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노령연금 논란에 이어 신뢰와 약속을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수정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보건복지 분야 핵심 공약 중 하나인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국가보장'이 축소될 것이란 추측이 분분한 가운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4대 중증질환' 관련 공약이 당초 약속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인수위는 지난 6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에는 당연히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라며 "공약의 취지는 국민이 부담을 느끼는 질병치료에 꼭 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보장하는데 있으며,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외 환자의 선택에 의한 부분은 보험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혀 선거가 끝난후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공약집을 통해 “의료비 부담 제로!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국가가 지원하겠다”라며 △실직자의 건강보험료 부담 완화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환자 본인부담 의료비 경감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등을 약속했다. 이러한 공약은 당시에도 의료비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우려, 재원마련 대책 부족, 실질효과 미비, 역차별적 부담 증가 등에 대한 우려와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바 있다.
구체적으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액이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건강보험 보장률이 OECD 30개국 중 27위) △특히 중증질환은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건강보험 비급여가 많아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심각하다고 진단하면서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총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현재 75% 수준인 4대 증증질환의 보장률(비급여부문 포함)을 2013년 85%, 2014년 90%, 2015년 95%, 2016년 100%로 확대하는 실천을 공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의 이미지처럼 되어 있는 ‘신뢰’를 지켜내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점점 의문시되고 있다. 보수언론과 관료사회에서 재정 문제를 들어 공약의 수정 또는 폐기를 거론하고 있는데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에 대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간병비나 4인실 이상 상급 병실료, 선택 진료비는 보장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얘기 등이 인수위 쪽에서 흘러나오면서 공약 자체가 크게 후퇴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6일 발표된 보도자료는 이런 시각이 단지 우려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이 공약의 실현으로 ‘암보험’ 등 영업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 전망되는 민간보험업계의 태도와 관련해선 두가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즉 느긋한 태도로 관망하며 공약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과 ‘의료비 보장을 위해 정부 재정만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민영건강보험도 지혜롭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공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이 공약의 실현으로 진료비 부담이 실제로 줄어들지 여부에 대해 알아보자. 2011년도 자료에 따르면 100만원 이상 부담한 환자는 대략 1,118만 명 정도다. 이 중 4대 중증질환에 해당하는 환자는 500만원 이상 환자의 15.1%(51만 명), 1,000만 원 이상 환자의 17.1%(16만 명)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4대 중증질환 환자가 고액부담환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명 중 2명도 채 안되는 상황이라 대상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다른 고액부담 질환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어 불만을 낳을 수 있다.
두 번째로 대상자가 작음에도 실제로 진료비가 줄어드는 효과를 가질 지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자. 건강보험공단이 발행한 건강보험 통계와 진료비실태조사에 따르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0년도 전체가 66.1%로 입원에서 66.2%, 외래에서 46.5%였다. 2010년도 암상병의 전체 건강보험 급여율은 90.7%, 건강보험보장률은 전체가 70.4%였으며 입원은 69.0%, 외래는 75.1%였다. 2010년도 뇌혈관질환의 전체 건강보험급여율은 74.6%, 건강보험보장률은 전체가 66.1%, 입원은 66.2%, 외래는46.5%였다. 2010년도 심장질환의 건강보험급여율은 71.1%, 건강보험보장률은 전체가 69.2%, 입원은 69.5%, 외래는 57.2%였다. 2010년도 산정특례대상 희귀난치성질환자의 건강보험보장률은 전체가 74.6%, 입원은 68.8%, 외래는 79.4%였다.
이같이 건강보험급여율과 건강보험보장률이 차이나는 이유는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의 존재 때문이다. 비급여는 거의 100%본인부담이거나 그에 가깝다. 건강보험급여율은 건강보험급여비와 법정본인부담금을 합산한 금액 중에서 건강보험급여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며, 건강보험보장률은 건강보험환자의 전체 진료비 중 건강보험급여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따라서 급여율과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에 포함되지않는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야 하며, 이를 위한 방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은 2010년도의 전체요양기관의 건강보험급여율은 74.5%였고, 건강보험보장률은 62.7%이며 법정본인부담률은 21.3%이고,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6.0%였다고 밝히며 2010년도 건강보험보장률은 2009년에 비해 감소하였는데, 본인부담률 중 법정본인부담률은 감소하고 비급여 본인부담률이 증가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바 있다.
비급여에는 선택진료비, 차액병실료, 간병비, 주사 및 처치료 등이 포함되는데, 2010년도 비급여진료비의 비중은 선택진료비가 26.1%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병실차액이 11.7%, 초음파가 11.0%로 높았다. 2009년도에 비해 병실차액과 선택진료비의 비중은 감소하였으나 비급여 항목중에서 검사료(1.4%p), 초음파(1.3%p), 치료재료대(1.2%p), MRI(0.8%p)의 비중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최근에 도입이 급증하고 있는 신의료기술에 의한 고가의 검사 및 치료재료의 사용이 증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비급여진료비 중 선택진료비가 31.1%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병실차액이 12.3%, 초음파가 10.5%로 높았다. 종합병원에서는 선택진료비 18.1%, 초음파 13.9%, 병실차액 12.7%, MRI 10.4%로 비중이 높았고, 병원에서는 검사료, 초음파, 주사료, 병실차액 순으로 높았다. 의원에서는 초음파, 주사료, 검사료, 처치 및 수술료가 비중이 높은 비급여진료항목이었다. 박 후보의 공약집에서는 이 같은 비급여진료비에 대해 건강보험에 포함할 것인가와 이에 대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언론보도처럼 간병비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차액 등 의학적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 비급여를 제외한다면 진료비부담을 줄이는 효과는 거의 발휘되지 못할 것이다. ‘항암제 몇 개만 보험적용하는 단편적이고 알맹이없는 빈 껍데기’공약에 그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재원조달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완전 적용에는 암질환만을 살펴보면 2011년을 기준으로 현재 암으로 신규 등록한 환자인원은 221,989명이며, 1년간 진료비용은 1조 8,316억 원이다. 2011년 말까지 누적 암 등록 인원은 1,093,959명이며 이중 진료인원 842,619명이며, 진료비용은 3조 9,666억 원이다. 암의 경우만 추가로 필요한 예산이 대략 1조 3천억 정도이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보장률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연도별로 69.0%->72.5%->74.8%->77.1%->78.5% 수준까지 향상되도록 하는 단계별 보장성 강화방안 시행 시 5년간 총 36.6조원, 단계적으로 연 3.4조~11.4조원이 소요된다고 밝히고 있다. 2013년까지 건강보험재정수지 누적 흑자가 예상된다고는 하나 일시적이라 보험료의 인상이나 국고지원의 확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국고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어서 공약실현을 위해 국민의 부담을 늘이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행복’을 위해 ‘국민부담’을 지우겠다는 모순된 상황을 낳는 것이다. 물론 보장성 확대를 위해 보험료 부담을 감내할 수 있다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동의가 쉽게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애초에 재원대책의 제시없이 장밋빛 공약을 제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간병제도화나 필수 부문의 급여화같은 제도개선이 뒷받침되고 인력확충같은 기반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문제점 즉, 대상이 제한적이고,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재원마련 대책이 부족하더라도 ‘4대 중증질환의 100% 국가부담’공약은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고, 민간보험가입 동기를 떨어뜨려 추가부담을 덜 수가 있다. 민간보험시장의 위축은 의료민영화의 한축을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기반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상급병원과 주요 대형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의료공급체계의 개혁과 수익성을 위주로 한 병원운영기전의 축소를 꾀하는 제도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몰리고 있는 계층에 대한 지원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