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후쿠시마 대참사 이후 일본 정부의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바람의 방향이 어디로 흐르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방출된 방사능의 농도가 어느 만큼인지 등 이 엄청난 재난시에 알려야 할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이 정보들은 당시 미국으로 부터 나왔다. 심지어 후쿠시마현 북쪽에 위치한 이이따테무라 지역에 고농도의 방사능이 오염되었음에도 주민들에게 함구할 것을 강요하였다.
일본 정부는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정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마저 끊임없이 은폐하고 왜곡하였다. 일본 정부는 극악의 재난사태에 국민의 안전성보다 수습비용과 경제성 문제를 강조하여 왔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기중 방사능 기준치를 연간 1밀리시버트에서 연간 20밀리시버트로 올렸다. 세계 기준의 20배이다. 먹는 물의 방사능 기준치는 전세계가 1베크렐인데 일본은 300베크렐로 올렸다. (참고로 미국의 물 기준은 0.1 베크렐이다) 식품의 방사능 기준치는 전세계가 10베크렐인 반면 일본은 2000베크렐로 올렸다. 토양오염의 경우는 493베크렐이 체르노빌에서 정한 농업 허용 기준치였는데 일본은 5000 베크렐로 농업금지 기준을 10배 초과하고 있다.
기준치라 함은 방사능으로부터 보호받을 ‘안전기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치는 그저 ‘관리기준치’일 뿐이다. 국민들에게 안전을 주지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염된 방사능으로부터 국민을 관리하기 위한 기준치라는 것이다.
▲ 3.11 이후 폐허가 된 미나미산리쿠 [출처: '이름 없는 지진구호단' 홈페이지] |
수십만명의 이주민에 대한 대책도 없는 상태이다. 오염지역에 대한 제염작업 약속도 사실상 불투명하다. 오염을 없앤다는 '제염'이 아니라 그저 커다란 봉투에 오염된 흙 등을 담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이염'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오염된 한 초등학교 운동장의 흙을 5cm 깊이로 파내어 봉투에 담아 바로 옆에 옮겨놓는 것이 '제염'이다. 방사능이란 원래 근본적인 제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그저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대량의 방사능과 함께 살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방사성물질이 바다에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면서 빚어지는 해수오염의 심각성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우선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방사성물질은 바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변화를 일으키며 내년 초 혹은 상반기 넘어서면 전 지구를 거의 돌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현재로선 예상과 달리 태평양의 서쪽 연안의 피해가 더 크다(이에 미국 정부도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 동쪽, 한반도쪽은 내년초가 될 것이다. 여기서 큰 물고기일수록 더 위험하다.
이미 일본 전국토의 70%가 오염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땅으로 부터 모든 것을 얻는 인간에게 땅의 오염은 치명적이다. 동일본 오염지역의 주민들은 그저 망연자색 거의 맨몸으로 집을 떠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방사능 피해이다. 우리는 수많은 재난을 경험한다. 홍수나 가뭄, 또는 다리나 건물이 붕괴되고 교통수단이 붕괴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돈과 인력이 있으면 나름 복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방사능은 인간의 오감으로 전혀 느낄 수 없는 오염이다. 이는 돈과 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소멸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그것의 복구시간은 수백년에서 수만년이 걸린다. 방사능 피해 앞에 인간은 절대적으로 무능하다.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그 지역을 피하는 것밖에...
그동안 핵마피아들은 원전사고의 확률을 백만분의 1이라고 절대안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절대안전이란 절대적으로 없다. 후쿠시마 참사, 원자력 선진국을 외쳐왔던 일본의 대응은 바로 이것을 보여준다. 한번 터지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핵사고이다.
탈핵은 커녕 핵무장으로 향하는 일본
문제는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의 대응과 태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6월 22일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에 기존에 없던 '안전보장조항'을 삽입하였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원자력을 에너지 생산 등 평화적 이용에만 한정하지 않고 군사용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후 전국민적으로 원전폐지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후 원전이 폐지될 경우 잠재적 핵보유능력까지 상실할 수 있음을 감안, 장기적으로 핵무장화로 가는 길을 열어 놓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6월28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중단했던 플루토늄,우라늄 혼합산화물(MOX) 연료 가공 공장의 추가 공사를 승인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 관련 시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현재 일본의 롯카쇼무라라는 핵 재처리시설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을 뽑아 농축하고 플루토늄을 추출 보관하는 곳이다. 이것을 2016년까지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건설허가된 아오모리현은 규모 8의 지진이 예상되는 활성단층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더욱 충격을 감출 수가 없다.
또한 롯카쇼무라에 추가로 핵연료 공장을 건설하게 하는 것은 핵무기 전용이 가능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고속증식로 '몬주'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몬주는 상용화가 2050년에나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과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가에서 사실상 포기한 것이며, 일본에서 조차 1995년 이후 몬주에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아 가동이 반복해서 중단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
현재 일본이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국내에 6.7t, 영국과 프랑스 재처리 시설에 23.3t 등 총 30t이다. 이는 원자탄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급 플루토늄 약 30~50kg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이다. 이것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동안 핵마피아들이 주장해온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사실상 눈가리고 아웅하는 허구라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원자력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로 변모할 수 있음을 일본은 말해주고 있다.
▲ 6월 29일 일본 총리 관저 앞에서 진행된 원전재가동 반대 집회에 10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석했다. [출처: 일본 레이버넷] |
최근 일본은 원전폐기와 탈핵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도 오오이 원전 재가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리고 후쿠시마로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핵으로 부터 전국가적 피해와 참사를 당했음에도 여전히 일본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흐름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의 핵마피아들은 근본에서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자 '이를 도약의 계기로 삼아' 원자력 수출에 불을 붙이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 계획이 2030년까지 원전 80기의 수출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역시 핵의 군사적 이용이 가능한 핵 재처리시설의 건설을 획책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
얼마전 한국과 일본이 맺고자 했던 한일군사협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협정의 내용, 절차,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고 이것의 결과가 해프닝으로 끝날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문제이다. 그런데 이 협정은 북한을 겨냥한다고 하지만 동북아지대의 경제적,군사적 목적을 획책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 배경에는 미국과 함께 핵무기가 있다고 본다. 일본의 핵무기 개발정책과 원자력정책은 이미 한몸이고, 이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거꾸로 가는 일본, 결코 다르지 않은 한국...
본격적인 '탈핵'운동만이 답이다
원전재가동과 군사주의로 무장하는 일본과 동해안 일대를 원자력 크러스트를 조성하겠다고 하며 수십개의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도록 하는 한국은 서로 결코 다르지 않다. 아마도 한국에서 핵사고가 터진다면 그 대응 역시 일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는 거짓말, 은폐, 무기력. 우리도 똑같이 당할 것이다.
▲ 지난 4월 27일 탈핵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고리원전을 방문해 1호기 폐쇄를 요구했다. |
이번에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서 보았듯이 핵사고는 일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방사능에는 국경이 없다. 전지구적 생존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일본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생존의 문제, 평화의 문제와 직결되는 이 문제를 이 나라 민중들이 무관심하고 함구하는 한 바로 그 만큼 핵마피아들의 발걸음은 더 깊숙히 다가올 것이다.
일본의 54기 원전이 후쿠시마 이후 전면 가동 중단되었고 이중 4기는 영구 폐쇄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면 가동이 중단되어도 전력난은 없었다. 전력난 때문에, 경제의 밑거름인 에너지 때문에 그들은 핵발전소를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핵발전소가 없어도 전력난이 없음을, 핵에 의존한 경제기반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것, 그것만이 탈핵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일본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일본 국민들이 만들어가야 할 몫이 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후쿠시마가 주는 이 처절한 교훈을 거름삼아 '탈핵'운동이 밑으로부터 몰아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