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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치유의 몸짓, ‘달구름’ 개관

[기고] “평화는 세월이 흘러 반드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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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8일 경기도 평택 팽성읍 노와리에 있는 평화마을 대추리에 ‘대추리 역사관 달구름’(달구름)이 문을 열었다. 달구름은 자신들의 삶과 마을의 역사를 주민의 입장에서 기록한 마을역사관이다. 달구름은 ‘시간적으로 흘러가는 것, 아울러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세월’이란 뜻으로 “우리의 평화는 세월이 흘러 반드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백기완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대추리 주민은 2004년 한-미 정부의 연합토지관리계획(LPR)에 의한 전국 주한 미군 군사시설 통폐합과 미군기지 재배치에 따른 용산기지와 2사단의 평택 이전으로 285만 평이 수용되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다. 현재는 팽성읍 노와리에 ‘평화마을 대추리’를 이루며 살고 있다.

처음 이주마을 대추리를 찾았을 때의 느낌은 참 묘했다. 어느 고급 펜션촌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크고 예쁜 집들... 이곳이 대추리 마을이구나. ‘잘 사는가 보다’, ‘좋네’. 정도로 연신 감탄사를 내뿜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농부들이 농지 대신 집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굵게 패인 주름살은 더 골이 깊어진 느낌이었다. 협상 당시 합의안을 보면 생계유지대책으로 공공근로용역을 지원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올해 11월이면 계약이 끝나 더 이상 공공근로용역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노와리 이주단지 주민은 살 길이 막막하다. 화려한 외관 속에 시들어 가는 늙은 할미꽃이 떠올랐다.

신종원 대추리 이장이 말했다. “대추리 투쟁 협상 때 이주합의서에는 생계유지대책으로 몇 가지 내용이 있었는데 ‘평택지원특별법상 상업용지는 8평을 공급한다’는 내용이 있어. 합의서 작성 당시 정부 측에서 농지 소유주 확인조사를 했거든. 그런데 확인조사 과정에서 대추리 거주 농민들에게 ‘선이주할 경우 8평의 상업용지를 받을 수 있으나, 그러지 않으면 5평의 상업용지만 지급된다’는 거짓 협박을 했지. 농지를 빼앗기면 살 길이 막막하다고 느꼈던 농민들은 이 협상안에 도장을 찍어주고 먼저 마을을 떠났어.”


달구름 개관식에는 이주합의서에 먼저 도장을 찍고 마을을 떠났던 주민도 많이 참석했단다. 그들은 노와리 이주단지를 부러워한다고도 했다. 화려하고 잘 정돈된 마을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예전 대추리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부러운 것이다. 고향이란 어우러지는 공간이고 멀리 떠났던 가족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제 노와리에 만들어진 대추리 마을은 다시 고향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한 삶이 시작된다. 흩어진 주민들을 불러 모이게 할 것이다.

신 이장은 달구름 개관을 계기로 대추리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여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제 치유가 시작됐어. 달구름은 대추리 마을 사람들 모두의 기억의 장소야. 노와리 이주민뿐만 아니라 모두의 기억을 전시할 수 있게 되었어.” 신 이장은 또한 곁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던 예전 대추리 마을 주민들에게 “각자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가지고 와 함께 전시하자”고 제안했다.

달구름 개관식에 참석한 예전 대추리 주민들은 전시관을 돌아보며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가슴 깊이 멍들어 있던 상처를 끄집어내는 회한의 눈물이었다.

대추리 마을 주민들은 다시 꿈을 꾼다. 고향이 없어지고, 고향 사람들이 없어지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치지만, 노와리에 새로 만들어진 달구름을 통해 이들은 다시 꿈을 꾼다. 희망을 이야기한다. 도시개발정책으로 도시거주 철거민들은 갈 곳을 잃고, 농촌의 논과 밭은 4대강 사업과 도시화 사업으로 갈아엎어지고 있는 지금. 노와리로 이주한 대추리 주민들은 다시 공동체의 삶을 꿈꾸며 미래를 소망하고 있다.

칠십 평생 농사만 짓던 늙은 노부부는 평택 대추리 마을을 두 번이나 빼앗겼다. 대추리는 과거 일제의 비행장 공사에 쫓겨난 주민이 개펄에 정착해 평생을 간척으로 땅을 일궈 농사를 짓고 살던 곳이었다. 일본군에 쫓겨나고 미군에 다시 쫓겨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노와리의 대추리마을. 예전 대추리 마을에는 멋진 소나무와 그 소나무 위에 사는 솔부엉이가 늘 마을을 지켜주었다. 이젠 달구름에 그려진 이윤엽의 솔부엉이가 대추리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담아 마을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다.

추석을 보내며 가슴 한구석이 저리다. 들녘에는 벼들이 익어가지만 대추리 주민들의 벼는 없다. 그들이 돌보아야 할 농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먼발치로 보이는 누런 벼들이 대추리 늙은 노부부의 가슴에 향수를 불러온다. 땀 흘리며 돌보던 자신들의 땅을 회상하는 흐릿한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지길 소망해본다.

  네비게이션: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 455-12 대추리 다목적 회관
대중교통: 평택역 맞은 편 구 관광호텔 맞은 편에서 3-5번 버스 노와리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