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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으로 향하는 트로이목마, 사내하도급법안

[기고]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보호법안, 제조업에 파견 허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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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5월 29일 “차별없는 세상, 투명한 사회를 위한 희망사다리 12대 법안”을 발표했다. 비정규노동자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이한구의원이 대표발의 한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새누리당은 이 법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법 제개정안을 100일 안에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내하도급 법안을 계속 요구해온 기업들

이 법률은 이미 2011년 5월말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에서 ‘공익위원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에 근거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사내하도급 관계가 상생과 협력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원사업주와 수급사업주 간에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한다며 사내하도급이 이미 자연스러운 도급관계라고 주장한 바 있다. 2010년 7월,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관한 판결을 내리면서, 흐름생산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공장과 같은 제조업에서는 사실상 합법적 도급이라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 가이드라인은 그 사실을 왜곡하고, 제조업에서의 불법파견을 사실상 합법화하는 것이었다.

이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자 자본가 집단과 한나라당은 <산업경쟁력과 사내하도급 활용 토론회>를 열고 이 가이드라인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경총의 이동응 전무는 “현대생산 공정 다양화 과정에서 사내하도급은 결코 악일 수 없고 앞으로도 계속 줄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산대 권혁 교수는 “이제 한국형 사내하도급을 이야기하자”며 “이미 벌어진 사내하도급 문제를 소급해서 불법화할 것이 아니라 통로를 열어두고 자율적으로 합리적인 한국형 사내하도급의 모습을 형성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이 하는 말은 한가지이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사내하도급 형태로 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모두 합법화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가이드라인으로 두게 되면 자칫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법파견의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가이드라인이 아닌 실효성있는 방안을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사실상 법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으로 제조업 파견을 합법화하는 법안

새누리당은 이러한 경제계의 요구를 적극 받아들여서 결국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내놓았다. 이 법은 제조업에서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으로 파견을 허용하는 법이다. 이 법률안에 보면 원청회사는 사내하도급업체와 계약을 할 때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일하는 업무와 장소, 대금 내역, 노동시간과 휴일, 안전 및 보건에 대한 모든 내용을 포함하여 계약을 하게 돼 있다. 기업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사내하도급이 정상적인 도급이라면 그 도급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원청이 세세하게 규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 규정들은 원청이 노동자들의 업무를 규정하거나 관리감독할 때에나 필요한 일이다. 결국 이름은 사내하도급이지만 사실상 파견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또한 이 법률안은 “업무의 연속성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존 수급사업주가 고용한 근로자의 고용 및 근로조건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이 법률안에서 이야기하는 사내하도급이란, 회사만 바뀌고 노동자들은 그대로 일하는 형태라는 뜻인데, 이것이 ‘파견’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그동안 불법파견의 징표로 간주된 내용들, 예를 들어 원청 사용주가 업무지시를 하거나 인사노무관리에 관여해왔던 것을 이번 사내하도급법에서는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19조를 보면 “원사업주는 수급사업주의 인사노무관리권한과 책임을 존중하고 이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수급사업주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하여 사실상 원청의 작업지시 권한도 열어놓고 있다.

파견허용업종을 늘리려는 시도가 노동자들의 반발과 투쟁으로 계속 좌절되고, 제조업에서의 사내하청 형태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나자 이제는 ‘사내하도급 보호’라는 명분으로 제조업 파견을 허용하는 다른 법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2005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 공장에서의 불법파견 투쟁이 시작된 이후 기업들이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제조업 파견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법 이름만 바꿔서 시행하는 것이다.

진짜 사장은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짜 사장인 원청사업주는 사내하도급 상에서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아서 마음대로 작업지시도 하지만 사실상 사용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 법에서 ‘원사업주의 준수사항’을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은 적절한 도급대금 보장이나 고충처리에 대한 것이고, 사용주로서의 책임은 전혀 묻지 않고 있다. “원사업주는 사업장 내의 모든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투표로 선출한 대표를 노사협의회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하는 조항이 아니라, 적정한 사내하도급을 위한 시행조치로서 사내하도급에 관한 고충 처리 사안인 것이다.

이 법안에서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라고 주장하는 차별시정제도는 이미 현행법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별시정이 쉽지 않은 이유는 차별시정을 신청한 순간 원청에 의해 업체 계약이 해지되고 노동자들은 해고되기 때문이다. 물론 제5조에서는 “원사업주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이나 노동조합의 활동 등을 이유로 사내하도급 계약을 해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마치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법은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사내하도급 계약해지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벌칙조항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해왔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실질적인 관리감독도 하고, 계약해지의 권한도 일방적으로 갖고 있는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갖지 않는 이상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하여 투쟁하고 교섭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보호’를 원하지 않는다, ‘권리’를 찾고자 한다

새누리당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보호’를 사내하도급은 어쩔 수 없으니 차별을 시정하고 고용이라도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경총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면 정규직이 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 나빠지고,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하지 않아 실업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종의 협박이다. 정몽구가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주식배당금은 사내하청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한 것이었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은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부려먹은 결과였다. 그것을 말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걱정하는 척하는 것은 기만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기업과 새누리당에게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대신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찾겠다”고 말하면서 투쟁해왔다. 불법파견을 저지르지 말고 고용을 원상회복하라고 요구했다. 불법파견을 정당화하는 파견법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불법행위로 착취한 돈을, 그 불법의 합법화 로비자금으로 쏟아 붓는 이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기업과 새누리당보다 더 많이 청년실업자들을 걱정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비정규직을 더 늘리자는 주장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충을 위하여 투쟁했다. 2·3차 하청을 걱정하는 척하는 기업과 새누리당에게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했다. 그랬기 때문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5일간 점거파업을 한 것은 힘들었지만 참으로 소중한 투쟁이었다.

파견법의 문제를 알리면서 투쟁해왔던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 구속 수배를 감내하고 투쟁한 건설노동자들, 불법파견에 맞서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며 투쟁해왔던 사내하청 노동자들, 민간위탁에 맞서 이제는 직접고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기억하자. 그 투쟁의 결과로 이제 파견법은 없어져야 하고, 원청에게 사용자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인 흐름이 되었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기업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며, 투쟁으로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것임을 이제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