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만 명의 정리해고자가 길거리로 내몰리는 시대,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고용형태에서부터 주기적 해고가 예정되는 시대, 그야말로 해고가 일상화된 시대에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거리의 사람들과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자 연대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하는 날이다. 희망을 꿈꾸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현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비자발적 고용관계의 종료를 당하는 것을 해고라고 한다. 이른바 부당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무런 대응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평생의 한으로 남는 경우도 있고, 노동위나 법원에 부당해고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하는 경우도 있고, 노동조합의 임단투를 통해 원직복직하는 경우도 있다.
자본주의체제를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해고는 생존권의 박탈을 의미한다. 해고자와 가족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그리고 대체수단이 없는 물적 조건을 박탈하는 것은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사실상의 목줄을 죄는 행위이다.
따라서 해고자들은 명예회복과 함께 삶의 조건을 절박하게 재확보하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의 투쟁이 대부분 한 두 해가 아니라 길게는 10년, 20년이 걸리는 장기투쟁화, 목숨을 담보한 극단적 투쟁을 하는 것이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긴 시간의 고통 속에서 심신이 피폐해진 해고자들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절망 속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이유가 된다.
쌍용차 24명의 원통한 죽음, 작년 연말부터 최강서, 이운남, 윤주형 열사 등의 죽음은 자본에 대한 분노를 넘어 운동 내부의 자성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제대로 싸우지 못했거나, 민주노조운동의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인 해고자를 사수하지 않았거나....
여하튼, 길거리에 넘쳐나는 수많은 해고자들이 사규에 의한 최고 중징계를 맞은데 이어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 비통한 현실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이제 해고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에 대해서 만시지탄이지만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이 비극의 행진을 끝내기 위해서 성찰적 문제의식과 공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박함이 ‘전국해고자의 날’을 고민하고 개최하게 만들었다. 해고자들의 이 비극적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든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그들이 겪는 모진 절망의 시간을 함께 하겠다는 연대의 물결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개최한다. ‘전국해고자의 날!’
세상천지에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가득하다. 현장으로 돌아가려는 해고자들의 처절한 몸짓과 찢어지는 가슴에도, 외면당했던 거리에도 봄은 왔다. 절망을 걷어내고 희망의 새싹이 움트는 복직의 봄은 언제 맞이할 것인가! 그래서 투쟁의 나날을 보내는 거리에서 맞이한 봄날, 그들은 웹자보를 통해 이렇게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전국해고자의 날! 봄날은 왔어! 해고는 갔어!”
3월 29일 밤과 30일 낮 시청광장에서 여러분들의 함께하는 손길, 눈길, 발길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기다릴 테다. 가슴 절절하게 그리던 해고자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