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말 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한 이후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계속해서 정규직 전환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사태를 지켜보았다. 각 시도별로, 기관별로 선별적 무기계약 전환과 함께 2년 미만자에 대한 해고가 일어났다.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는데 비정규직은 해고된다. 이는 그 이전,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대책이 나온 직후 법원행정처에서 계약직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서울대병원에서도 2년 미만자에 대한 해고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새마을호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대책 이면에서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해고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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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계약직이라는 왜곡된 고용형태를 낳은 정부 대책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으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접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비정규직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안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던 노동계의 요구와 달리 비정규직 사용의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기간제한을 둠으로써 노동자들이 2년의 기간 내에 주기적으로 해고되고 교체 사용되는 시스템이 기간제법 제정 과정에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기간제법 제정을 위해 정부가 먼저 선도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내놓았던 것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다. 그러나 기간제법이 2년이 초과될 경우 정규직 상시고용으로 의제하는 것과 달리 공공부문에서는 업무의 상시 지속성 판단을 더 강화하였고, 업무자체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노동자를 기준으로 개별 노동자의 2년 이상 근속까지 요구했다. 기간제법보다 정규직전환의 예외 사유도 더 넓게 규정했고, 심지어 외주화가 예정되어 있는 경우 무기계약 전환에서 배제되었다. 또한 간접고용 문제에 대하여 외주화 타당성을 평가하여 직고용으로 전환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정비하겠다고 하였으나, 결국 외주화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이라는 또 다른 비정규직 유형을 만들어 냈다. 정규직이 배치되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사실상 정규직의 업무를 대체함에도 보조적 업무로 분류되어 임금 차별이 존재하고, 부서나 업무의 폐지에 의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만들어 놓고 정규직이라고 포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는 공공부문의 고용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이후 공공이든 민간이든 정규직화라고 했을 때는 거의 100%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러한 근본적 문제점은 이명박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 발표 후 2012년 한 해 동안 각 기관 및 지자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무기계약화가 이루어졌다. 이전과 달리 호봉제 전환 등의 움직임이 생겼고, 서울시의 경우 개별노동자의 2년 이상 근속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간접고용 문제에 접근하였다는 점 등에서 정부대책 보다 낫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일하게 드러난 문제는 선별의 문제이다. 2년 이상 존속했고 앞으로도 그만큼 존속될 업무라는 기준, 당사자가 2년 이상 근무자여야 한다는 기준 등 기간제법보다 강화된 선별 기준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기본 골자이고, 이에 더해 예산의 통제는 무기계약 전환 대상을 선별하게 하고 개별 평가를 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편에서의 무기계약 전환과 함께 해고되는 노동자들도 계속 발생했다.
고용유연성 확대로 귀결되는 상시구조조정 시스템
2011년 정부 조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를 34만명 정도로 추산했다. 그러나 조사에 누락된 직종 등을 감안하여 최대 100만명 정도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이렇게 까지 공공부문에 비정규직이 확대된 것은 사실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것이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었고, 공공부문에 시장 논리가 강조되기 시작한다. 공공부문에도 ‘경영’의 논리를 도입하여 성과를 평가하고, 그 성과의 기준으로 인건비 절감, 구조조정 규모 등을 반영한다. 그리고 실제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 인력감축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안착시킨다. 위에서부터 정원과 예산을 통제하고, 정원을 축소 조정하거나 예산을 감축하는 방식으로 인력을 줄인다. 그리고 줄어든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간접고용으로 채워진다.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바로 총액인건비제와 경영평가와 같은 제도이다. 정원과 인건비로 강제하고 구조조정 성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하여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이렇게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정비된다.
그리고 이제는 늘어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한다.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말이다. 공무원, 정규직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다만 무기계약직과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 비정규직이 확대될 뿐이다. 일례로 무기계약 전환과 함께 호봉제를 도입하였던 한 시에서는 호봉제 도입을 하더라도 예산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한바 있다. 줄어드는 공무원, 정규직의 숫자, 그리고 신규로 일부 정규직원이 채워지더라도 낮은 초봉을 감안하고, 무기계약직 전환시 정규직보다 낮은 초봉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호봉제 전환과 함께 무기계약 전환을 시도하여 의미있는 사례로 보도되는 이 경우에서 우리는 오히려 공공부문의 구조재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무기계약직은 공공부문에서 고용의 유연성을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기능했고, 기간제법의 발효와 함께 무기계약직군을 제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시해고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공공부문에서는 같거나 유사한 일을 하면서도 공무원인 자와 공무원이 아닌 정규직, 무기계약직, 기간제 노동자 등이 동시에 존재했고, 그렇게 노동자를 세분화하고 위계화하며, 고용형태에 따라 직무에 따라 차등하는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무기계약 전환과 함께 직제 명칭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이 병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인력활용 구조는 더욱 복잡화, 고도화 되고 있다.
정규직화 정책을 무의미하게 하는 사전 해고 조치
공공부문의 인력구조가 전반적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규모의 지속적 축소, 인원조정의 유연성을 확보한 무기계약직의 운영, 무기계약직 운영의 전단계로 시용되지만 대다수 교체 사용되어 해고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계약직 노동, 청소노동 등 직영이나 자회사 방식으로 끌어들여지는 간접고용 일부, 정부의 일자리 확충 사업으로 선전되는 청년인턴, 그 외 광범위한 민간위탁, 간접고용 노동자들. 노동조건의 측면에서 일부 약소한 상승이 있지만, 이는 직무분석과 노동에 대한 강제적 분리를 통해 구조조정의 용이성과 노동에 대한 저임금화를 동시에 꾀함으로서 노동 유연화를 더욱 끌어올린다. 이러한 전체 구조 속에서 무기계약직은 결코 양질의 고용형태로 전화할 수 없고, 비정규직 사용은 규제될 수 없다.
이렇게 유연화 기조를 유지한 채로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 정책이 낳는 결과가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 사태이다. 이름만 볼 때는 정책의 수혜자여야 할 이들이 정책으로 인해 해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아직 대책을 내놓지도 않았다. 다만, 2015년까지 정규직화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만 있다. 무기계약 전환이라 하더라도 그에 소요되는 예산 책정도 없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의지는 끊임없이 표명되고 있다. 그 하에서 각 기관과 지자체 등에서는 알아서 구조조정에 과정에 돌입했다. 2년 미만자를 해고하고, 계속해서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수 있는 15시간미만으로 계약을 강제 전환한다. 외주화도 추진된다. 정규직화해야 할 대상을 알아서 사전 축소하고, 가능하면 완전히 없애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해고가 바로 박근혜 정부 하의 정규직화가 어떤 모습일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앞서 말했듯 정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를 34만으로 추산한다 하더라도 그 모두가 정규직화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 충분히 외주화되고, 상시 지속 업무로 판단될 수 있는 업무들을 축소한다. 규정상으로 업무의 내용을 분리하고 보조적 업무로 위치지우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정규직 교체 사용이 가능한 업무로 분류한다. 정규직화를 해야 하는 그 시점에 2년 이상자가 없도록 사전에 고용은 해지된다. 그렇게 최소화된 인원이 전환되는 고용형태는 차별과 고용불안이 여전히 존재하는 무기계약직이다. 즉, ‘정규직화’라고 내걸었지만 그 정책은 이미 지금 벌어지는 해고에 의해 무의미해지는 정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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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쟁취, 해고에 맞서는 투쟁부터 시작해야
이에 맞서기 위해 어디서부터 조직되어야 할까. 제대로 정규직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바로 현재 벌어지는 해고에 맞서는 투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지속될 해고에 맞서 싸우고, 해고를 막아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일하고 있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이 아닌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해고를 그대로 두면 정부 정책에 따라 정규직화 될 대상 자체가 극히 축소되거나 아예 없는 곳도 생긴다. 그리고 상시 구조조정, 비정규직 교체사용 시스템은 여전히 그 밑바닥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해고를 막는 싸움은 바로 비정규직 교체 사용시스템을 막아내는 것이고,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쟁취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묶어세우고 ‘해고를 금지하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 무기계약직이 또 다른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무기계약 전환이 아니라 상시업무에 대하여 상시고용으로, 또한 직무나 업무에 따라 차등되지 않는 노동조건의 쟁취, 시간으로 분리되지 않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해고를 금지하기 위한 투쟁은 중요하다. 지금의 무기계약 전환과 비정규직 해고는 동전의 양면처럼 꼭 붙어서 고용불안정의 구조화에 힘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하지 말고 상시구조조정 제도를 넘어서자
그런데 누구나 알다시피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넘어서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공공부문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총액인건비 제도와 정원제한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안정된 일자리 창출을 제도적으로 가로막고 있으며, 이것은 정부의 의지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적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때로는 투쟁을 조직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총액인건비제로 인해 무기계약 전환에서 선별적 정규직화와 해고가 발생하고, 정원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이 불가하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투쟁 속에서 이런 사측의 태도에 부딪치면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는 투쟁으로 돌파하기 어렵다는 포기의 마음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함께 싸워야 할 노동자들을 같이 조직하여 묶어세우는 것을 회피하게 되거나, 우선 무기계약으로 전환된 사람들의 문제부터 해결해 보자는 생각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폐지와 개정이 근본적 문제이기는 하나, 그것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투쟁의 과정 속에서 제한된 예산의 문제도, 정원의 문제도 뛰어넘는다는 생각으로 나서야 한다. 정원 제한에도 불구하고 투쟁으로 정규직 전환을 이루어낸 사례도 분명 있다. 또 정규직 전환에 예산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정밀하게 계산하여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정책을 내놓았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정책을 믿고 최대한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드러내고 싸우는 일이다.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이 아님을, 지금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노동자들임을 주장하며 싸워야 한다. 그리고 이미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전체의 싸움으로 확대하면서 함께 하는 방법을 찾는 것에서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