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해야 할 통합진보당이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사이, ‘변신의 귀재’ 새누리당이 그 틈을 비집고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은 5월 30일 19대 국회 임기 시작과 더불어 △비정규직 차별해소 3개법 △경제민주화 관련법 △맞춤형 복지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등 12개의 민생법안을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5월 29일 황우여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등 12개 법안을 내일 국회에 제출해 100일 안에 모든 법안을 완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의 1호 법안은 ‘비정규직 차별해소 법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총선을 앞둔 지난 2월 노동공약을 발표하면서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살기 위해 해결돼야 할 여러 문제 중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라고 했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뜻에 따라 새누리당이 첫 번째 법안으로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내세운 것입니다.
19대 국회 1호 법안은 비정규직 차별해소?
새누리당은 비정규직 차별해소 관련법에 대해 △정규직에 지급하는 현금과 현물을 비정규직에도 똑같이 지급하는 내용 △2015년까지 공공부문의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고용 전면 폐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내하도급(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근로조건 개선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내하도급 보호’에 대한 내용입니다. 대법원이 지난 2월 23일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확정 판결을 내린 이후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전국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이 드높았기 때문입니다.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기본적인 근로조건 보장, 복리후생시설 이용에 편의제공, 직업능력 개발 기회 제공 등에 대한 규정 신설로 정규직과 차별없는 근로여건을 만들어 가급적 사내하도급 증가를 줄여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정규직과 차별없는 근로여건’을 만들겠다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정규직화와 임금, 고용보장을 제외하고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보호법안’이 하청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사내하도급 보호법안’의 내용은?
곧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보호법’이 베일을 벗고 그 실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이었던 김성식 의원이 발의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의 내용을 보면 새누리당 법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김성식 의원이 입법 발의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은 △사내하도급 계약시 근로자 수와 업무내용, 대금(임금 포함)의 구체적 내역 서면계약 의무화 △차별금지 조항 위반시 고용노동부 시정명령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적정 임금 및 근로조건 보장 △고용안정 △직업능력개발 및 평가에 관한 사항 등입니다.
당시 김성식 의원은 이 법안의 목적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의 개선을 도모하고, 사내하도급 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며, 계약을 해지하는 때 30일 전에 알리도록 하고, 노동조합의 활동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또 업체가 변경될 때 고용 및 근로조건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임금 및 복리후생, 상여금 등과 동등한 수준에서 지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차별받지 않도록 적절한 도급대금을 보장하고, 신규채용 시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했습니다.
요약하면 원청회사의 적정한 도급 계약을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의 적정한 임금과 근로조건, 고용안정을 개선한다는 것입니다.
김성식 의원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
원청회사에 ‘적정한 도급계약을 맺으라’는 권고내용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개선되고, 고용이 보장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이 법안이 노리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합법도급으로 둔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국내법상에는 ‘사내하도급’이라는 명시적 문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사내하도급’이라는 용어를 법률로 명시해 ‘근로자파견’과 ‘사내하도급’이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인 것처럼 규정함으로써 파견법의 고용의제와 의무 조항을 피해갈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법안의 제 2장 사내하도급계약의 내용에 나와 있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수, 업무내용, 장소, 기간, 노동시간 등 10개 항목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에서 대법원이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이러한 사항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내용입니다.
즉, 이 법안대로라면 현대자동차와 120개 사내하청 업체들이 맺은 도급계약서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킨다면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관여하더라도 ‘합법’ 사내하도급이지 ‘불법’ 근로자파견이 아니라는 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법의 16조 도급운영상의 의무에서도 “원사업주는 수급사업주의 인사노무관리권한과 책임을 존중하고 이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수급사업주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바지사장’의 권한을 존중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협조를 얻으면 된다는 이 조항 역시 대법원에서 인정한 사내하도급의 불법파견 증거들을 모두 합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내하도급 보호법=불법파견 은폐법=재벌 보호법
지금까지 법원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대법원 최종 판결을 비롯해 현대차 아산공장, 지엠대우(한국지엠) 창원공장, 금호타이어 등에서 합법적인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 파견관계’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도급’은 전형적인 도급이 아니라 ‘사내하도급’이기 때문에 일부 근로자 파견과 비슷한 요소가 있어도 곧바로 파견으로 단정할 수 없고 사내하도급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따라서 ‘사내하도급 보호 법안’이 통과되면 ‘근로자 파견’과 비슷한 ‘사내하도급’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파견법을 피해갈 수 있게 됩니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인 권두섭 변호사는 “경비업법으로 인해 건물의 경비 노동자들이 파견의 요인들이 충분해도 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비근한 예”라고 지적했습니다.
새누리당이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내하도급 보호법’은 김성식 의원 입법안과 유사할 것이 분명합니다. 김성식 의원의 법안이 나왔을 당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법 학자들, 변호사들은 ‘현대자동차의 청부입법’이라고 했습니다.
즉, 지난 10년 동안 근로자파견법을 위반하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해 막대한 순이익을 가로챈 정몽구 회장의 불법을 합법화시켜주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새누리당이 노리는 것은 현대차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로 현대차를 필두로 전국의 사업장에서 재벌 ‘회장님’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일시에 해결해주는 법안이 될 것입니다.
대기업 42.6%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사용 규제 완화’ 입법 요구
지난 5월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의 인사노무 부서장 302명을 대상으로 ’19대 국회 노동입법 방향에 대한 기업의견’을 조사한 결과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보호 법안’의 핵심을 정확히 알려주었습니다.
19대 국회가 고용활성화를 위해 우선 추진해야 할 노동정책으로 대기업은 무려 42.6%가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를 꼽았고, ‘인건비 지원 확대’(22.3%)와 ‘정규직 보호 완화’(17.0%)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인건비 지원 확대’(37.9%), ‘임금 안정’(22.1%),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20.2%) 등의 차례로 꼽았습니다.
재벌들은 19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새누리당의 19대 국회 1호 법안인 ‘사내하도급 보호 법안’은 불법파견 은폐법이며, 정몽구 보호법이자 재벌 보호법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서민들을 속이며 900만 비정규직의 고통을 만들었던 것처럼,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 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영원한 비정규직 노예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19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현대차 국정조사
오는 6월 2일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2.23 대법원 최종 판결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이 대법원 판결의 1차 판결이었던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무려 678일이나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승소한 최병승 조합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현대차와 기아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19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법원의 판결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는 불법파견의 온상 현대자동차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국회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 모든 제조업 사업장에 대해 불법파견 특별조사를 벌이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파견법을 위반해 불법으로 막대한 순이익을 가로채온 악덕 기업주들을 처벌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묻습니다.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살기 위해 해결돼야 할 여러 문제 중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라고 했던 당신의 첫 번째 민생법안이 ‘정몽구 보호법’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