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장면을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었고, 내가 이야기 할 때마다 듣는 사람들도 눈에 눈물이 맺힐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 눈물들은 ‘감동’이었다.
우린 왜 별것도 아닌 모습에 눈물까지 나려 했을까. 청소노동자 유니폼을 입은 60대 여성이어서 일까. 15년 전, 대학 시절 참 따뜻하고 당당했던 한 선배가 자신의 아버지가 청소부지만 자랑스러운 존재라고 고백하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에겐 ‘청소부’라는 말이 더 익숙하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수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야”라고 소개하듯이, “내가 담당하는 구역”이라고 말하는 모습 그 자체가 현재 시점에서도 우리에게 감동적이었던 것이다.
난 그분이 스스로 ‘청소노동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가능하다고 감히 생각했다. ‘청소노동자’로 당당해질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청소노동자들이 대부분 나이 들고 배운 것 별로 없는 노동자다 보니,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데도 일할 곳이 별로 없다. 건물 구석에서 차가운 밥을 먹으면서도,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자기 권리나 요구를 생각하기 보다 연말이면 내년에도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하는 마음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청소라는 일 자체가 먼지만 털어도 끝날 수 있는 일이고, 광내는 일까지 해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상급자에 따라 얼마든지 괴롭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노동자는 더욱더 개별적 행동이 어려워진다.
노동조합에 들어가 조합원이 돼서야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것이 사장의 ‘시혜’가 아니라, 최저임금 이하를 주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함께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소 하청업체가 바뀔 때마다 상급자 마음에 따라 마음대로 해고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청소업무가 상시업무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해온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숨기고 싶은 직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정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곳도 청소가 필요 없는 곳은 없고 저절로 청소가 되는 곳도 없다. 청소노동자가 같은 건물, 같은 사장에, 같은 노동자였을 시절에는 설령 계급은 달라도 청소노동자의 ‘존재’는 보였었다. 모든 건물에 청소노동자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건물에서 같이 일하고는 있지만, ‘청소노동자의 사장’과 ‘나의 사장’이 달라지면서 청소노동자의 존재도 잘 보이지 않게 됐다.
지난해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우리 사회는 드디어 청소노동자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열악한 작업환경에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을 따름이다. 문제는 아직도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기가 너무나 어렵다. 업체변경으로 인해 고용이 매년 불안하고,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는 원청은 사용자 역할을 회피할 수 있는 법적 보장이 되어 있다.
먼지 날리는 건물 구석에서 밥을 먹지 않기 위해 휴게실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을 보장하라는 요구, 일하다 다치면 산재를 인정하라는 요구, 업체가 바뀌어도 계속고용을 유지하라는 요구. 이 요구가 어려운가? 하지만 고령의 여성 노동자이며, 개별적으로 일하는 청소노동자 한명이 바꿀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연대도 필요하고 관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노동자에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난 모든 청소노동자가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아직도 꿈을 꾼다. 이 꿈을 위해 제3회 청소노동자 행진을 지지하고 참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