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의 필요성
양 후보 모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 문제가 우리 운동의 사활이 달린 문제라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갑용선본에서는 비정규불안정 사회를 종식시킬 계급 주체의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해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백석근선본에서는 계급대표성의 강화와 노자관계의 세력 불균형에 파열구를 내는 중심고리로 판단하고 있었다. 전체 노동자의 83.7%가 10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조직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조직화의 가능성이 낮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현재의 상태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많은 고통을 짊어지고 가장 폭발력 있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구조를 갖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는 길이라는 점에 양 후보는 동의하고 있다.
그동안 민주노총에서는 2기 전략조직사업을 통해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지역별 조직화를 목표로 매진해왔다. 하지만 백석근선본에서 평가하고 있듯이 총연맹의 인적·물적 집중성은 확보되지 못했고 핵심사업으로 상승시키지도 못했다. 1기 평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던 연맹별 나눠먹기식 사업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갑용선본에서는 ‘산별’에 대한 평가 속에서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후 중소영세사업장 전략조직화가 중요한 사업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구조로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석근 선본에서는 조직화전략사업본부 구성, 이갑용 선본에서는 자본주의 대응 이데올로기센터와 전국적이고 전략적인 조직화 대응기구 구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갑용선본에서는 노동과 정치, 생활의 의제를 통합하여 주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특히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략조직사업은 전국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하며, 지금처럼 민주노총 미비실에서 담당해야 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공단정책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 점에 양 후보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 의제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은 중소영세사업장 문제를 본격적인 투쟁의 의제로 제기하지 못했다. 주간연속2교대제 등 대공장 중심의 이슈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의제의 개발이나 투쟁, 그리고 이를 위한 민주노총의 집중적인 투쟁은 잘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 7기 임원들이 어떤 의지를 갖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의제를 사회화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양 후보 모두 의제의 사회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현실화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이지 못하다.
이갑용선본에서는 정리해고·비정규직 관련 악법 철폐 투쟁, 최저시급 1만원 쟁취 투쟁, 35시간 노동시간 단축 투쟁, 기본소득 도입 투쟁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의제 차원이 아니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을 조직하고 투쟁의 대오로 나서게 하기 위해서는 현 정세에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어디서 분출되고, 제시된 의제와 어떻게 맞물리고 투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판단하고 분석해야 한다. 선언적 수준의 요구로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요구가 의제화되고 투쟁으로 만들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백석근선본에서는 산업·경제·노동시장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최저임금 투쟁에서부터 그 의제화를 시작하고, 나아가 그 전선을 확대자고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요구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저임금 요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요구가 반영되고 그것이 지역별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내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최저임금 투쟁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최저임금의 결정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순간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나서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쟁전선을 확대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과제에서, 이갑용 선본에서는 노동허가제 전환이나 단속추방 중단 등 정책적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백석근 선본은 조직활동가 배치와 이를 위한 기금 운영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는 둘 다 필요한 문제이다. 또한 정주노동자들의 교육과 설득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다가와있다. 별도의 활동가를 배치하거나 제도적 투쟁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것을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과제로 만들도록 하는 교육과 공동의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등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 앞에 닥쳐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각종의 정책대안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해도 이것이 민주노총 내부를 설득하고 대공장 노조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긴장을 걸지 못하면 사실상 말뿐인 정책이 되기 쉽다. 이런 과제를 민주노조운동이 중요한 과제로 한다는 것은 여전히 중소영세사업장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일부의 담당자들의 몫으로 간주하는 구조를 깨고 대공장 중심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 과정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핵심 과제로 놓아야 한다
양 후보 모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화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고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전략적 기구 설치 등 매우 구체적인 대안을 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매우 문제의식이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는 후보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한된 자원, 통제되지 않는 대공장 노조, 그리고 활동가들의 무기력함이 결합되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무엇을 가장 핵심적인 고리로 잡고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공단조직화 워크샵’ 단위들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민주노조운동의 미래에 대한 전략적 투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며, 7기 임원들이 힘을 쏟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많은 활동에 하나를 더 보탠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민주노총의 활동방식을 전면적으로 전환시켜야 할 텐데, 이미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여기에 어떻게 복무하게 할 것인지, 혹은 그런 방식의 활동변화에서 예상되는 기존 조직운동의 반발을 어떻게 제어하면서 설득하고 함께 투쟁하도록 만들어나갈 것인지가 고민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중소영세사업장 전략조직화는 수많은 활동 중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전히 기존의 관성과 활동가들의 무기력으로 인해 뒤로 밀리는 사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민주노조운동의 미래에 대한 전략적 고민 속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조금 더 진지하고 구체적이고 전투적인 접근을 기대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기간 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 피땀을 흘려온 일반노조, 지역노조, 공단노조, 그리고 전략조직화 사업단 활동가 등 무수히 많은 동지들의 경험과 고민이 축적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그 성과를 무화하지 말고 그 동지들의 경험과 고민을 받아 안아 더 진전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빛나지 않아도 묵묵히 조직사업을 해온 그 동지들의 노력으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의 가능성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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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람들(성서공단노동조합, 한국노동안전보건 부산연구소,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녹산공단·반월시화공단 조직화사업에 참여하는 개인들, 사회진보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