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1월 5일 희망버스 때 편지를 쓰고 두 번째네요.
그때 고마웠어요. 송전탑 아래 집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용기 내어 드러내면서 함께하신 동성애자 동지들”이라고 말해주어서 고마웠어요.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울컥울컥했어요. 아마 이름이 먼저 불린 적이 없어서 그랬나 봐요.
‘동성애자’라는 사람들은 항상 없는 걸로 여겨지거나, 있어도 애써 말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삭제돼 버리곤 했거든요. 차별금지법 때도 그랬고, 학생인권조례 때도 그랬고, 마포구 현수막 사건 때도 그랬거든요. 먼저 말해 준다는 게 나에게 그렇게 큰 것일지 몰랐어요. 듣고서야 알겠더군요.
이 편지는 언제나 어색해요. 나는 당신을 잘 모르거든요. 내가 아는 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건만 회사는 끝까지 비정규직지회를 탄압하고 고립시키려 한다는 것과 그것을 막기 위해 여러분이 싸우고 있다는 정도이지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그래서 편지를 쓰게 되네요.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맞으니까요. 비정규직 문제는 내 동생의 문제이고, 내 친구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기도 해요. 그리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곳에서는 인권이든 차별이든 씨알도 안 먹히지요. 그 위에서 춥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언제 서러웠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자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정규직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리 다른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별받는다는 것, 똑같은 일을 하는데 다른 취급을 당한다는 것,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당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지도 몰라요. 내가 겪은 차별과 혐오들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희망버스를 타면 언제나 놀라곤 해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지금 사회에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버스는 그냥 오지랖일 수 있지요. 근데 저는 그 오지랖이 왜 이렇게 멋진지 모르겠어요.
걱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은 제게 많은 힘을 주어요. 틈만 나면 “나 혼자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라고 중얼거리는 냉소 속에서 살다가 희망버스를 타면 충격을 받지요. 희망이라는 단어가 반짝반짝 의미를 찾는 거 같아요.
내가 버려지지 않는 공간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애인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고, 안정된 직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것 말고도 많겠지요. 저는 희망버스가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버려지지 않는 공간.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먼저 듣고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공간. 그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성소수자도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성소수자들이 ‘경계’를 풀고 희망버스에 함께 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가진 성소수자에 대한 ‘경계’도 풀리면 좋겠어요. 냉소와 싸우겠어요.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