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단결과 연대로 버무려진 새세상, 사람꽃을 만나다

[사람꽃](3) 얼어붙은 세상을 녹일 ‘희망’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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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희망버스 이후 ‘희망’ 바이러스가 전국 곳곳에 퍼지고 있다. 작년 경기지역에서 진행한 ‘희망김장’이 그 중 하나다. 어느 날 경기지역의 한 동지가 연락을 했다. 경기지역의 투쟁사업장,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김장을 하기로 했으니 함께 하자고 한다. ‘어? 우리 투쟁은 마무리되어서 우린 투쟁사업장 아닌데... 아직 우리가 투쟁중인 것으로 생각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동지는 그간 함께 싸웠던 이들이 다 같이 모여서 희망을 버무리는데 기륭이 빠질 수 없단다.

사실 난 그동안 김장을 담가 본 경험이 아주 적다. 집에 김장을 담글 때 늘 바쁘다는 이유로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김장을 천 포기나 담근다는데 그걸 다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합원들과 김장을 담그기로 한 성당으로 갔다.

성당에 도착해 보니 많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배추도 절여져 있고, 무채, 갓등 야채들이 모두 썰어져 있다. 넓은 성당 식당 테이블도 김장 담그기 준비가 거의 되어 있었다. 구로공단에서 안양으로 공장이전을 한 주연테크 곽은주 전 지회장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준비를 했냐고 물었더니, 몇 일전부터 정신없이 준비를 했단다.

  지난해 12월 경기지역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위한 <희망김장> 모습

희망 김장 담그기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분들이 ‘배추를 주겠다’, ‘마늘도 주겠다’, ‘고춧가루도 주겠다’. 여기저기서 함께 하겠다고 손길을 내 밀었단다. 그 덕분에 절인배추를 사서 조금 편하게 김장을 담그려 했는데, 밭에 가서 배추를 뽑아 와서 절이고, 마늘은 36쪽짜리를 까야 했단다. 새벽에 절인배추가 얼까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김장 담그기 준비로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다면서도 얼굴엔 미소가 가득이다. 힘들긴 해도 다들 뿌듯해 하는 미소가 바로 희망의 신명나는 씨앗이 아니겠는가?

그 씨앗에 싹이 나고, 줄기가 뻗고, 꽃이 피는 함박 웃음 진 우리 노동자들의 꿈을 신나게 버무려 보자며 본격적으로 김장 담그기가 시작됐다. 맛있게 담아야 한다며 배 썬 것을 한 자루 가져왔다. 그런데 그 배를 고르게 여러 테이블에 나눠야 하는데 실수로 한 테이블에 몽땅 부은 사고도 터졌다. 한 바탕 시끌벅적 난리가 났지만 어쩌랴 ‘어느 사업장인지 젤로 맛있는 김치 먹겠다’며 한 바탕 웃었다.

몇 명쯤이나 될까 꽤 많은 이들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우비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배추에 속을 담기 시작했다. 연신 손을 움직이면서도 함께 하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서로 소개 하잔다. 노조에서, 여성단체에서, 그냥 가정주부라는 분, 촛불시민이라고 하는 분, 엄마 손에 이끌려 온 중학생 등 다양한 이들이 인사를 하며 웃고 떠들며 배추 속을 넣었다. 옆에 있던 행란언니 ‘그만 얘기 하라구! 침 튀겨’ 한마디에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온 몸에 고춧물을 묻히고 심지어는 얼굴에도 묻혀서 한 바탕 왁자하게 웃기도 했다. 투쟁에 지친 이들도 얼굴에 웃음 가득이다. 희망 그득이다.

천포기 김장을 언제 마무리하나 했는데 워낙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막걸리에 보쌈으로 한바탕 정과 웃음도 버무리고,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단막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투쟁하는 이들이 나와 소감도 나눴다. 처음에 좀 뻘쭘하게 갔던 나도 우리 조합원들도 한 마디씩 했다. “와~ 경기지역은 너무 따뜻하고 좋아요... 서울과 다르게 고향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때 담근 김장으로 우리도 겨울을 따뜻하게 났다. 먹을 때 마다 맛도 좋았지만 김장 담글 때가 생각이 나서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5월 희망김장의 감동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사람 꽃을 만나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연.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을 싸워야 하는 이들의 아프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6월 1일 이 사람꽃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희망을 나누기 위해 신나는 음악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콘서트로 다시 태어난다. 그간 마음속에 꽁꽁 담아 두었던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북콘서트에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라 믿는다. 세상에 이름없이 피어난 수많은 꽃들이 있다. 수많은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알 수는 없어도, 인간의 존엄을 위해, 얼어붙은 사회를 녹이기 위한 사람 꽃의 이름은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당신들의 투쟁은 정당하고 옳다고, 함께 하겠다고’ 하는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자. 앞으로 더 힘겨울 시간이라 생각되는 사람꽃들의 싸움에 벌과 나비가 되어 날아와 주자. 그들의 벗으로. 그들이 지치지 않게.

긴 시간의 기륭투쟁 당시 너희들의 싸움이 옳다고, 힘들지만 함께 싸우자고, 함께 해 주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2008년 죽음을 문턱에 둔 우리의 투쟁에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힘든 상황이지만 힘이 났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우리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고통을 함께 했던, 함께 비를 맞았던 이들이 있어 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1895일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응원과 연대였다.

우리는 응원과 연대엔 따로 크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서울도 지역도 그 무엇도, 큰 싸움도 작은 싸움도 모두가 우리시대 절망과 싸워 희망을 지피는 희망 꽃이고 사람 꽃이다. 배추도 무도 고춧가루도 갖은 양념도 자기와 남을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더 싱싱하면 할수록 김장은 맛있다. 가장 싱싱하게 서로에게 연대하는 것이 김장 버무리기가 아닐까? 우리가 우리의 손과 땀으로 함께 각자 싱싱한 재료를 섞어 진정한 하나의 ‘김장’을 담글 때처럼 우리의 다양한 투쟁이 서로 단결과 연대로 버무려져 새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리 길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어지는 길이고 치열하면 할수록 더욱 커지는 길이다. 사람을 살리는 길!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길에 우리는 투쟁! 서로에겐 연대의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