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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지부 조합원들 믿고 끝까지 버티겠습니다"

[기고] 1895일 투쟁 재능지부 노조, 종탑농성자들이 조합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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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일을 투쟁하면서 우리 조합원들은 모두 모여 마음속 이야기를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10년을 넘게 함께 일해온 동료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땅바닥에 질질 끌려다녔을 때도, 용역깡패에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성희롱을 당하고 폭행당하고 협박을 당했을 때도,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보내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었을 때도, 생일 떡을 만들어 동료와 나누어먹으라고 싸주시던 늙은 어머니에게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을 때에도, 해고되어 거리에 나섰지만 눈도 맞춰주지 않던 조합원들의 차가움에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도, 21일간의 단식 후 몸속에 커다란 혹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몸보다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어서 나오라는 조합원들의 질책을 들었을 때도, 가슴에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깨자마자 농성장으로 돌아왔을 때도, 40도가 넘는 열로 정신이 혼미해져 농성장에 누워있을 때에도 말입니다.

  종탑에서 농성중인 오수영, 여민희 조합원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제 몸과 마음속 깊숙이 묻은 채 5년을 넘게 살아왔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나약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나 때문에 투쟁에 해가 될 것 같기도 해서 신음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가끔 누군가 신호를 보내더라도 ‘너만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는 이유로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혜화동농성장에서, 시청농성장에서 외롭게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우리 투쟁이 끝나면 그때 위로하고 함께 치유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면서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잘못한 것 같습니다.

제 몸 안에 쌓아두었던 상처들이 곪디 곪아 이젠 내 몸과 마음을, 타인의 몸과 마음을 해치고 있으니까요. 2007년 12월 혜화동 재능교육본사 앞에서 너무나 외롭게 시작한 투쟁, 추위와 냉혹함을 온몸으로 견디며 우리 조합원들이 5년 넘게 일상을 버리고 거리에서 처절하게 견뎌온 세월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숨죽이며 살아온 진실한 그 마음들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진실은 아프게 깨져서 온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조합원들,

우리가 처음 고공농성을 계획할 때, 서로를 걱정하면서 서로 자기가 결의하겠다고 했던 마음,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준비해왔던 시간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하려는 노력들, 우리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곪아 있던 상처가 터져 잠시 상처를 돌아봐야 하고, 약을 처방해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곪은 염증은 사라지고 새살이 돋아날 것입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이니까요.

누가 뭐라 하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던 그것, 재능자본과의 투쟁에서 승리, 재능교육지부 12명의 조합원이 모두 함께 하는 승리, 반드시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쟁취할 승리의 그날을 위해, 그 승리를 온전히 기뻐하며 맞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조금만 더 씩씩해집시다. 조금만 더 강건해집시다. 무거운 가방 들고 그 옆에 노동조합 깃발을 펄럭이며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말입니다.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온 첫날부터 영하 20도의 날씨를 스티로폼 한 장 없는 차디찬 바닥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조합원들 고맙습니다. 고립된 종탑, 이 공간에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해주는 우리 조합원들 고맙습니다. 우리도 더욱 강건해지겠습니다. 지상에서 함께 손잡고 웃을 수 있는 그날까지 조합원들을 믿고 끝까지 버티겠습니다.

함께 하는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강경식, 김경은, 박경선, 유득규, 유명자, 이현숙, 정순일, 황창훈
사랑합니다. 우리 동지, 우리 조합원들.

재능지부농성투쟁 1895일 차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오수영, 여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