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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망버스, "10월 6일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기고]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는 영화인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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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이 고향이다. 이번 추석에 대한문을 지켜야 하는 쌍용차 해고자 몇몇을 뒤로 한 채 염치없이 고향에 갔었다. 해고되고 처음으로 “언제까지 그렇게 살끼고? 애들 생각도 해야 안 되겄나?”라는 집안 어른들의 한탄 섞인 말씀을 듣지 않은 첫 명절이었다. 선발대로 보낸 ‘의자놀이’ 덕분이기도 하고, 쌍용차 문제라면 인터넷을 꼼꼼히 보시는 어른들 덕분이기도 했다. 별 이야기 안 했는데도 지난 청문회며, 회사의 대응이며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알고 계셔서 꼭 변명처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답답하신 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지난 3년간의 해고자 생활이 무의미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오롯이 내 편만 있는 며칠이었다.

사실 쌍용차 문제는 집안 어른들에게는 지난 몇 년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노동문제에 인색한 언론 탓도 있겠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정보의 우선순위를 노동문제에 두지 않는 것도 이유라 하겠다. 지난 몇 년간 쌍용차 해고자들은 쌍용차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많은 투쟁을 했다. 전국 순회투쟁도 했고, 해고자 복직 없는 매각반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산업은행 농성투쟁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뭘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산업은행 총재 면담을 요구하며 투쟁했을 당시 경찰과 충돌로 조합원들만 24명 연행됐는데도 어떤 언론에도 나오지 않았다. 죽음이 이어질 때만 소식이 전해졌다. 보도자료를 내고, 공장 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면 기자들 몇 명, 정치인들 몇 명, 조합원도 얼마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눈물만 흘리는 소식이 전부였다. 그렇게 이어지는 죽음 앞에서도 쌍용차투쟁이란 참 무기력했다.

그때 우리는 희망버스를 만났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85크레인에 올라간 6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체념했을 때,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을 찾아가고, 위로하고, 응원하자는, 지침이나 이해관계가 아닌 본래의 연대를 복원하자는 희망의 버스를 우리는 운명처럼 만났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일 때 우린 감격했었고, 한진중공업과 공권력이 희망버스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우리가 모두 김진숙이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수많은 ‘소금꽃’들의 힘으로 한진중공업에 해고철회에 준하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때부터 나는 연대와 투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 투쟁을 즐겁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참여하는 개인에 대한 배려가 함께 싸움을 만들어 나갈 때 어떤 힘을 갖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다 되어간다.

희망버스 이후 수많은 ‘소금꽃’이었던 사람들이 대한문에서 또다시 수많은 상주로 나섰고, 유성에서는 올빼미가 되었고, SJM에서 노동자들은 씹던 껌이 아니라고, 현대차에서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는 한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힘들로 3년 만에 쌍용차 문제와 관련한 청문회를 열 수 있었고, SJM 노동자들은 직장폐쇄를 철회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진실을 밝혀내고, 사태를 해결하는 데 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으로 길거리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편견과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또한 작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진중공업 해고자 문제도 세상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천막을 치고 투쟁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었다. 추석차례만 지내고 나왔다는 오십줄의 노동자 몇 명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금속노조를 몰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지난 가을 조남호 회장이 청문회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합원을 선별해 장기휴업을 보내고, 일부는 교육을 빙자한 회사의 입장만을 강변하는 겁박도 이어졌다. 현장 복귀 시에도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노동자들은 다른 부서로 재배치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도 자행했다고 한다. 결국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동자들끼리 반목하게 만들었고, 158억3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손배가압류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청구한 상태였다. 다가오는 11월의 복직 약속도 어떻게 될는지 잘 모르겠다고, 만약 되더라도 장기휴업이나, 교육을 통해 선별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어용노조에 가입하는 조건이 우선이라는 예상이었다. 그 기막힌 이야기를 하는 내내 초로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눈빛을 내비쳤다. 다행이었다. 포기만 않는다면 우리는 늘 희망을 함께 만들어 왔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10월 6일, 다시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시동을 건다. 이번 희망버스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맞춰 한진중공업의 1년 전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자발적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가을 우리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 힘껏 노래하고 춤을 췄던 것처럼 다시 한진중공업의 기만적인 약속 불이행과 노조탄압에 맞서 거침없이 모였으면 좋겠다.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다시 찾아가고, 위로하고, 응원하자는, 지침이나 이해관계가 아닌 본래의 연대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또다시 그들의 싸움으로만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위해서 함께 깔깔깔 웃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다시 그 뭉쳐진 희망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었듯, 그들의 희망이 결국 우리의 희망으로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차비는 오르지 않았다. 작년과 똑같다. 작년 당신의 마음처럼.
10월 6일 토요일 09시 30분 대한문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