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남유럽 민중의 위기에 대해 박석삼(진보전략회의)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경제위기와 투쟁을 둘러싼 쟁점을 분석하고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좌파의 과제를 살폈다. 진보전략 창간기획호 9월호에 실린 그의 글을 세 번에 나눠 연재한다.
(1) 그리스 부채위기의 원인과 본질
(2) 그리스 긴축정책과 민중의 고통 및 투쟁
(3) 그리스 총선, 좌파의 대응과 쟁점
그리스 5월과 6월 총선 분석
2012년 5월 6일 치러진 그리스 총선은 트로이카가 강요한 가혹한 긴축정책 하에 그리스 민중들의 고통과 불만이 어느 때보다도 컸고, 20여 차례의 총파업을 비롯한 대중의 투쟁을 경과한 가운데서 치러진 선거였다. 당연히 지난 30년 동안 나라를 망친 양대 집권세력인 PASOK과 ND의 몰락을 가져왔다.
▲ <그리스 각 당 지지율 변화>42) [출처: Wikipedia 등 취합 자료] |
2009년 총선과 비교해 양당의 지지율은 77.39%에서 32.03%로 무려 60% 가까이 하락했다. 또한 이 선거에서 좌파의 지지율은 15.59%에서 29.81%로 배가됐는데 그 대부분은 반긴축의 슬로건을 앞세워 제2당으로 부상한 Syriza(4.60%->16.78%)에 힘입은 것이다. 그리고 2009년 총선에서 5.89%에 불과하던 우익들의 지지율도 19.93%로 증가했다. PASOK과 ND가 잃어버린 45.36%는 좌파에게 14.22%, 극우를 포함한 우파에게 14.04%, 그리고 Syriza의 우파가 독립하여 만든 민주좌파당DL이 얻은 6.11%를 포함하여 중간파 등에게 17.1%로 삼분되었다.
반나치 투쟁의 전통이 있는 그리스에서 황금새벽당과 같은 극우 친나치당이 세력을 확장했다는 것은 경제위기가 히틀러의 집권을 위한 기회였듯이 좌파와 함께 극우의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다시 보여 주었다. 5월 6일 총선의 수혜자는 좌파만이 아니라 극우를 포함한 우익들이기도 하다.
6월 17일 재선거는 부채위기의 해법을 둘러싸고 ‘유로화냐 드라크마화냐(즉 유로존 잔류냐 탈퇴냐)’의 선택을 강요한 보수당인 ND와 ‘긴축이냐 Syriza냐(반긴축이냐)’를 앞세운 Syriza의 양강 대결이었다.
양당은 각각 10.81%와 10.11%의 지지율을 증가시켰지만, 우익과 중도보수와 좌파의 지지율 증감을 보면 각각 -3.92%, 3.26%, 2.91%로 우익의 일부가 보수 쪽으로 이동한 것 외에는 대부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주변의 표가 결속한 것이다.
그리고 ND와 Syriza간에 박빙의 승부를 겨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참가율이 65.10.%(2007: 72.1%, 2009: 68.9%)에서 62.47%로 오히려 떨어진 것은 부르주아 선거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층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누적된 신자유주의적 공격과 트로이카의 야만적인 억압과 수탈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이번 선거국면에서 좌파는 15.59%에서 32.72%로 두 배나 성장했음에도 보수는 49.49%, 우익은 16.1%를 점하고 있다.
즉 대중의 대부분은 여전히 지배계급인 보수우익의 영향력 하에 있다. 이것은 그만큼 좌파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계급간의 갈등과 투쟁이 더 심화되기 전에는 좌파가 중간계급의 대안으로 선택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로 ND와 PASOK, DL로 성립되는 연립정부43) 는 트로이카로부터 약간의 떡고물을 선사받겠지만 그것은 결코 대중의 불만과 분노를 만족시킬 수 없고 따라서 연정은 지속적으로 구조적 취약성을 들어낼 것이다.
한편 지난 5월 총선에서는 제1당에 주는 50석의 프레미엄으로 ND와 PASOK이 149석을 차지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제2당인 Syriza에게 연정 구성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우익이나 친긴축 세력과 타협하지 않는 한 집권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Syriza의 상층부는 집권에 눈이 멀어 친긴축세력을 포섭하려고 했고, 이것은 자본과 대결하는 정부가 아니라 자본의 위기관리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조만간 붕괴되어 보수우파의 귀환이 될 수밖에 없었다.
6월 17일 재선거에서도 Syriza는 지배계급과 트로이카에게 분명한 대결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기존의 입장에서 우측으로 후퇴해, 은행국유화 대신에 공적 통제를 내세웠고, 긴축조치의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 2차 구제금융 이전으로의 회복 등을 내세웠다.
한마디로 동요하고 불안해하는 소부르주아층에게 어필하려고 했다. 그러나 2차 선거 때 좌파의 총지지율이 변화가 없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1차 선거 때 좌파의 성장은 분명 중간계급 하층의 이동에 의한 것이지만, 도시와 농촌을 비롯한 소부르주아 중상층-자영업자들의 지배계급에 대한 지지는 여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3년간의 그리스 민중의 투쟁을 결산하는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자본의 위기국면 혹은 지난 30년간 계속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축적모순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유의미한 좌파정치의 귀환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귀환 속에서 KKE나 Antarsya와 같은 변혁적 좌파보다는 Syriza라는 제도내 좌파가 대중의 지지를 수렴했다.
선거전술을 둘러 싼 공방과 쟁점
▲ 그리스공산당이 선거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 그리스 공산당 인터네셔널(http://inter.kke.gr)] |
이번 선거에서 Syriza는 반긴축을 핵심에 두고 부채지불정지, 재협상, 유로존 잔류, 좌파정부 등을 주장하였고, KKE와 Antarsya는 지불거부와 유로존 탈퇴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전자가 노동자-인민의 권력을 주장하면서 좌파정부에의 참여를 거부한 반면 후자는 좌파정부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주장했다.
KKE는 Syriza를 사민주의 세력이라고 못 박고 있는데, Syriza의 의회주의적 경도와 불철저함에 대하여는 Synaspismos 내의 좌파에서도 비판이 있고, Synaspismos를 좌파 개량주의로 보는 다른 좌파들의 비판도 있다.
그리스의 좌파
그리스에는 이번 총선으로 급부상한 Syriza의 중핵인 Synaspismos와 KKE(그리스공산당) 그리고 Antarsya와 같은 다양한 군소 좌파가 있다.
1918년 출범한 KKE(그리스 공산당)는 반나치 투쟁에서 민족해방전선과 인민해방군을 창설하여 2차 대전 후 세력이 20만 명에 달했다. 1968년 유로코뮤니즘적 경향인 KKE Interior가 떨어져 나가 Greek Left를 만들었고, 1988년 이들과 KKE 그리고 다른 좌파들이 모여 선거연합인 Synaspismos를 만들었지만 KKE가 탈퇴했다.44)
Synaspismos는 1989년 출발한 Synaspismos(좌파진보연합Coalition of the Left and Progress)에서 1991년 KKE가 탈퇴하자, 1992년 출범한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급진좌파renovative, democratic and radical left의 정당이고, 2003년 ‘운동과 생태의 좌파연합Coalition of the Left of Movements and Ecology’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특히 Synaspismos는 민주적 사회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반군국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다원주의와 인권을 타협할 수 없는 신념으로 삼는다고 밝히고 있다.45)
Syriza는 Synaspismos가 주축이 되어 만든 선거연합전선이라고 할 수 있고, 총체적으로 볼 때 Syriza와 Synaspismos는 제도 내에서의 변혁을 추구하는 좌파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민주좌파당DL:Democratic Left은 Synaspismos의 우파가 떨어져 나와 만든 것인데, 이들은 이번 재선거에서 Syriza와 대립하였고 ND가 주도하는 연정에 참여했다.
‘변혁을 위한 반자본주의 좌파연합Antarsya : Anticapitalist Left Cooperation for the Overthrow’은 그리스 말로 ‘반란’이란 뜻도 있는데, 2008년 12월 봉기 직후 반자본주의자, 혁명가, 공산주의 좌파, 급진 환경주의자들이 2009년 3월 22일 결성했고, 모든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전선에 개입하고 다가오는 선거에 참여하며 저항과 파괴와 전복을 추구하는 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결성했다고 밝히고 있다.46)
여기에는 10개의 조직과 MERA(급진좌파전선), ENANTIA(반자본 좌파연합)에 속한 활동가들 그리고 KKE 출신과 마오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포함하는 다양한 좌익경향들이 모인 것이다.47)
좌파들의 선거강령을 둘러 싼 공방
Syriza가 제시한 10개항으로 된 선거강령은 트로이카의 대리인인 PASOK과 ND의 정치가 그리스 민중의 삶을 파괴했다고 주장하면서 긴축안(양허안) 취소, 부채 재협상(지불 중지와 부채조사 후 부당한 부채의 취소), 재산가와 고소득자에 대한 높은 과세, 군축, 반부패가 선결조건이며,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사회적 생태적 기준에 맞는 그리스 사회와 경제의 회복과 재건에 착수할 것이며, 취약자, 실업자, 연금수령자, 무주택자를 우선할 것이며 공공재를 방어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48)
그런데 이러한 Syriza의 공약은 6월 17일 재선거를 앞두고 대폭 후퇴했다. Syriza는 임금삭감의 (취소가 아닌) 동결, 최저임금 삭감의 취소와 월 751유로로의 회복, 급여의 긴축 이전 수준으로의 점진적인 회복, 실업수당의 회복 등 14개 항의 즉각 실천을 담은 ‘6월 1일 수정된 선거공약’49) 을 발표했고, 6월 11일 경제 강령을 발표했다.50)
이 경제 강령에는 유로로부터의 탈퇴나 고통을 강요하는 긴축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고통받고 있는 인민을 구원하고, 안정과 회복 그리고 그리스를 유럽의 미래와 국제적인 분업에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하게 실용적인 선택을 제출한다면서, 사회회복계획, 경제의 재건, 공정한 행정 등으로 긴축안을 대체해 재산 등록, 지하경제의 억제, 세제개혁과 행정개혁, 연고주의 청산, 사회적 통제와 정치체제의 연고주의를 청산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 통제의 제도화51) , 민주적 계획의 원칙과 국가수준의 장기적인 계획의 수립, 경제의 재건, 공공부문의 쇄신, 공적자금으로 주주 재구성을 통한 은행의 공적‧사회적 통제, 지역적 계획과 토지등록 등 12개 항을 발표했다. 결코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니 오해하지 말라는 지루한 이 경제강령은 기존의 계급적 입장이 대폭 후퇴한 것이었다.
그런데 5월 총선 후 제2당으로 부상한 Syriza에게 연정을 구성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KKE는 어떠한 협력도 거부한다고 밝혔고, 이에 KKE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KKE와 Antarsya 등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고 각 정파의 비판과 선거전술에 대하여 평가해 볼 것이다.
5월 7일 발표된 KKE 중앙위 성명
(이번 선거의) 주된 특징은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의 재구성과 Syriza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재구성이다. 사민주의적 강령을 가지고 있는 Syriza는 독점과 제국주의 연합과의 대결 없이 인민을 위한 보다 나은 처지가 있을 수 있다는 듯이 퍼뜨려왔고 퍼뜨리고 있는 명백한 거짓에 대해 책임이 있다. 자본주의 정치체제의 개량은 현장에서 대중적 조직과 투쟁에 함께하는 인민들과 충돌할 것이다. EU와 IMF 틀 내에서의 부채 협상이나 긴축안에 대한 재협상이나 점진적인 불이행을 거부하자. 공산당은 EU 탈퇴, 부채의 일방적 취소, 생산수단의 사회화, 인민의 생산적 협력, 아래로 부터의 노동자와 인민의 통제를 동반한 국가발전의 잠재력의 이용을 가능케 할 전국적 계획을 위한 투쟁과 반격 그리고 노동자와 인민의 권력과 경제를 획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세력이다.
중앙위원회는 이번 선거결과가 EU가 PASOK과 ND와의 협정을 통해 노동자계급에게는 무질서한 파산 그리고 자본에게는 질서있는 파산이라는 자본과 독점을 위한 전형적인 타개책을 선택한 가운데 일반대중의 분노 속에서 치러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KKE는 일방통행적인 EU를 따르는 당을 친 긴축당과 반 긴축당으로 나누는 것의 잘못된 성격을 폭로해 왔다. 한쪽에는 맹목적인 분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반긴축세력들로 이루어진 정부가 구원과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다. 불만족스럽고 분노한 노동자와 실업자들의 가장 큰 부분은 조직과 투쟁에 참가하여 얻어지는 직접적인 경험 없이 즉각적인 긍정적인 결과라는 환상에 굴복해왔다. 급진적인 변혁은 가능하지 않거나 다음번일 것이라는 Syriza가 사랑하는 슬로건은 인민에게 해롭다. KKE는 어떠한 타이틀과 구성을 갖든 간에 이번 선거 후 당들의 연합으로 만들어지는 어떠한 정부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정부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긍정적인 것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자본의 요구와 이익 그리고 EU와 IMF의 선택에 부응할 것이다. KKE가 정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작은 후퇴가 아니라 강령과 정치적 전선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현재와 미래의 인민들의 이익에 대하여 어떠한 타협도 없어야 할 것이다. 협상이나 재협상이란 어떠한 슬로건도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의 첨예한 요구를 지지할 수 없다.52)
6월 5일 발표된 KKE 총서기의 기자회견
ND의 “유로냐 드라크마냐?” 혹은 Syriza의 “긴축이냐 Syriza냐?”는 틀렸다. 둘 다 자본주의의 위기의 심화에 직면하고 있는 그리스와 유럽 인민의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답변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선택은 “인민들의 운동의 반격이냐 아니면 대중의 빈곤이냐”이다. 반격을 위한 전제조건은 현장노동자들의 조직, 노동자계급, 빈곤한 자영층, 빈곤한 농민들 간의 인민들의 동맹의 촉진, 파산과 대중적 빈곤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다룰 수 있는 인민의 준비, 노동운동 내의 힘의 상호관계에 대한 철저한 변화다.
다음 정부는 두 개의 가능성에 직면할 것이다. 새로운 삭감과 새로운 가혹한 협정이 될 유로존과 대부자들과의 재협상이나 통제할 수 없는 국가부도가 될 유로존으로부터의 탈퇴이다. Syriza는 미국언론에 의해 조성된 반독일 수사를 사용하면서 오바마에게 호소하였다. Syriza에는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수다 기지의 사용금지와 이스라엘과의 전략협정 취소 및 나토 탈퇴가 들어 있지 않다. KKE는 부채협상과 양허안의 종식, 완전하고 안정된 고용, 무상의 공공 의료, 교육, 복지, 공적 사회안정체제, 이윤에 대한 45% 과세를 제시한다.53)
Antarsya의 8개항으로 된 6월 17일 선거강령
부채협상의 직접적이고 일방적인 종식, 양허안과 관련 법률의 취소, 부채와 이자지불의 즉각 중지, 유로의 즉각 탈퇴와 경제와 사회의 민주적 노동자 통제. EU와 유로의 탈퇴는 대중적 정치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공공재는 노동자의 통제 하에 생산적 잠재력이 이용되어야 한다. 자금의 해외도피를 막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와 함께 보상없는 은행 국유화, 모든 전략적인 산업부문의 즉각적인 보상없는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군사예산과 군비계획의 동결, 자본과 재산에 대한 직접세, 주식이전에 대한 높은 과세, 인종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반대 및 노동자 연대와 국제주의, 제국주의와 전쟁반대, 시장의 의회적 독재를 깨뜨리는 첫 번째 조치로서 즉각적인 직접민주주의, 인민의회의 보장 등등.54)
다음은 Synaspismos 내의 한 작은 정파의 비판이다.
“(…) 3. 우리는 실업문제에 대해 급진적인 정치적 해법을 제출해야 하고 그 방안은 노동시간 단축밖에 없다. 그럼에도 Syriza가 실업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없고 주 35시간 노동을 포기한 것은 유감이다. 노동시간 연동제는 자본의 무능력을 폭로해 줄 것이다. 그것은 무정부적이고 비인간적인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로 대체되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자본과 재산에 대한 중과세로 지원되는 공공사업, 고위 관료들의 숙련노동자 평균임금으로의 임금인하, 교회재산의 사회화, 기반시설과 자원, 에너지, 운송, 통신, 중요산업의 국유화 등에 관한 계획을 초안할 필요가 있다. 4. 지난 2년간 Syriza는 은행 국유화를 얘기했는데, 최근에 공적기금과 주주 재구성를 통한 공적 통제로 바뀌었다. 트로이카로부터 대부받는 자본과 함께하는 공적 통제는 양허안의 거부와 양립할 수 없다. 5. 조세회피는 정치적 선동이나 부르주아 국가의 타락한 기구로는 저지되지 않는다. 좌파정부는 전문가위원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노동자통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는 비용이 덜 들거나 보다 효율적인 정부라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노동자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관료제나 특권이나 독재가 없는 국가를 지지한다. … 8. 정치적 수사에 사회주의적 관점이 없다. 지도부의 대부분이 좌파 케인즈주의적인 언사를 쓰고 있다. 그리스라는 영토적 한계 안에서 사회주의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국제적으로 수준 높은 노동분업을 하기 위해서 발달된 나라들의 생산력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 내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시기 역사적 위기에 놓여있는 자본주의는 긴축과 빈곤과 실업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적 진보가 가능한 유일한 길은 관제고지가 사회화된 민주집중적 계획경제를 수년간에 걸쳐 건설하는 것이다.”56)
이러한 비판들을 통해서 Synaspismos와 Syriza 내에는 혁명적 좌파를 비롯한 다양한 좌파 세력이 있지만, 선거 기간 중 Syriza 상층부가 은행국유화를 공적 통제로 대체하는 등 우경화되었다는 것과 제도내 개량주의 혹은 의회주의로의 경도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yriza의 이러한 성격과 한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몇십 년만에 처음으로 좌파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여러 좌파들은 Syriza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제4인터내셔널 집행국Bureau도 Syriza의 좌파정부안을 적극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하여 Antarsya에 참여하고 있는 제4인터내셔널 소속의 한 정파가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4인터 집행국이 “트로이카와 긴축에 반대하는 Syriza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Syriza는 좌파 개혁주의자들이 압도적인 연합이다. Syriza는 이행강령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양허안과 긴축수단과 지불의 거부는 대중의 의식수준에 합치하는 이행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PASOK과 ND에 반대하는 좌파 반긴축 정부의 전망 하에 Syriza와 Antarsya와 KKE의 통합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Antarsya에 참여하고 있는 제4인터의 그리스 가맹조직이자 군소 정파인 OKDE-Spartacos는 다음과 같은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Syriza 집행부는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ND, PASOK, DL과 협상하여 왔다. Syriza는 지배계급의 압력에 굴복하여 장관들의 기소면제를 고려하고 있다. Syriza는 양허안의 일방적인 중지를 약속하고 있지 않고 대부자와 EU와 재협상하는 국가경제계획으로 대체하고 있다. Syriza는 노동자 통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은행국유화가 아니라 정부에 의한 공적 통제를 말하고 있다. Syriza가 말하는 3년간의 지불정지와 추가적인 부채의 취소는 이행요구가 될 수 없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비상계획일 뿐이다. Syriza 정부가 만들어 진다면 몇 달 후에 붕괴하면서 우익이나 극우 정부가 들어설 공간을 열 것이다. 그리스의 반자본 좌파 특히 Antarsya는 연합전선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노동조합과 현장과 청년들 사이에서 투쟁을 수행해 온 반자본 이행강령과 정치적 독자성을 보존해야 한다. Syriza는 임시정부의 수상으로 PASOK정부의 교육부장관이었던 자를 제안하였다. 그는 수천 명의 해고 교사에 책임이 있는 자이고 노동자계급과 빈민의 자식들의 추가적인 교육에 대한 장벽을 쌓은 노동자계급의 적이다. Syriza는 모든 임금삭감의 회복이 아니라 2월 이전에 받았던 수준의 회복을 얘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ntarsya는 Syriza와 만났고 협력과 투쟁 속에서 합께 싸울 것을 약속했다. 좌파정부가 구성되면 Antarsya는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진보적인 정책에는 지지하고 어떠한 양보에도 확실하게 반대할 것이다. 우리는 유럽사회주의연방국가를 위한 투쟁에 동의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적 좌파들처럼 인민의 EU와 부르주아 초국적 기구를 방어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EU를 파괴하기 위한 전 유럽적 협력 속에서의 계급투쟁을 통해서 할 것이다. EU가 노동자계급을 뭉개고 국제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해 왔다는 것을 노동자계급과 실업대중에게 폭로하는 것을 통해서 할 것이다.”57)
한편 KKE의 협력 거부에 대해 스탈린주의에 찌들은 종파주의라느니 KKE의 고질화된 분파주의 때문이라고 비난도 많았는데,58) 앞서 살펴보았듯이 KKE의 주장은 트로츠키주의자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는 Antarsya와 별반 차이가 없고59) 비판적 참여냐 혹은 원칙적 거부냐의 정세관의 차이나 투쟁관의 차이 그리고 Syriza와 KKE 간의 오랜 (감정적) 대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 협력거부 주장을 곧바로 스탈린주의적 편향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다음은 KKE에 대한 평가를 돕기 위해 이번 선거국면에서 Syriza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던 한 정파의 비판과 2011년에 쓰여진 아나키스트들의 비판을 소개한다.
“KKE는 2004년 5.89%, 2007년 8.15%, 2009년 7.54%를 얻었다. 득표는 도시의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얻어졌고, 2007년 아테네 항만지역인 Piraeus에서는 25-34세에서 14.5%를 얻었고, 민간부문과 실업자들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KKE는 노동조합에 대한 대중적 개입을 할 수 있는 전선조직을 발전시켜 왔다. 민간부문 노총인 GSEE 내의 PAME, 농민운동에는 PASY, 여성운동은 OGE, 학생운동은 MAS(Militant Students’ Front) 그리고 그리스에서 가장 큰 청년조직인 KNE(청년 공산주의자)가 있다. 2010년 5월 15일 당의 전국적 시위에는 30,000명을 동원하였다. 그리스에서 전개되는 총파업과 대중시위와 의회 포위 등에서 나타난 KKE의 역할은 명백하다. … PAME은 GSEE의 분파이면서 GSEE의 다른 부분과는 별개의 투쟁과 파업을 하는 전통이 있다. 2008년 12월 투쟁 때도 당 소속 청년들을 반정부 투쟁에 참여하는 많은 다른 학생들과 분리시켰다. … 공산당은 그들의 중심 요구로 EU탈퇴, 부채 지불 거부와 인민권력을 내세웠다. … EU 탈퇴는 단지 드라크마로의 복귀를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유동성의 증가를 허용하는 드라크마화의 절하정책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것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구매력을 갉아먹는 인플레이션 정책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리스 상품에 대한 EU의 보호주의적 물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KKE는 신타그마 광장의 민중총회를 소부르주아적이며 당의 이념과 완전히 합치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였다. KKE는 당원들이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그리하여 아테네 인민들이 공산주의자의 견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짓밟았다. KKE의 정치적 입장은 공공연하게 사회주의와 인민의 권력을 말하는 혁명적 언사와 이러한 목표를 체계적으로 추구할 수 없는 끊임없는 무능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중간주의centrist이다.”60)
“동원을 주도하고 양대 노총이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앞장서서 동원을 주도한 것은 공산당 계열http://www.marxist.com/the-kke-and-the-greek-revolution.htm. Gabriele D’Angeli은 member of the National Committee of the Italian Young Communists로 소개되어 있다도권을 억압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구성원들이 다른 파업과 연관을 갖거나 다른 시위 특히 평화적 시위를 조직하는 것을 막는 것은 그들의 항구적인 전술에서 보여진다. 현시기 공산당의 이념적 거점을 만들고 있는 것은 EU 탈퇴와 80년대부터 그들이 사용해온 독점과 거대자본에 대한 저항이다. 공산당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호감과 함께 노동자 계급이 사회민주주의적 장점을 누리는 민족주의적 대중경제를 선언하고 있다.”61)
KKE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이들 비판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의 양대 노총이 거의 타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PASOK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과 KKE가 지난 2-3년간 노조를 비롯한 수많은 대중조직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선도하여 왔다는 것 그리고 이점은 KKE에 지극히 부정적인 타 정파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KKE가 투쟁적이고 변혁적인 세력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념적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내부 비판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든지 다른 좌파와의 공동투쟁에 소극적이거나 배타적인 점도 인정된다고 하겠다.
KKE가 6월 17일 재선거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배타적인 협력거부로 좌파정부에 대한 희망을 꺾은 것과 대중의 의식수준을 감안하지 않은 비타협적 혹은 비현실적 슬로건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KKE는 Syriza의 우편향을 막는 공동선거강령을 강제하면서 선거연합에 참여했어야 할 것이다. 좌파세력의 의회와 행정권력 장악은 트로이카를 비롯한 내외의 지배계급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전진을 위한 계급투쟁의 장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총파업과 시위, 점거 등 그리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은 부르주아 선거국면으로 전환하였다.
이 국면에서 좌파의 임무는 투쟁을 전진시키는 것이고, 트로이카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선거전술과 슬로건 역시 그리스와 전 유럽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전진시키는데 복무해야 한다. 그러나 두 번의 총선에서 보여졌듯 트로이카와 지배계급 그리고 부르주아 언론의 강력함과 동요하는 소부르주아층을 비롯하여 낮은 정치의식 등은 계급투쟁역량의 취약함을 보이는 것이고 이 또한 전술 선택에서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의식수준을 감안하여 Syriza가 부채 거부와 유로 탈퇴가 아니라 지불정지 및 부채 재협상과 유로존 잔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은 전술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 은행들이 수백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그리스 정부 즉 민중들의 부담으로 받았다는 것과 좌파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핵심적 고리인 은행 국유화 슬로건은 결코 후퇴해서는 안 되었다.
또 이번 선거과정에서 Syriza는 장기적인 중앙과 지방의 계획에 대하여 얘기했는데, KKE나 Antarsya 그리고 많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통제 아래 민주적이고 중앙집중적인(centric) 계획경제로의 이행과 사실상의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관제고지의 장악(주요 산업의 보상없는 국유화)에 대하여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요산업의 국유화나 인민권력 등이 선거국면에서 제시하기에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6월 17일 선거에서 Syriza가 타협적이고 우편향적 경향이 억제될 보장이 없는 채 좌파정부를 수립했다면 자본이 처한 위기를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무너지고 우파나 극우의 귀환을 맞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칠레의 인민연합정부에서 보았듯이 좌파가 의회와 행정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더 높은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유리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좌파정부수립의 현실적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KKE를 비롯한 좌파들은 단지 혁명적인 선전이나 선동이 아니라 혁명적 경직성을 완화한 공동선거강령을 제시하고 Syriza와 연합하여 좌파정부의 수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EU와 유로존을 둘러싼 쟁점
이번 선거 중 트로이카를 비롯한 자본가계급과 부르주아 언론에서는 그리스 선거와 관련하여 Syriza의 집권을 유로존 탈퇴와 동일시하고 유로존 탈퇴는 그리스 국민과 전 유럽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였다.
이것은 그리스 인민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사실상의 협박이었고 ND의 승리에 기여했다. 유로존 탈퇴 혹은 잔류 문제는 그리스만이 아니라 국제좌파들의 첨예한 쟁점이기도 하다.
“EU는 유럽의 독점자본과 지배계급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대응으로 출발한 것이고, 특히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일본 독점자본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 독점자본의 공동대응의 표현이었다. 이들은 특히 역내 관세장벽을 철폐하고 공동시장을 창출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민중들이 향유하는 복지제도를 경쟁력의 가장 큰 장애로 생각하였다. 1986년 단일유럽조약Single European Act(SEA)은 EEC 내에서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과 탈규제를 통하여 역내 공동시장을 완성한 것이었고, 이 프로젝트는 47개 거대 다국적기업이 합류한 1983년에 수립된 유럽산업원탁회의(ERT)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1991년에 조인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단일 통화와 유럽공동시민권과 공동여권을 제안하였는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경제‧문화적인 장벽 때문에 노동의 이전의 자유는 제한적인 반면 자본의 이동의 자유는 완벽하게 보장되었다. 특히 80년대에 유지되었던 자본시장의 탈규제는 거대한 투기자금의 쇄도를 불러왔다. 한편 노동과 복지에 관한 조항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예외의 원칙이 인정되었다. 따라서 이 조약이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전 유럽 민중의 반대와 거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하였다.
비민주적인 EU의 구조는 2001년의 NICE 조약으로 극에 달하였다. 유럽의회, 유럽각료회의, 유럽공동체회의 등 모든 기구에서는 1국 1표의 원칙이 아닌 강대국 다수 표결권의 원칙이 관철되었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유럽각료회의가 사실상을 권력을 장악하는 구조였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강대국 5-6개국이 다른 모든 나라의 표결권보다 더 많다든지, 각료회의 내에서는 빅3의 표결권이 나머지 27개국의 표결권보다 많다.
유로존 가입기준은 유럽지배계급의 거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의 상징이었다. 유로화의 안정을 빌미로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 누적 적자를 60% 이내로 정함에 따라 각국 정부는 복지지출을 억제하고 삭감할 수밖에 없었다. 동구권의 통합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단지 상품시장과 저임금을 노리는 투자만이 아니라 모든 가입국가의 경쟁력 즉 노동비용의 절감과 복지비용의 축소를 유인하는 ‘바닥을 향한 질주’를 가져왔다.”62)
이처럼 EU나 유로존이 유럽독점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기획이라는 점, 지극히 비민주적 구조라는 점, 민중들의 EU가 아니라 독점자본가계급의 EU라는 점에서 EU에 대한 전 유럽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연대와 투쟁은 당연하다.
그런데 반EU 투쟁전략에서는 민주적 개혁론과 부정‧파괴‧탈퇴론이 대립하고 있다. 그동안 회원국 정부를 기속하는 EU의 자본의 자유에 대한 결정은 회원국 정부가 무조건 따라야 되는 반면, 고용이나 사회보장과 관련한 결정은 예외와 유보를 인정하여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을 억압해왔다. 작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재정통합 역시 자본의 이익을 결코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재정통합이란 조세주권 혹은 조세수입의 일부 또는 전부의 양도로 성립된다. 만약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프랑스가 75%로 올리면 40%인 이웃 나라로 회피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동안 나라마다 다른 법인세와 소득세 그리고 사회보장기여금이 다른 상황에서 자본은 전체 유럽민중의 이익을 배반해왔다.
따라서 EU 전 회원국에 동일하고 높은 법인세와 소득세의 부과, 불안정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금하는 동일한 노동기준, 동일한 높은 환경수준 등을 요구하는 투쟁 등은 전 유럽의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과 전 유럽의 자본가계급과의 대결로 나아갈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EU 민주화투쟁 혹은 개조론은 자본의 권리를 부정하지 않고 폐해를 시정하려는 관점으로 커다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화폐동맹에 이어 재정통합과 1국 1표에 따른 민주적 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EU와 유로존이 회원국간의 협정으로 이루어진 틀이고 각국 정부가 자본가계급의 대리인인 한 총자본의 협의체로써 기능할 뿐 반자본적이고 친민중적인 틀이 될 수 없다.
오직 주요 중심국의 권력이 노동자계급에게 장악되었을 때 각국 지배계급의 통합위원회인 EU의 성격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일국적 혁명을 뛰어넘어 민주적개조론으로 유럽사회주의연방에 다가가겠다든지 민주적 개조투쟁이 유럽사회주의연방을 앞당길 것이라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리고 재정통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화폐동맹인 이상 화폐가치의 안정을 위해 유로존 가입기준과 같은 재정억제는 계속될 것이고 그 자체가 노동과 복지를 공격하는 틀이기 때문에 이 틀은 부정되고 파괴돼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들은 유로존에 잔류하면서 반긴축과 재협상을 주장하는 Syriza와 부채거부와 유로존 탈퇴를 내세운 KKE와 Antarsya로 나뉘어 극명하게 대립했다. 잔류파들은 유로존을 탈퇴하고 드라크마로 돌아가면 극심한 화폐절하가 일어나고 대부분의 연료와 생필품(식료품)을 수입하는 사정상 민중의 고통은 극심할 것이고, 수출산업의 비중이 낮기 때문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영국의 좌파학자인 Lapavitsas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유로존에 잔류하는 한 부채를 60% 이상 탕감받아도 긴축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경제는 회복될 수 없다. 그리고 탈퇴에는 자본가계급이 주도하는 채권자 주도의 탈퇴와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채무자 주도의 탈퇴가 있다. 전자는 자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을 계속 억압하는 것이고, 후자는 은행국유화와 노동자계급과 하층 자영업자를 우선시하는 진보적인 조세정책과 분배정책을 통하여 내수를 활성화하여 경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경제위기 전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GDP의 4~5% 정도였는데, 불요불급한 예산을 취소하고 자본과 자산가에 대한 증세를 하면 긴축은 취소할 수 있고, 탈퇴 초기에 드라크마화가 극심하게 평가절하 되더라도 수입품이 비싸진 만큼 농산물을 비롯한 국내공급이 늘어날 것이다.
총수입과 총수출이 엇비슷하였고 은행국유화를 통한 유로화예금의 통제는 유로화를 집중함으로써 외환수요를 감당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화폐가격이 안정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로존 잔류는 긴축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경제가 끊임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주도의 탈퇴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63)
유로존 탈퇴로 인한 고통은 격심할지라도 좌파정부가 이를 자산계급에게 전가할 수 있고 일시적인 반면, 긴축으로 인한 고통은 유로존 탈퇴로 인한 고통에 버금가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부담하며 장기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Lapavitsas의 주장은 충분히 지지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대중의 낮은 의식수준과 Syriza와의 연대를 감안하여 좌파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공동선거강령에서는 전술적으로는 지불정지와 재협상(결국 유로존 잔류)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반긴축과 부채지불정지에 모순되는 유로존 잔류 슬로건이 오히려 우파의 공격으로 수동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유로존 탈퇴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설득했어야 할 것이다.
나가면서-쟁점의 정리
그리스를 비롯한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의 부채위기는 지난 30여 년간에 성립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의 필연이다. 축적위기에 몰린 자본이 국가를 앞세워 노동과 복지를 공격했고 상대적 과잉자본의 이해와 대중의 낮아진 소비력을 보충하고자 동원된 소비와 투기조장정책은 이 체제의 필연이었다.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면서도 체제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공적 부채의 증가로 나타났고 경기후퇴를 막기 위한 경기부양 혹은 양적 완화 조치로 불리는 투기조장정책도 전 지구적으로 시행됐다.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대출과 소비를 조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 체제의 모순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확산되었고, 경제구조가 취약한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위기탈출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새로운 계급전쟁이 시작되었다.
트로이카를 비롯한 내외의 자본가계급이 강요한 긴축정책은 단지 위기탈출의 비용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뺏고자 했다. 이것은 자본가계급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노골적인 계급전쟁이다. 그리스 민중의 투쟁은 단지 일국적 투쟁이 아니라 전 유럽과 전 세계의 독점자본가 계급과 싸우는 현단계 반자본 계급전쟁의 최전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8년 그리스 학생반란이 그 시발점이었다. 계급역량의 취약함 때문에 때로는 학생과 청년들이 때로는 노동자계급이 때로는 분노한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소시민과 도시하층민들이 앞장섰다. 노동자계급이 적극 참여하거나 주도하지 못한 2008년 촛불항쟁이나, 노동자계급의 취약함 때문에 전 국민적 항쟁의 양상을 보인 2011년 아랍민중들의 항쟁이나, 노동자계급의 감수성과는 다른 점거운동도 모두 비슷하다.
선진자본주의 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정규직을 비롯한 온갖 불안정 노동과 실업이 만연한 것은 자본의 공격이 극에 달했다는 것과 노동자계급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노동의 분절화와 위계화로 주로 정규직에 의존하는 노동조합은 기회주의적이고 타협적인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1929년 대공황 이래 자본은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지만 노동자계급은 유효한 반격을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트로이카의 가혹한 긴축으로 몰릴 대로 몰린 그리스 노동자계급이 최소한의 조직력과 전투성을 보존한 좌파와 결합하여 투쟁에 나선 것이다.
지난 3년간의 투쟁을 중간결산하는 지난 2012년 5월과 6월의 총선은 서구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좌파정치의 유의미한 귀환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국면에서 제도내 좌파는 성장한 반면 변혁적 좌파는 쇠퇴했다.
수많은 좌파들은 반긴축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유로존 탈퇴와 잔류, 은행 국유화와 관제고지(주요산업)의 국유화, 노동시간의 주 35시간과 일자리 나누기, 노동자계급의 통제 하에 민주적 계획경제로의 이행, 테러와의 전쟁반대와 NATO 탈퇴 등을 선거강령을 둘러싸고 논쟁과 제안이 난무하였다.
이들의 논쟁에 대한 평가는 적아간의 대치 지점, 대중의 의식수준을 포함한 계급역량 등을 고려하여 어떠한 슬로건과 강령이 그리스 민중과 전 유럽 민중의 투쟁의 성장에 기여할 것인가로 판단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현실의 투쟁 속에서 혹은 선거국면이란 특수성 속에서 원칙성과 유연성의 통일에 걸맞는 슬로건을 찾아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고 좌파들의 숙제이기도 하다.
현실의 투쟁이 어떠한 형태와 경로를 취할지는 적아간의 대치상황과 역량에 의해 결정되겠지만, 칠레의 인민연합정부에서 보듯 선거에 의해 구성된 좌파(연합)정부가 확보한 공간도 지배계급과의 전면적인 대결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과, 대중의 투쟁이 도둑맞지 않고 대중의 지지와 참여에 의해서만 투쟁이 전진할 수 있다면 제도 내에서 대중의 지지를 수렴‧확산‧조직하고 투쟁에 동원하는 것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의 부담을 어느 계급이 질 것인가를 둘러싸고 격심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과정에서 그리고 선거라는 특수한 계급투쟁의 장에서 어떠한 슬로건이 적절했는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다른 나라의 투쟁에 대하여 참견하는 것은 신중해야만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좌파는 보다 높은 투쟁의 장을 열 수 있는 좌파정부의 수립을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Syriza 상층부의 우편향은 지적되어야 하지만 혁명적 좌파의 경직성 또한 비판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혁명적 좌파는 왜 선거라는 계급정치의 장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패배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출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816418] |
[편집인]진보전략 편집위원회
[각주]
42) XA:황금새벽당, ANEL:Independent Greeks(ND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익민족주의), LAOS:그리스정교당(극우), DISY, DRASI, DX 3당 모두 신자유주의 우파, ND:신민주당, PASOK: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 DIMAR(DL):Democratic Left, SYN의 우파가 독립. OP:Ecologist Greens, Syriza:급진좌파연합, KKE:그리스 공산당, EEK:Workers Revolutionary Party(트로츠키 경향), OAKKE:Organization for the Reconstruction of the Communist Party of Greece, OKDE : Organisation of Communist Internationalists of Greece(제4인터 경향).
43) PASOK은 연정에는 참여하나 내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44) Paulmasonnews, “Greece: Trying to understand Syriza” at http://paulmasonnews.tumblr.com/post/22914870033/greece-trying-to-understand-Syriza.
45) Synaspismos, http://www.syn.gr/gr/tmima.php?gl=el&page=59.
46) Antarsya, http://www.Antarsya.gr/node/8.
47)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Front_of_the_Greek_Anticapitalist_Left.
48) Synaspismos, “Electoral program Syriza EARRINGS social front - 6th May 2012 elections” at http://www.syn.gr/gr/keimeno.php?id=26945.
49) Solidaritymovement, “The presentation of the updated electoral program of the MCM-Syriza , Athinaida Cultural Centre, Athens, Friday, June 1, 2012” at http://thesolidaritymovement.wordpress.com/2012/06/01/the-presentation-of-the-updated-electoral-program-of-the-mcm-Syriza-athinaida-cultural-centre-athens-friday-june-1-2012/. MCM-Syriza는 Syriza-USF (Coalition of Radical Left - United Social Front)의 그리스어 표현이다.
50) Synaspismos, http://www.syn.gr/downloads/Syriza_usf_program_201206.pdf.
51) 작업장이나 산업에 대한 노동자통제가 아니라 노동자 대표의 행정기구에의 감시‧참여를 말한다.
52) KKE, http://inter.kke.gr/News/news2012/2012-05-08-cc-statement/.
53) KKE, http://inter.kke.gr/News/news2012/2012-05-06-synentefxi.
54) Antarsya, http://www.Antarsya.gr/node/570.
55) 그리스는 교회가 국가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성직자는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다. 그리고 막대한 교회재산과 수입은 비과세이다.
56) Editorial Board of the newspaper ‘Epanastasi’ and of the magazine ‘Marxistiki Foni’, “Greece: The battle for a Left government: eight weaknesses that we ought to correct”, (29 May 2012) at http://www.marxist.com/greece-battle-for-a-left-government-eight-weaknesses.htm.
57) OKDE-Spartakos, “Exchange between the FI Bureau and OKDE-Spartakos (Greek section)” in IV Online magazine : IV449 - June 2012,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2643.
58) Michael Karadjis, “Greece: Syriza, the Communist Party and the desperate need for a united front”, (16 May 2012) at http://links.org.au/node/2863 등 참조.
59) Antarsya의 기본적 입장은 아래로부터 구성되는 ‘노동자 정부’이지만, ‘행진은 각자 하지만 투쟁은 함께 한다’는 공동전선전술에 입각하여 비판적 참여를 밝힌 것이다. Andreas Kloke, “A contribution to the debate on Greece” (June 21, 2012) at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2684.
60) Gabriele D’Angeli, “The KKE and the Greek revolution”, (19 April 2012) at http://www.marxist.com/the-kke-and-the-greek-revolution.htm. Gabriele D’Angeli은 member of the National Committee of the Italian Young Communists로 소개되어 있다.
61) TPTG, op. cit., pp. 269-70.
62) Alan Thornett, “No to a bosses’ Europe – the politics of the EU and the eurozone crisis” at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2578.
63) Costas Lapavitsas, Annina Kaltenbrunner et al., Breaking Up? A Route Out of the Eurozone Crisis, (Research on Money and Finance report, November 2011), pp. 6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