2012년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공공부문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34만 명 중에서 2년 이상 근무하고,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를 전체의 28.47%인 9만7000여명으로 분류했다.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은 30% 미만이고, 71.5%인 24만 명 이상이 2년이 경과하기 전에 해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달라진 것은 정부출연기관 연구원 7000여명을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3년 기준 공공부문 36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 이명박 정권에서 상시 지속적 업무로 분류된 9만7000명과 정부출연기관 연구원 7000명을 합쳐 10만4000명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되는 셈이다.
이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36만 명 중에서 26만 명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28.8%만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고, 71% 이상은 해고, 재계약, 외주화 대상인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71%가 해고 대상?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청소 등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시 임금체계 설정 등 직접고용에 필요한 컨설팅을 지속 제공하고, 상시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간접고용 근로자를 바로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컨설팅을 제공’해서 청소, 경비, 시설 등 용역노동자 10만 명이 100%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16만 명의 노동자는 무기계약직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노동자들은 2년이 되기 전에 쫓겨나거나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에는 직접고용 노동자 1,577명과 간접고용 1,057 등 총 2,63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두 차례에 걸쳐 1,369명의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서울시 공공청사나 지하철역에서 근무하는 청소근로자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6,231명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열악한 노동조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다산콜센터를 비롯해 청소년수련관, 노인종합복지관, 기술교육원 등 382건이나 되는 민간위탁 사업의 노동자 1만3000명에 대해서는 실태조사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에 대해 통계조차 내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 민간위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4배가 넘는다. 따라서 공공부문 전체의 민간위탁 노동자를 비정규직 노동자 36만 명의 3배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면 민간위탁 비정규직 노동자는 100만 명에 달하게 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기계약직이 ‘무기한 계약직’으로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월 25일부터 한 달간 전국 초중고 1만1천여개교를 대상으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실태조사 결과 6천475명이 해고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기간제 노동자는 5537명(82.7%)이었고,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분류될 상시·지속적 업무자는 5128명으로 기간제 노동자의 92.6%에 달했다. 직종별 해고자는 조리원, 특수교육보조, 초등돌봄강사, 사서보조, 전문상담원 등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빠진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교사, 학습보조교사 등의 인원을 합산하면 해고자가 1만 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충격적인 것은 해고된 노동자 중에서 정부가 정규직이라고 주장해왔던 무기계약직이 1천118명(17.3%)이나 해고됐다는 것이다. 무기계약직이 ‘무기한 계약직’이나 ‘중규직’도 아닌 ‘짝퉁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정부 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것이다.
학교 무기계약직 1118명 해고 ‘짝퉁 정규직’ 확인
지난 3월 24일 경기문화재단은 “공공기관으로서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통한 안정적 일자리 확립에 모범을 보이고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기조에 동참한다”며 무기계약직 3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스스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노동자들에게 악법 중의 악법으로 불리고 있는 기간제법에 따라서도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서 무기계약직이라는 ‘짝퉁 정규직’을 만들어 마치 정규직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가 간접고용 노동자 -> 직접고용 기간제 노동자 -> 무기계약직 노동자 -> 정규직 노동자라는 노동자 내 신분제도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판 노동자 카스트제도’다.
한국판 노동자 카스트제도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 1공약은 일부 무기계약직 전환과 기간제 비정규직 대량해고, 외주 용역화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 공공부문 36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운명은? 잘리거나 ‘짝퉁 정규직’ 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