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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빛내는 청소노동자, 그 이름이 빛나는 세상

[청소노동자행진 연속기고](5) ‘여성 청소노동자’가 감당해 왔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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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는 6월 15일 오후 4시 30분, 홍익대 정문 앞에서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라는 제목으로 ‘3회 청소노동자 행진이 개최된다. 2010년 6월 5일 1회를 시작으로 매해 6월 개최되는 청소노동자 행진은 이 사회의 유령처럼 살아가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존재와 요구를 알리는 장이며, 청소노동자의 밥과 장미의 권리를 위한 행진이다. 노동조합과 여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3회 청소노동자 행진 준비위원회는 청소노동자 행진 준비위 참여 제안을 시작으로 ‘여성, 비정규직, 최저임금,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등 2012년 청소노동자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담은 연속기고를 진행한다.


새벽 4시 반 경의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지만 이곳은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로 이른 아침이 시작된다. 전혀 모르던 사이지만 출근길에 만나면서 친해진 다른 청소노동자들을 기다렸다가 같이 환승 버스를 타기도 한다. 일하는 업체에 대한 불만, 가족들에 대한 걱정 등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는 이곳에서 이들은 분명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출근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버스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중요한 일터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으로 머무는 공간들일 뿐인 그 곳에서 청소노동자는 그저 ‘풍경’이 된다. 또는 아예 인식조차 되지 않는 ‘유령’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청소가 되지 않은 공간들은 금방 눈에 띄지만, 매일 그 곳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이 생활하는 모든 공간을 자신의 일상의 공간으로만 생각할 뿐, 그곳을 청소하는 사람의 일터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들은 종일 일을 하고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머문다. 화장실 한 칸, 계단 아래, 창고 구석 같은 곳들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령’이나 ‘풍경’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청소노동자의 80% 이상이 여성이며 그중에서도 40% 이상이 60세 이상이라는 사실은 이 같은 현실을 다시 한 번 되짚게 만든다. 이들은 거의 평생 동안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유령 같은 일을 해 온 것이다. 청소 노동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지만 고용주는 이들의 노동을 생계 노동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해도 남성 청소노동자는 생계 부양자로 인정되는 반면, 여성 청소노동자는 ‘집에서 하는 일을 밖에서도 하는’ 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인식은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다.


‘여성’ ‘청소노동자’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인격적 멸시와 성희롱...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이고 ‘청소노동자’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다. 용역업체의 관리자들은 고령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불안정한 고용 조건을 이용해 일상적인 멸시와 성희롱으로 이들의 노동을 통제한다.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대부분이 1년 이하의 단기 계약을 맺고 있지만 평균 5년에서 10년 이하의 근속년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러한 통제 시스템이 의도하는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고용을 유지하면서 남성 관리자들의 명령과 규율에 따르게 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이미 숙련된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여기서 남성 관리자들에 의한 성희롱은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의 일부나 마찬가지가 된다.

특히 ‘여성’, 게다가 ‘고령의 여성’이 지닌 사회적 지위와 ‘청소 일’에 대한 하대는 인격적 멸시로 이어진다.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집에서 애나 보지 뭐 하러 나왔냐”라거나 “그런 것도 못 하면서 무슨 돈을 벌겠다고 나왔냐”, “그러니까 평생 청소나 하는 거 아니냐”는 등의 멸시를 경험하고, 가정에서나 밖에서나 ‘누군가가 해주는 청소’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손한 태도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청소나 빨래, 육아와 같은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사람들은 고령의 여성들이 하고 있는 사회적 노동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휴게시간을 길게 명시해 놓고 임금 계산에 산정되지 않는 휴게시간이나 식사시간에 조회, 교육 등을 실시하는 것, 법정 휴가조차 사용할 수 없고 산재보험에도 제대로 가입되어 있지 않은 고용 조건, 포괄임금제 등으로 노동한 시간만큼의 대가를 전혀 받을 수 없는 현실 역시 여성 청소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이들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고 그저 시간이 남아서 하는 ‘소일거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결국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안정적인 임금과 노동환경 속에서 일을 할 수 있으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노동과 청소 노동을 비롯한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빛내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이 ‘빛나는’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일터에서 유령이나 풍경처럼 살아가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사람들에게 호명될 때, 이들의 호칭은 ‘청소 아줌마’가 된다. ‘000씨’나 ‘000님’으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러 온 사람들도 당연한 듯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러나 투쟁 현장의 남성 노동자들에게 공적인 자리에서 ‘아저씨’라거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청소나 식당일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면 다른 여성 노동자들에게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일도 거의 없다. 이는 청소 일이나 식당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편적인 일례이다. 청소나 요리를 ‘여성의 일’ 또는 ‘어머니의 일’로 인식하거나, 가정의 안팎을 불문하고 여성(특히 나이 많은 여성)들을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가사 일을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이상 청소노동자에 대한 불평등한 현실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청소노동자들은 더 이상 유령이나 풍경도, 아무에게나 쉽게 호명되는 ‘어머니’나 ‘아줌마’도 아닌, 당당한 ‘청소노동자’로 세상에 서서 그 권리를 외치고 있다. 그것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에. 6월 15일 ‘3회 청소노동자 행진’의 외침은 그 꿈에 대한 힘찬 선포가 될 것이다. 그 날 많은 사람들이 이 당당한 ‘청소노동자’들의 외침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