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행진을 했다. 여성도 인간이라고, 살인적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는 살 수가 없다고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빵 대신 먼지를 마시며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정작 인간이자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각 나라에서는 매년 3월 8일 여성의 노동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 우리는 당연한 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 2005년 미국 청소노동자 행진의 날 |
1990년 6월 15일 미국 LA의 청소노동자들이 행진을 했다. 이날 경찰은 폭력으로 행진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진압했다. 극심한 탄압을 계기로 1980년대 초부터 이어져온 ‘청소부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캠페인이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이 날을 기억하며 매해 6월 15일 미국 전체 청소노동자들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에는 10만여 명이 모여 행진을 하기도 했다. ‘청소부에게 정의를’ 캠페인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청소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시작했다. 여러 도시에서 청소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변화가 나타났다. 파트타임으로 장시간, 야간노동을 하면서도 시간당 5~6달러밖에 받지 못하고, 복지혜택도 전혀 없었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상승시켰다. 또 청소노동자가 사업주로부터 노동조합을 인정받은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일 것이다.
이들의 행진은 영화 <빵과 장미>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행진은 지금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2010년 6월 5일 500~600여명의 한국 청소노동자들이 행진을 했다. 작업복을 입으면 유령처럼 여겨졌던 존재, 쉴 공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화장실 한 켠에서 지하실 계단 아래서 찬밥을 먹어야 했던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이 당당히 거리로 나섰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된 행진은 올해로 3회째다. 투쟁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되찾았다. 젊은 남자 소장이 반말을 찍찍해대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참아야 했지만, 이제 그 누구도 청소노동자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
▲ 2010년 6월 제1회 청소노동자 행진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으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갖게 되었다. 작년과 올해 진행된 대학 청소노동자 집단교섭은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임금인상을 쟁취함으로써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깨는 투쟁을 만들었다. 최저임금문제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본래 최저임금은 일정 수준 이하로 임금을 낮출 수 없게 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을 지원하고, 노동력 착취를 제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많은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임금 상한선이 되어 임금 인상을 가로막고, 생계를 위협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게다가 임금이 오르면 고용률이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로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를 위협하며, 기업이 노동자를 마음껏 초과 착취할 수 있는 무기가 되고 있다.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한다면서 초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최저임금제도의 이중성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곤궁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 맞서 최저임금 투쟁이 1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위원회에서 동결과 몇 십 원의 인상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노동자들은 이를 압박하는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자본의 일방적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에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획기적 인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전체노동자의 요구라고 하기에는 투쟁에 결합하는 노동자의 수가 너무도 적다. 제도 자체에 한계는 있으나 전체노동자의 목소리로 최저임금위원회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동자가 최저임금 투쟁에 함께해야 한다.
한편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각기 사업장에서 임금 투쟁으로 최저임금을 돌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몸소 보여준 것이 청소노동자의 투쟁이었다. 법정최저임금을 실질적으로 뛰어넘기 위한 투쟁, 저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힘으로 최저임금을 깨부수는 투쟁이 더 광범위하게 벌어져야 한다.
간접고용이 아닌 직거래
작년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바로 ‘직거래 합시다’라는 말이다. 갈수록 하청에 하청, 용역과 외주와 같은 복잡한 고용관계가 일반화되고 있다. 자본가는 생산비용 절감과 생산의 효율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는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중간착취에 대한 문제제기, 그것이 바로 ‘직거래 합시다’라는 말이었다.
즉 직접고용해도 무방한 업무이고 원청에서 지시를 받아 일을 하고 있지만, 원청이 노동조건 전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하는 기이한 노동형태에 대한 제기였다. 이는 비단 청소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생산직 노동자,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학교나 병원의 급식 노동자, 마트나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우리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노동자의 대부분이 중간착취에 시달리는 간접고용 노동자다. 간접고용이 아니라 원청이 직접고용하라는 요구는 이번 제3회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다시 한 번 외쳐질 계획이다.
제3회 청소노동자 행진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꿈이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맞서는 이들의 용감한 발걸음이다. 청소노동자만의 외로운 꿈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노동자의 연대가 절실하다. 십대에 꿈을 꾸던 설렘처럼, 하지만 강건하고 우직하게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 내딛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