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희망을 봅니다

[쌍차 희망버스](1) 철탑 위의 당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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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여러분 때문에 화가 나고 욕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자주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지금 오사카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의 날씨는 올 겨울 들어 아직 한 번도 영하로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라 베란다에 나가 이불을 털다보면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몇 번 왔다갔다하며 이불을 털고 빨래를 널면서 혼자 춥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러다보면 어김없이 여러분 생각이 납니다. 이깟 날씨가 뭐 춥다고, 게다가 3층 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엄살을 떠나 싶어 죄스러워집니다. 그럴 때면 그곳에서 여러분이 느낄 추위를 상상하게 되는데 그 상상 때문에 또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제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상상의 한계, 그리고 도대체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는 막막함 때문입니다. 대통령 후보 찬조 연설을 보며 엉엉 울고,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지인에게 장문의 메시지로 불만을 토로했던 것도 모두 여러분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여섯 살 난 딸아이는 유치원에 갑니다. 세 개의 커다란 사거리를 지나야 유치원 버스 타는 곳이 나오는 데 그 중 두 번째 큰 사거리에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게 작년 5월이니까 아마 그 전부터 해왔던 것 같습니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커다란 피켓을 들고 큰 사거리의 한 쪽 귀퉁이를 차지한 채 묵묵히 서 있는 그들을 처음 봤을 때 사실 저는 놀랐더랬습니다. 그 빨간 머리띠, 손에 든 피켓, 지친 듯 그러나 결연해 보이는 표정까지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부당해고와 관련한 1인 시위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들을 보며 ‘참,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구나, 거기나 여기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화들짝 놀라 저 스스로에게 화를 내었지요. 똑같은 건 하나도 없다고, 그저 사람 사는 곳에 으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뚝, 뚝 끊어버리는 무자비한 폭력을 그저 그런 시선으로 봐 넘기는 건 절대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역시 저는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고작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그들 앞을 자전거를 탄 채 쌩하니 일초도 안 돼 지나가기가 미안해 조금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할 뿐입니다. 그렇게 조금 돌아 집으로 갈 때,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그들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또 저는 여러분을 떠올립니다.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가족, 그곳의 추위, 그곳의 절망, 고독, 희망, 온기까지 말입니다.

춥다고 느껴 죄송합니다. 맛있는 밥을 먹고 깨끗한 화장실을 쓰고 있어 죄송합니다. 사방이 막힌 따뜻한 집에서 편하게 누워 매일 잠을 자서 죄송합니다. 그저 살아가는 자체가 모두 죄송한 일 뿐입니다.

혹시 이런 마음이라도 어여쁘게 봐주실까요? 이런 마음들이 수백 수천이라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될까요? 부디 그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수만, 수백만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움직임이 너무 느려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 여러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좀 더 사람답게,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에도 끄떡 않는 마음들에 절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여러분을 지키는 마음들에서 다시 희망을 봅니다. 내 추위가 아닌 다른 사람의 추위 때문에 가슴 아파 본 게 언제였을까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람’을 되찾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의 ‘사람’은 우리 모두가 지켜드려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이 빚을 갚을 수 있게 부디 꼭 살아주십시오. 이 부탁이 여러분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이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부디 꼭 살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어느 날 시장이든, 버스 정류장이든, 동네 슈퍼든, 그 어느 곳에서든 서로 어깨 부대끼며 살아가는 겁니다. 그때 꼭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정신없어서 앞을 잘 보지 못했다고, 다치신 데는 없냐고, 괜찮으시냐고 꼭 먼저 묻고 미안하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날이 아마, 멀지 않을 것이라고 조금은 먼 이곳에서 저는 믿고 있겠습니다.

덧붙이는 말

* 박선희 님은 다산인권센터 벗바리이며, 당분간 오사카에서 살고 있습니다. 1월 26일 쌍용차로 향하는 희망버스를 응원하는 글을 보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