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현행 15부2처18청을 17부3처17청으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르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가 생기고, 교육과 과학기술을 통합하였던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분리되었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없어졌던 해양수산부는 5년 만에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총괄 기능은 독립부처 대신 미래창조과학부의 전담차관이 담당하는 것으로 정해졌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승격되었다. 청와대의 개편도 이루어져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바꾸고,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여 정부 최초로 청와대에 장관급이 3명으로 늘어났다.
한 달 여가 다된 지금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새 정부의 조직개편안 처리 방안을 두고 여야5+5협의체를 구성하여 의견을 조율하고 있으나, 핵심 쟁점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조직개편안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공약을 나름 반영하고 있기는 하되, 개편안 마련 과정에서 공론화내지 합의가 부족했고, 졸속으로 발표된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이 몇몇 분야의 공공성을 위협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시민사회단체들과 각 부처의 기능과 업무 이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는 일부 이익집단들을 제외하면 정부조직개편안이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부조직개편안은 각 행정부처의 편제를 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고, 공공서비스를 국민에게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방향을 포함한다. 또한 각 부처의 관료들에게는 인사문제 해소와 정부 기금 및 예산 배정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치열한 다툼의 대상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더라도 공공서비스 제공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조직개편이 많은 정책에서 난맥상을 초래하고 국정운영의 불신을 야기한 원인 중의 하나였음을 감안할 때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차원에서 정부조직개편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함의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시대, 개발 패러다임의 부활
우선 국민 의견수렴 없이 일방통보식으로 진행된 정부조직개편논의 과정이 문제다. 새누리당의 제18대 대선 정책공약집은 “정부조직 개편은 반드시 충분한 기능 및 조직진단을 통해 관련 조직 전문가와 공무원의 의견 수렴을 거친 후 단행”하겠다고 명시하였다. 하지만 이번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은 공약집에서 밝힌 것과는 달리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정부조직개편안 작성을 주도한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와 위원 3명을 제외하고는 인수위원들조차 자신이 관장하는 부처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몰랐을 정도다. 개편안을 발표하기 전 여야 정치권과 의견 조율을 거쳤던 과거 관행을 어기고 야당에도 사전 설명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각 부처 업무보고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한 것은 개편의 주요 당사자인 부처와 공무원들의 의견 또한 인수위의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각 부처 업무현황에 대한 충실한 검토 없이 정부조직개편의 밑그림이 그려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은 박정희 시대의 개발 중심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있다. 보수언론에서는 부처 수가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보수정권이면서도 ‘큰 정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를 ‘작은 정부, 큰 정부’의 프레임에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의 개발 패러다임이 변형되어 관철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선 창조경제를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경제부총리제를 부활하고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였다. 경제부총리제의 부활은 경제부처가 해온 역할과 그 폐해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경제부처는 정책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시장지상주의와 친투기자본, 친재벌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모피아(MOFIA)로 불리면서 권력 네트워크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경제정책에 있어서 공공성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하여 신설된 기획재정부 하에서 경제부처의 권력은 훨씬 더 강화되었고, 그에 따른 폐해 또한 막대하였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 권한을 강화하여 기획재정부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하도록 한 것은 개발연대 시기의 경제기획원 부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의 근저에 있는 ‘창조과학을 통한 미래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과학입국, 기술자립’ 구호를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부처의 실제 기능은 예전 과학기술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과학기술부의 핵심 기능이었던 대학지원, 기초연구, 산학협력, 원자력 등이 교육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안전 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식품의약품 안전의 강화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신설하고, 각종 재해,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칭하였으며, 경찰인력을 2만명 증원하는 등 경찰의 생활안전 기능을 단계적으로 보강하기로 하였다. 인수위 조직을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 신설된 법무 행정 분과위가 법질서 사회안전 분과위로 바뀌었는데, 이는 법질서와 사회안전 확립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인수위의 분과위원회 명칭에서부터 표명한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큰 정부론의 틀보다는 개발연대의 권위주의 패러다임에서 파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문제는 이렇게 국민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독립적 원자력안전규제기관으로 출범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미래창조과학부에 소속시켜, 그 독립성 및 투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동시에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더욱 위태롭게 하였다는 점이다.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원자력 안전 규제와 진흥을 분리시키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를 무시한 채 안전역주행한 것이다. 물론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는 원자력 진흥 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전하여 원자력 안전 규제와 진흥 업무를 분리하기로 했지만, 차관급인 위원장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맞서 의사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며, 독립성 또한 예전만 못할 것이다.
관료와 자본의 이해만 강조하는 조직개편 논의
셋째,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은 공공성을 도외시한 채 관료들과 자본의 이해만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상 정보통신부의 부활이라 할 수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 진흥과 방통융합 업무를 담당하고, 방통위는 방송통신 분야의 제한된 규제기능만을 담당하는 ‘합의제행정위원회’로 위상이 격하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아이폰 쇼크”라는 말로 요약되는 방송통신 및 ICT 산업 환경 변화와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국내 ICT 기업들이 처한 어려움에 방통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과거 정보통신부처럼 산업육성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통위가 합의제 형태였고, 과거 정보통신부의 기능이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등으로 분산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MB 정부가 (4대강과 같은 토목사업에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은 반면) ICT 진흥에 대한 정책의지가 부족했으며,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의 부패와 무능력, 그로 인한 잘못된 정책의 실행이 문제라고 봐야 한다.
사실 미래창조과학부의 기능을 확대하는 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방송통신위원회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방통위는 이름만 위원회였을 뿐 위원장에서부터 말단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구 정보통신부 시절의 독임제 근성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방통위 대변인까지 나서서 방통위의 고유 기능과 역할을 유지하기보다 독임제 ICT 전담부처 신설을 환영하고 나서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리고 방통위는 1월 16일 업무보고에서 별도의 ICT 전담부처 신설을 전제로 보고안을 작성하였다가, 1월 15일 인수위가 미래창조과학부에 ICT 전담차관을 두기로 발표하자 보고안을 변경하여 방통위의 기능 중 상당부분을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는 등 미래창조과학부 ICT 전담차관 아래에 흩어져 있던 ICT 진흥 및 정책 기능을 모두 모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인수위는 1월 22일 구 정보통신부 기능을 대부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이런 관료들 아래에서 ICT 정책이 실패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또한 통상교섭조직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 관료들과 이 이해관련인들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에 공공성은,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외교통상부의 통상관료들은 국가경쟁력을 기업경쟁력으로 오도하면서 대기업위주의 통상정책을 펼쳤으며, 특정계층에게 개방의 비용을 전가하였다. FTA 체결로 다수 민중들은 자신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생활결정권을 박탈당할 처지에 있는데도 외교통상부 관료들은 오로지 협상 체결에만 매진했을 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았다. 광우병 논란 등이 있었던 한-미 FTA에서도 외교통상부 관료들은 협상 속도를 제고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렇다고 주로 제조업 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교섭조직을 가져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 부처의 특성상 말이 전문성이지 제조업 부문의 이해에 포획되어 농업ㆍ축산ㆍ금융 분야를 소홀히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상교섭 기능을 특정 부처에 맡기기보다는 이를 특화 전담하는 독립기구를 두는 것이 그나마 나은 개편방안일 것이다.
정부조직개편 논의에서 실종된 공공성, 공공복지
넷째, 경제 산업 분야의 조직개편에만 치중한 나머지 공공성 공공복지 분야에 관한 뚜렷한 대책은 개편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선 과정에서 강조되었던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는 정부조직개편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오히려 ‘경제 부흥’, ‘한강의 기적’ 같은 표현만 강조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 무상 보육 복지 등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불가피하다며 큰 정부 기조의 정부조직개편안을 내왔으면서, 정작 ‘노동’ 문제를 ‘고용’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에 대한 개편방안은 제출되지도 않았고, ‘경제민주화’는 경제부총리의 목표로 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월말 대통령직인수위 경제1, 2분과와의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대선 후 처음으로 경제민주화를 거론하면서 실천의지를 재확인하고 중소기업 지원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사항은 정부조직개편안에 제도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설될 게 확실한 ‘사회보장위원회’가 복지분야의 컨트롤 타워로 부상하겠지만, 관련 부처 장관들로 구성되는 위원회 조직을 경제부총리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 이외에도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싼 많은 쟁점이 존재한다. 사실 어느 부처의 개편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세부 기능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고, 어디에 귀속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큰 그림만 그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실행을 하는 국, 과 단위의 개편을 포함한 정부 직제가 도출되고, 여기에 기반해서 전체적인 정부조직개편안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어느 한 부처의 개편만 잘 되었다고 해서 평가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님은 당연하다.
또한 정부조직개편 논의의 한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조직개편 논의과정에서 각 분야별로 파편적으로 제기되었던 시민사회운동 및 진보세력의 개별적인 대안들을 종합하는 동시에 대중의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권력에의 참여 통로를 확충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조직개편안과 같은 나름의 법, 제도적 대안이 제출되고 현실에서 구현된다 하더라도 결국은 정권을 장악한 쪽에서 어떠한 국정철학 하에 어떠한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