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국내 조선업체 수주량은 750만 CGT로 2008년 대비 41%로 줄어들었고, 수주잔량도 2008년에 비해 57%로 급감했습니다. 세계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영업이익률도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3월 6일에는 삼성중공업이 유럽 선주사로부터 수주한 4척의 천연가스저장 선박의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습니다.
중소 조선소의 사정은 더욱 심각합니다. 조선경기 침체로 허덕이던 세코중공업, 삼호조선, 세광중공업은 2011~2012년 청산했고, 신아SB, 21세기조선 등 중소조선소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상태입니다. 조선강국 한국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박 수주량 급감, 한국 조선업 사상 최대의 위기
그런데 한반도 남쪽 끝 거제 옥포만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1년 동안 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서울경제>는 지난 3월 7일자 1면에 “서프라이즈! 대우조선해양, 일자리 1년 새 9,000개 창출”이라는 대형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우해양조선의 핵심 사업이 컨테이너선 등 일반상선에서 해양플랜트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한 척당 100~200명의 노동자가 투입되는 일반상선에 비해 대형 해양플랜트 작업에는 10배가 넘는 2,500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년 사이에 정규직 노동자 900명, 사내하청 노동자 8,200명 등 총 9,100명이 늘어 정규직 13,200명에 사내하청 27,300명을 합쳐 총 40,500명이 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1년 새 새롭게 창출한 일자리의 90%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것이며, 현재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고 있는 사무직, 기술직, 생산직 노동자 40,500명 중에서 67.4%가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뜻입니다.
1년 새 정규직 900명, 사내하청 8,200명 증가
대우조선해양의 홈페이지에는 ‘세계 초인류 조선해양 전문기업’이라고 소개하며 ‘인력 30,000여명(협력사 포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년 사이에 늘어난 9,100명이 포함되지 않았거나, 물량팀과 일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않은 숫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대우조선해양이 자신들이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당당히(?) ‘인력’에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두 차례나 판정한 현대자동차나, 지난 2월 28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판결한 GM대우차,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이마트 모두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자신들의 ‘직원’이나 ‘인력’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대우조선해양이 자신들의 직원으로 표현한 이유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의 ‘인력’(?)
한국조선협회의 <조선소별 인력사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2011년 말 기준 사내하청 노동자는 15,500명이며, 전체 직원은 27,201명입니다. 여기에 사내하청 노동자 8,200명, 정규직 900명이 늘어났다고 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23,700명, 전체 직원은 36,301명이 됩니다. <서울경제> 기사와는 대략 4천명 가량 차이가 납니다.
이 인원 차이는 물량팀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파워공 등 일부 고숙련 노동자 중심으로 활용되어왔던 물량팀이 다단계 하도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취부, 용접, 사상 등 선박건조의 거의 대부분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하청업체당 1개 이상의 물량팀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사내하청 노동자 현황을 보면 충격적입니다. 기능직(생산직) 노동자의 68.2%가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입니다. 즉 현장의 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해양플랜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입니다. 이는 사실상 비정규직 공장이라는 것입니다.
[출처: '한국조선협회 2012년 조선자료집' 발췌, 보강] |
해양플랜트 기능직 노동자 10명 중 9명 사내하청
지난해 대우조선은 세계 조선업계 처음으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100억 달러 이상 수주해 조선업계 수주실적 1위를 달성했습니다.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해체선 등 현재 옥포조선소에는 모두 9기의 해양플랜트 건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9기의 해양플랜트 건조작업에 모두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입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새로 뽑은 정규직 노동자 900명은 모두 기술직 엔지니어이며, 생산직 노동자는 모두 사내하청과 물량팀으로 해양플랜트를 건조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사장은 “해양플랜트는 선가가 일반상선의 10배나 되며 투입되는 인원도 10배가 넘는다”며 “이를 통해 회사의 이익증대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최대 화두인 고용창출에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양플랜트를 통한 대우조선해양의 고용창출은 100% 비정규직이며,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증대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주가 늘어나면 사내하청을 늘렸다가 건조작업이 끝나거나 수주가 줄면 비정규직을 자르는 것이 ‘고용창출에 크게 공헌’하는 것입니까?
대우조선해양 고용창출 100% 비정규직
대우조선해양뿐만이 아닙니다. 선박건조 분야에서 기능직(생산직) 대비 현대중공업(66.3%)과 삼성중공업(63.9)의 사내하청 비율은 모두 60% 이상이며, 현대삼호중공업은 73.6%이고, STX조선은 무려 86.2%에 달합니다.
대한민국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노동자의 70%는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이며, 해양플랜트의 경우 8~9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출처: 한국조선협회 2012년 조선자료집] |
비정규직이 만드는 대한민국 배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2시 10분 5~6톤 짜리 선박 받침대 이동 작업을 하던 노동자 박모(48) 씨가 받침대 아래에 깔려 숨졌습니다.
이어 두 달 뒤인 1월 15일에는 오후 2시 30분 조선소 내 2도크에서 컨테이너선을 조립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민모(23) 씨가 325톤짜리 선박 블록이 머리위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2월 7일 오후 2시 30분에는 대우조선해양 컨테이너선 위에서 선박건조작업을 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전모(18) 씨가 20여 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꽃다운 청춘이 배를 만들다 사라졌습니다.
3개월 동안 세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여졌고, 이 중 두 명이 사내하청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생산 공정의 7~90%를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 조선강국 대한민국의 ‘쌩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달 20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업 공기를 맞추는 데 급급한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3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는 3월 14일 서울로 올라와 대우조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배를 만들다 죽어나가는 노동자도 비정규직
지난 2월 20일 경총을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에게 이희범 경총 회장은 “고용경직성이 강하다. 이 점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고려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이희범 경총 회장은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모든 생산공정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운영해왔던 경남 창원의 STX중공업 회장입니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고용경직성에 대해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입장을 고려해서 해법을 찾자”고 말했습니다.
전국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일자리를 늘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이 죽음의 조선소 대우조선해양입니까? 생산공정이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로 운영되는 비정규직 조선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