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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의자놀이”를 읽다

[기고] 독서가 아니다, 나는 이 책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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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방황한다. 끊임없이…

2009년 여름이었다. 파업이 끝나고 남편은 바로 평택서로 연행된다.
결의를 다지기 위해 밀어버렸던 머리카락이 덥수룩해지고…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길어진 수염,
씻지 못해 더러워진 몸이며 옷, 땀과 최루액에 절어 있던 냄새…

다음 날부터 남편들을 면회 하고자 사람들이 평택서로 몰려들었다.
내 차례까지 기본 세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내리쬐는 8월의 햇빛 속에서 남편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아무 일없이 흔들리듯 거리를 서성거렸다.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 든이의 손을 잡고.


공지영 작가의 집필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참으로 설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책이었다.
나는 내 상처가 다 아물었다 생각했던 것일까.
겁도 없이 덜컥 책을 손에 잡고 후루룩 하니 책장을 넘긴다.
그렇게 몇 시간을 꼼짝도 없이 앉아 반을 읽었다.
그리고는… 그 날 저녁부터 책을 잡기가 두려워졌다.
5일을 그 상태로 흘려보낸다. <의자놀이> 책을 내 분신인 양 옆에 끼고서.

지난 11일 토요일 쌍차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여의도 산업은행 앞 집회.
가는 곳곳마다 막아서는 경찰과의 충돌로 진이 다 빠진다.
2009년의 여름. 공장 앞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밀려나던 그 날들.
얼마나 허탈하고 암담했는지…

평택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다시 펴든 책.
한 장, 한 장. 문장 하나하나.
눈이 빠져라 읽어 내려간다.
독서가 아니라 흡사 나는 이 책과 싸우고 있는 듯하다.

그 날의 기억들. 수천 명의 전경들…
우리를 위협하며 머리 위를 끊임없이 비행하던 헬리콥터 소리…
거기서 떨어지던 색색깔 최루액, 흙먼지…
사측에서 틀어대던 노랫소리, 욕설, 새총, 아수라장…
폭포처럼 감정이 흘러내릴 땐 잠깐 책을 가슴에 대고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한다.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책 읽는 데만.
이제, 더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다. 방황하는 마음 다잡기.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나만의 비법이 있는가 싶겠지만…
그냥 생짜로 버티는 거다.
기억이 떠오르는 데로 막지 않고 바라보기.
출렁거리는 감정들 그대로 흘려보내기.
그래서 나는 지금 또 아프다.

하지만, 우리의 얘기가 많이 퍼지길 바란다.
우리가 공장 안에서 77일을 버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세상과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