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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이성재의 슬픈 독백, '평균은 탈락이다'

[기고]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가족이데올로기, 기러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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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예능프로그램이 바람몰이에 나서고 있다. 혼자 사는 남자의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프로그램으로 각기 다른 남성 6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소소한 감동과 슬픔이 잘 묻어나 있다. 그 중 김태원, 이성재는 결혼은 했지만,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바람에, 아내와 자식을 외국으로 내보내고 홀로 남아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기러기아빠’다.

  MBC <남자가 혼자 살 때> 갈무리 [출처: 뉴스민]

그러나 기러기아빠는 예능프로그램의 좋은 소재거리만이 아닌 오늘날의 가족을 의미를 되묻고 있다. 지난 3월 초,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치과의사가 방 안에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아내와 딸은 미국으로 떠났다. 2003년, 이때부터였다. 그가 혼자가 된 시점, 병원은 잘됐다. 하지만 환자 수가 많든 적든 이런 꼬리표가 붙었다. 기러기아빠.

그가 아내에게 남긴 유서에는 “한국에 와서 잘 살 자신이 있고 행복할 수 있으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미국에 남아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죽음을 결심한 순간까지 아내와 자식의 한국 생활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실 기러기 아빠는 이전부터 있었다. 가수 이미자가 1969년 발표한 '기러기아빠'는 60~70년대에 가족을 남겨두고 중동 건설 현장과 베트남전에 돈 벌러 떠난 기러기아빠의 아픔을 잘 노래하고 있다. 이 당시 기러기아빠는 가부장이데올로기에 기대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가장으로서 ‘마지막 선택’이자 ‘쓸쓸한 고군분투’였다면, 오늘날의 기러기아빠는 신자유주의경쟁논리가 빚어내는 다양한 경쟁과 낙오의 현실에서 평균수준으로 더는 유지하기 어려운, 중산층 가족의 생존을 위한 ‘과감한 결단’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에 가까운 것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교육이 무너져 내리고, 언제 잘릴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신자유주의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사회는 가족의 평균적 삶과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수시 때때로 탈락하는 현실에서 평균을 넘어서기 위한 과감한 결단과 투자만이 미래의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절박성이 제2, 제3의 기러기아빠로 스스로 나서고 있다.

가족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러기아빠가 되어야 하는 현실, 가족 간의 교감과 애끓는 아버지의 정을 미루면서까지 평균이상의 가족을 위하여 고통을 견딜 것을 강요당하는 기러기아빠는 신자유주의 가족이데올로기가 빚어낸 새로운 가족문화다. 그래서 기러기아빠라는 언어는 어쩌면 가족 간의 신뢰와 교감이라는 ‘애틋한 언어’보다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어떠한 희생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굳건히 지켜야 하는 중산층 가족의 ‘생존의 언어’다. 그야말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비극적 현실이다.

한국사회의 기러기아빠는 물론이고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가족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는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 자료를 보면 2010년 기준 국내외 다른 지역에 가족이 있는 가구는 245만1000가구로, 전체 가구(1733만9000가구)의 14.1%에 달하고 있으며, 이 중 결혼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이른바 ‘기러기 가구’는 115만 가구에 달한다. 이는 전체 결혼 가구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10년 전인 2000년 5.9%에 비해 배 가까이 증가한 결과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가족이데올로기가 기러기아빠를 호명하고 있다. 기러기아빠의 가족문화는 평균에서 탈락이라는 두려움이 빚어낸 기러기아빠의 슬픈 독백이다. 기러기아빠의 슬픈 독백은 자신을 위로하지 못하고 여전히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