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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성결혼 논의와 한국 성소수자의 현실

[기고]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투쟁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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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전 세계의 이목은 미국 연방대법원 심리가 열리고 있는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다. 소위 동성결혼 금지법으로 알려진 연방 법률, ‘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리가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각 주마다 법률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기도 하고 파트너십 까지 인정하기도 하지만, 연방 차원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이는 주 차원이 아닌 연방 차원의 결혼으로 인한 혜택(1,138가지라고 알려져 있다)를 동성 부부 또한 누릴 수 있다는 실질적 의미와 더불어 동성 결혼에 대해 ‘합법적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사건에 대한 판결로 낙태 금지가 연방 차원에서 위헌화 된 것과 같은 큰 변화를 이번 판결이 일구어낼 수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다.

약 20년 전 미국 사회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의 결과물에 다름없던 ‘결혼보호법’의 위헌 심의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1993년 하와이 주 법원에서 동성 결혼 면허 거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미국 사회가 패닉에 빠지자, 부랴부랴 만든 법이 ‘결혼보호법’이다. 이 법의 골자는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점이고 한 주에서 이루어진 동성결혼을 다른 주에서는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시 ‘결혼보호법’에 사인했던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현재 오바마 행정부에서 평등 결혼의 강한 지지자가 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아이러니이다. 그만큼 이 법은 불과 20년이 지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낡은 법이 되었지만, ‘평등 결혼’을 향한 움직임만큼은 20년 동안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움직임이 되었다.

미국은 오히려 이 움직임에서 뒤쳐진 국가란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사한 문화권의 일반적인 경제 발전 국가에 비해 미국에서 여전히 동성 결혼이 논쟁이란 점이 오히려 예외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각 주의 소도미법(동성애 처벌법)을 위헌으로 각하시킨 것은 2003년이다. 2001년에는 네덜란드에서, 2003년에는 벨기에, 2005년에는 캐나다에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진 것에 비해 한참 뒤늦은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를 필두로 현재 워싱턴 주까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미국 주는 9개 주이다. 이들 주에서도 최종 합법화 과정까지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지만, 아직까지도 부침을 겪어야 하는 주 역시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캘리포니아 경우 주 의회와 고등법원에서는 동성결혼을 합법화시켰지만 주민 투표로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된 경우이다. ‘Proposition 8’이라 불리는 이 법은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에 상고된 상태다. 캘리포니아 이외에도 많은 주에서 주민 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 바 있었고, 동성결혼 반대론자들은 지금도 주민투표 발의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보수 기독교 세력에게 동성결혼은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동원하는 데에 매우 활용하기 쉬운 도구로서 작용한다.

[출처: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공식 블로그]

찬성과 반대에 대한 극한 대립이나 선정적 보도 내용 등을 소거하고 본다면 오히려 흥미롭게 보아야 할 부분은 ‘결혼권 운동’의 성장이다. 1993년 하와이 법원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했을 때의 논란은 ‘동성결혼 인정 여부’ 정도였으나 현재 오바마 시대의 동성결혼 인정은 ‘평등 결혼(marriage equality)’의 구호로 대변된다. 1969년 스톤월 항쟁 이후 성장한 미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소도미법’으로 대표되는 동성애 처벌로부터 성소수자의 기본권과 존엄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오늘날 ‘평등 결혼’은 친밀성과 시민결합을 새로운 시민권의 영역으로 상징화한다. 관계 결합 혹은 결혼에서 상대편의 의미를 ‘이성’이 아니라 ‘동성’으로 확대해 나감으로써 기존의 가족, 소위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가족의 의미를 확대하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흐름이다. 사회학자 리차드슨의 구분처럼 성소수자의 성적 시민권을 행위 기반, 정체성 기반, 관계 기반 권리로 나눌 때 ‘평등 결혼’은 소위 관계 기반 권리, 즉 동성간 파트너십의 관계를 국가나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를 대변하는 적절한 구호인 셈이다.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부분은 미국 성소수자들에게 ‘결혼권’이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주요한 구호인 적은 없었던 점이다. 1969년 스톤월 항쟁 직후에 생긴 소위 ‘스톤월 세대’에게서는 결혼과 가족은 소위 기성 세대의 상징물이었으며, 가족 인정에 대한 기대는 별반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카고 게이 해방 그룹’의 경우에는 게이들의 핵심 덕목은 ‘이성애 기반 핵가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관심을 가족 인정으로 전환하게 된 데에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 보수주의와 에이즈 위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에이즈 유행으로 청년-중년의 게이들이 수없이 투병, 사망하게 되면서 병원 방문 권리, 의료에 대한 결정권, 재산 상속권 등은 일상다반사처럼 경험하는 문제가 되었다. 질병이 지나가면서 할퀴어진 커뮤니티를 재건하는 것은 기존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커뮤니티 참여, 대화, 설득 등의 레토릭을 통해 채워지는 과정이었다. 전쟁 후 베이비붐이 생기는 것처럼 에이즈 위기를 겪은 후 베이비붐이 생기면서 많은 레즈비언들이 게이들의 도움을 얻으면서 아이를 출산, 양육하기도 하였다. 80년대 이후 미국의 많은 레즈비언 게이들의 생활은 파트너가 동성일 뿐 실제 이성애자 핵가족과 유사한 가족 모델을 갖게 되었으나 아이를 둘러싼 양육권, 상속의 문제 등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동성결혼이 미국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인권운동의 주요 구호가 된 데에는 이와 같은 성소수자 내 가족 모델 변화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에 관한 논의가 격렬한 것은 이 문제를 보수적 정치 문제 중 하나로, 찬반 문제로 가져가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 중심 복지 모델, 특히 전 사회적 복지 모델이 아닌 직장 내 복지 모델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료보험의 경우에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로는 직장 고용인, 혹은 직장 고용인 배우자로서 혜택을 받는 방법이 유일한 경로에 가깝다. 실제 많은 LGBT들이 직장에서 동거가족 혜택을 위해 싸웠으며, 기업 문화를 바꾸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 인정받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인가에 대해서는 LGBT 운동 내에서도 논란이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가족 인정’을 지나친 마법적 해결책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존재하며 한편에서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결혼은 기본 시민권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동성결혼 싸움은 한편으로 매우 화려한 결과를 자랑하지만 한편에서는 아직 미국은 모든 차별 사유에 따른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고용평등법도 제정하지 못했으며, 오바마 정부 하에서 오히려 가정 폭력 및 동성애혐오 폭력으로 인한 LGBTQ(Questioning, 성 정체성을 탐구 중인 사람) 청소년 홈리스를 위한 예산은 절감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평등 결혼’은 충분히 지지할 구호이고 6월말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결혼보호법’이 위헌판결 나오길 바라지만 ‘결혼’으로의 관계 인정이 성소수자 권리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 결혼을 위한 투쟁과 그 성과는 미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존재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를 시민으로 인정하고 있는 법률이 ‘국가인권위원회법’ 하나에 불과하고 도리어 이 법에서조차 성소수자 내용을 삭제하라는 편협한 태도들이 팽배하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결혼’ 등 관계를 인정받기 이전 존재조차 아직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동거 가족들 혹은 한 부모 가족의 관계 인정 역시 결혼 가족 인정보다 훨씬 문턱이 높다. 헌법상 평등권의 기본법으로서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를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