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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이 본 ‘두개의 문’

[기고] 지금 우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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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아마 이맘때 쯤인 것 같습니다. 용산참사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남일당성당의 거리미사에 갔던 때가 말입니다. 저녁7시가 넘어서 진행되는 미사임에도 너무 더웠던 기억은 지독히도 비가 오지 않던 그해 여름의 무더위 때문일수도... 공장안으로 물도 전기도 들어가지 않고 심지어 해고노동자 하나가 그 날 낮 경찰의 테이저건에 얼굴을 맞았다는 소식에 대한 분노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2009년 정리해고반대를 외치며 1000여명이 넘는 해고노동자들이 옥쇄파업을 벌이고 있던 평택 쌍용자동차의 가족대책위 회원이었습니다. 용산에서 추모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님들과 매일저녁 거리의 추모미사에 참석하는 시민들에게 쌍용차공장안에서 벌어지는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행위를 전하고 용산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해 주실 것을 호소하러 그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저는 두려웠습니다. 부자로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놀고 먹겠다는 것도 아닌 그저 제 힘으로 장사를 하고 공장에서 일을 해서 가족들과 단란하게 살겠다는 요구에 죽을 만큼의 아니 실제로 죽어도 모른다는 잔인하고 끔찍한 국가폭력이 용산에서처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죽이게 될까봐 제발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살면서 평생 한다해도 그 시절 ‘도와주세요’보다 많이 말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두 개의 문을 보는 제 마음에 대한 이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저는 그날 파업이후 3년째 거리위의 농성자로 남아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대한문 분향소에 앉아있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은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고 도로위엔 일을 위해,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차들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해고뒤 22명의 동료들을 보내고 여태 우리가 이러고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영화를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저는 며칠 뒤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평택에선 다음주쯤이나 단체상영이 준비되고 있던 터라 서울역에 내려 영화를 상영하는 독립영화관에 가기위한 길이었습니다. 서울역앞에는 전철연 동지들이 탄원서를 받고 계셨습니다. 전전날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떼법문화근절! 법과 질서수호! 무관용원칙! 이명박대통령의 목소리로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참 많이 듣던 말이었습니다.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법질서를 무너뜨리며 행해지는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정하게 법집행을 하겠다. 삶터와 일터를 빼앗기고 싶지않다는 절박한 호소가 저들의 귀에는 그저 떼쓰는 것처럼 들리는 구나, 절망했던 시간들이...

보는 내내 겹쳐지는 여러 기억들때문에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죽은 사람 없이 진압되었기에 경찰의 성공적 진압사례로 꼽히는 쌍용차 진압장면이, 남일당위로 깜깜한 새벽 내려지던 컨테이너의 모습이, 태엽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처럼 시커멓게 몰려드는 경찰들의 모습이, 시간과 공간만을 달리한 채 뒤섞였습니다.

개발과 효율이라는 이름아래 몇몇쯤은 포클레인으로 파낸 흙더미 아래 또 몇몇은 오갈곳없는 광장한복판에 덮히고 버려져도 되는 것일까요? 그 끔찍하고 잔인한 일을 우리와 다를바없는 또 다른 우리들에게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요?


수없이 떠오르는 물음과 서러운 울음이 영화를 보는 제게 있었습니다. 어떤 문을 두드리고 혹은 부셔야 늘상 빼앗기고 밟히던 삶들이 제 목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빛나는 햇살을 하나 하나 받을 수 있을지요? 그 날 용산에서의 억울한 죽음과 그 날 이후 무릎이 꺽이며 죽어간 쌍차의 죽음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자랑스런 민족과 태극기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매일 저녁6시 국기하강식때마나 맹세했던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으로 보답했나요?

턱없이 부족한 몇 달치 실업급여가 끝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닌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에게 며칠 전 국가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우편물하나를 보냈습니다. 파업때 다친 사측직원과 용역직원의 병원비를 산재처리했으나 그 원인이 파업참가자인 제 남편과 같은 행위자에게 있으니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서류였습니다.

집으로 도착한 그 서류를 보며 이렇게 국가가 있음을 확인합니다. 이미 청구되어있는 몇백억에 달하는 소송과 가압류에 그 돈 3억4천이 더해진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으니 읽어보고 다시 접어두었습니다.

용산의 비극이 일상처럼 명동3구역에서 북아현동에서 되풀이되고 쌍차의 비극이 다시 또 한진에서 유성에서 계속 이어지는 나라!

힘없는 사람들 몇 없어도 아파트는 올라가고 공장은 돌아 갈테니 죽어도 좋다 생각하십니까? 국가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또 나에게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우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덧붙이는 말

* 이 글은 <위클리 수유>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