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5일 삼성충남대책위와 반올림에서 삼성전자 온양공장 난소암 사망노동자 고 이은주 씨의 부모님과 오빠를 모시고 '윤명수'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장을 만났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가 고인의 부모님과 오빠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고인의 목숨을 앗아간 ‘난소암’이 직업병인지 판단하려면 고인이 근무했던 작업환경에 관한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산안공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합니다.
산안공단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을 통해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근로복지공단에 보냅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를 거쳐 직업병 여부를 결정합니다. 사실상 ‘역학조사 결과’가 직업병 여부를 판가름하는 셈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역학조사를 받는 회사는 유해한 작업환경을 은폐, 축소하려고 듭니다. 죽음의 공장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한국타이어에서는 이에 관한 자료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산보연 역시 이를 모르지 않지만, 회사가 공개하고 제공하는 조건 하에서 역학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비단 삼성만이 아니라 모든 직업병 사건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런 식입니다. 직업성 암을 인정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근로복지공단, "왜 나한테...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나"
작년, 충북 청주 매그나칩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김진기 씨의 백혈병 사건에서 민주노총 충북본부와 청주노동인권센터 등은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장을 만나서, 역학조사에 유족이 추천한 전문가(직업환경의학분야, 산업위생분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산안공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할 것으로 요구하였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매그나칩반도체가 유족 추천전문가들의 회사 출입을 막았습니다. 그러자 근로복지공단과 산보연은 유족이나 민주노총 충북본부 등에 알리지도 않은 채 매그나칩반도체가 추천한 전문가들도 참여시켜 역학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조사를 받아야 할 당사자가 자신을 조사할 조사자를 선정하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더구나 매그나칩반도체가 추천한 전문가 중 한 사람은 삼성백혈병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자, 이에 대응하여 삼성이 설립한 ‘건강연구소’에서 부소장으로 몸담고 있는 성균관대 김수근 교수였습니다.
그리하여 삼성충남대책위에서 고 이은주 씨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처럼 진행되는 것을 막으려고, 유족 추천전문가의 참여 보장과 더불어 삼성전자 추천전문가는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하려고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장을 만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천안지사장은 자신은 역학조사를 의뢰할 뿐 어떻게 조사하라고 관여할 수 없다, 왜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하나,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나, 라며 시종일관 고압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에게 편협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더군요. 노동자 편향적인 노무사이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형평성의 이름으로 유족추천전문가와 사측추천전문가 모두를 참여시키거나 배제시켜야 한다는 그 밑바탕의 논리는 명백히 틀렸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재해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설치, 운영되어야 하는 사회보험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인정율이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우리나라 작업환경이 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역학조사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근로복지공단, 산업안전보건공단, 노동부의 직무유기가 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서 그럴까요?
부디 이번 국정조사에서 역학조사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져 입법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정리해고 문제처럼 실컷 떠들어 놓고 입법 단계에서는 정작 핵심은 피해가서는 결코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산재보상 없이 제대로 된 산재예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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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님은 충남비정규직지원센터 상임대표이며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 노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