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고용해서 사업을 영위하는 자는 고용한 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그 고용에 대한 책임을 확인하는 방식은 지금까지는 주로 ‘근로계약’이었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사용자는 노동자의 권리, 의무에 대한 상대방이 된다. 그러나 간접고용은 이를 단절시키고 다면화 시킨다. 사용자는 자신이 직접 고용하지 않고도 다른 사용자의 노동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영위한다. 이를 법제도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 바로 ‘파견법’이다. 고용관계에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을 ‘중간착취’로 보고 이를 엄격히 금지하여 오다가 파견을 제도화함으로써 길을 열어준 것이다.
또 간접고용의 문제는 비단 파견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무수한 하청, 하도급, 용역, 위탁 등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은 자신을 고용한 사용자가 아니라 다른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노동한다. 그러나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는 하청 사업주이므로 노동자의 권리 의무는 그 사용자와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법해석의 태도였다. 그런데 원청 사용자와 하청사용자간의 위계와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업체의 지배력 행사 등으로 인해 하청업체가 노동자의 권리에 대응할 수 있는 범위는 협소화되고, 하청 단계가 늘어날수록 심해진다. 그래서 간접고용 하에서는 근로계약 관계에만 집중했을 때 노동자들의 권리는 상실될 수밖에 된다.
이러한 간접고용이 파견제의 합법화 이후 급격히 늘어났고, 이는 분명 파견법 제정의 효과다. 고용관계에 제3자를 개입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신호는 자본으로 하여금 간접고용 활용의 유인을 촉발시켰고, 더불어 자신의 몸을 가볍게 하여 경제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자본의 욕구는 이러한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지속해 왔다.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불법파견에 대한 대응으로부터 제기되었다.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으로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함에도 파견이 아닌 도급 등의 형태로 위장한 경우, 불법파견이므로 사실상 사용자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싸움이었다.
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을 시작으로 13년째 이르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파견법 시행 14년. 그 사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고 파견법에 의해 소리 소문 없이 잘려나갔다. 이 사업장에서 저 사업장으로 떠돌아다니는 인생, 2년마다 해고된다는 두 해살이 풀들은 이제는 2년은커녕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내에 잘려나가고 또 다른 사업장의 비정규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간접고용이라는 고용형태로 인해 때마다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 소중한 성과를 일구어 왔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해고에 맞서 투쟁하고,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며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간접고용의 활용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있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는 어느 한 순간에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파견법에 의해 대량해고 되었던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같은 시기 벌어졌던 대성산소 용역기사 노동자들, 캐리어 사내하청, 대송텍, 인사이트 코리아 노동자들의 투쟁. 그 모든 투쟁이 성과를 남긴 것은 아니었지만 인사이트 코리아 노동자들은 4년여 투쟁 끝에 하청업체는 사실상 실체가 없으므로 애초에 원청인 SK가 직접 고용한 것이라는 판결을 만들어 냈다.
또 2004년부터 조직되고 투쟁하기 시작한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대자동차에서 1만명 이상, GM에서 800여명의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불법파견 판정이 검찰에 의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뒤집어 지는 등 정규직화로 이어지지는 못하였으나 그 투쟁들은 조금씩 성과를 쌓아왔다.
바로 간접고용이라는,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상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박탈하는지를 드러내었고, 그를 통해 원청이 나서지 않는 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권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법에 기대지 않고, 법을 뛰어 넘어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해야만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주체들은 깨달았다.
그리고 그 끈질긴 투쟁으로 2010년 현대중공업에서는 원청이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당사자가 된다는 사실, 권한 범위 하에서는 교섭의무를 지는 사용자라는 사실을 인정받았고, 현대자동차에서는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므로 2년 초과시 직접고용된 것이라는 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물론 이 판결들의 한계도 많다. 그러나 이를 딛고 우리의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 그리고 그 투쟁으로 그간 끈질기게 요구해온 파견법 폐지와 직업안정법을 통한 간접고용 규제 강화, 원청 사용자 책임 인정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확보해 갈 것인지의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파견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제도의 진전을 얻어내자는 입장에 대하여
그러나 그 제도적 요구를 어떻게 모아갈 것인지에 대해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입장들이 조금씩 갈리고 있다. 보다 분명하게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해 온 이른바 전문가들의 입장이 조금씩 갈라져 제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현대자동차 대법원 판결과 비정규직 문제의 사회 이슈화, 그리고 새로운 국회의 분위기를 타서 이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해 혹자는 파견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제출한다. 그러나 파견법은 개정한다고 해서 좋아지는 법이 아니다. 파견법 존재의 의미는 ‘중간착취’의 법적 허용이며, 고용의 분절과 다면화를 통해 사용자 책임의 일부 또는 전부를 회피하는 것에 대한 법적 승인이다. 이것이 간접고용 상태에서 노동자 권리의 보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파견법이라는 존재의 폐기가 이야기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나 제도개선에 대한 조급함은 파견법이 여전히 살아서 개악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고, 그간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자본의 대응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법제도와 정부의 정책에 노동자 투쟁이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간과한다. 파견법 개정의 방향으로 제출되는 ‘사유제한 강화’, ‘기간 제한의 병용’이라는 구성은 일면 파견법 폐지에 준하는 강력한 규제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의 대응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사유를 강하게 제한하는 것은 역으로 그 사유에 해당하면 사실상 모든 업무에 대한 파견사용의 길을 열어주는 방안이다.
노동자들의 불법파견에 맞선 투쟁이 시작된 이후로 자본은 파견 기간을 단축하고, 일시적 사유를 이유로 3개월, 6개월 기간으로 계속 노동자를 돌려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사유제한 강화라는 방식은 힘 있는 규제 방안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사용자들은 파견법상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기 보다는 그 범위를 벗어나기 위한 완전 도급화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규제로 파견법 개정이 효과를 가지기는 역시 힘들다.
그래서 이야기 되는 것이 또 한편으로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을 명확히 해서 불법파견을 강력히 규제하자는 것이고, 파견법을 개정하자는 입장은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을 파견법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파견’은 법률상 개념이 규정되어 있는 반면 민법상 개념인 도급은 명확한 형태를 갖춘 어떤 계약의 형태라 보기는 어렵다. 다양한 계약의 구체 형태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파견과 대비시켜 파견 혹은 도급이라는 방식으로 구분 짓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 어려운 수고를 거쳐 의미가 있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논하는 것은 간접고용 관계에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는 자가 누구냐를 논하는 문제이다. 이는 원청 사업주와 하청 사업주의 계약 관계가 파견이냐, 도급이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는 아니다. 노동이 이루어지는 실태 속에서 노동자에게 사용자로서 지휘명령을 행하는 자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파견과 도급을 엄격하게 구분지어서 파견을 규제하자는 견해는 엉뚱한 두 가지 귀결을 낳는다. 하나는 간접고용, 즉 다면적 근로관계 하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하청업체의 실체성 여부를 따지는데 집중하여 하청업체가 독자적 사업체로서 실체가 있다면 원청을 상대로 한 노동자의 권리 주장을 배제하게 되는 귀결, 또 하나는 지금 정부가 취하는 태도처럼 몇 몇 불법파견 업체를 처벌하면서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통해 도급관계를 규율 점검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인 간접고용의 길을 확실하게 열어주는 것이다. 전자는 대다수 법원의 태도로서 비판받아 마땅한 입장이며, 후자는 정부의 태도로 비판받고 있으나 노동계 내에서도 일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하도급에 대한 규율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어 혼란의 요소가 되고 있는 지점이다.
사내하도급 규율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대하여
광범위한 간접고용의 해법을 사내하도급에 대한 규율에서 찾는 이들의 경우 파견법이 규율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협소하니,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사내하도급에 대한 별도의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내하도급이라는 것 역시 명확히 규정된 무엇이 있는 계약 형태는 아니다. 하기에 이에 대해 실태를 보고 우리는 불법파견 ․ 위장도급의 문제를 제기하며 원청을 상대로 싸워왔고, 불법파견이 아니더라도 원청이 권한이 있는 범위에서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함을 주장해 왔다.
근로관계는 점점 더 다면화 되고,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반드시 사용자가 파견법을 피해가기 위해서, 노동자 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 하에 이루어지는 것만도 아니다. 자본의 경쟁 격화 속에서 자본은 끊임없이 유연성을 높이고 상시적 구조조정을 가능하기 위한 수많은 방편들을 강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내하도급을 개념화 하고 법제화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이 방향으로 삼고 있는 동희오토와 같은 비정규직 100%인 공장을 예로 들어 보자. 사내하도급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동희오토와 같은 사례 때문에 사내하도급 규율이 필요하다고 한다. 원청인 현대 ․ 기아를 상대로 불법파견을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그 가능성을 빼고 나면 다른 주장의 여지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파견법 폐지만 주장했다가는 이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배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까지 동희오토의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진짜 사용자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의 활동을 전개해 왔다. 현대 기아 자본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한에서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고, 그를 위한 제도적 싸움은 앞으로 더 필요하다. 그 싸움을 위해서는 사내하도급이라는 개념 형성이 불필요하거니와 오히려 동희오토라는 하청 공장 내로 투쟁을 가두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물론 사용자들은 이전처럼 파견에 해당되지 않기 위해 여러 형식적인 포장을 하지 않더라도 사내하도급의 범위에만 포함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에서 보다시피 원청에게 강제되는 것은 노력할 의무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같은 사업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위계와 차별은 원청의 직접고용 노동자와 사내하도급 노동자, 파견노동자로 더 세분화 될 것이다.
그런데 더 난감한 것은 사내하도급 규율을 주장하는 이들이 원청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어떻게 주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고려가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다만, 노동부가 밝히기를 파견법에 따라 파견되는 노동자 수가 8만 명 남짓이고, 그로써 규율되는 범위가 협소하며, 최소한의 파견법에 의한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수많은 하청 ․ 용역 노동자. 그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단순 논리는, 결국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라는 노동자의 오랜 요구조차 망각한다.
성과를 잇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을 놓지 않는 것
간접고용 관계는 이미 사용자가 여럿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가운데 진짜 사용자가 누구인지, 노동자의 권리 주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문제는 ‘사내하도급’ 개념을 형성함으로써 풀리는 것은 아니다. 또한 원청 사용자와 하청 사용자의 계약이 어떤 형식인지를 밝혀내는 것으로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관계의 실태에 근거하여 실질적으로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자에게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우겠다는 노동법의 의지 - 법원의 판결 또는 정부의 정책 및 국회의 입법으로 구체화되는 - 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용자 책임은 오로지 단 한명의 사용자에게 전적으로 지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용자에게 동시에 혹은 분할하여 지워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 것이 현대중공업의 판례이다. 현대중공업 사건 판례는 설사 묵시적 근로관계나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라도, 그래서 원청 자본의 주장처럼 도급관계라고 하더라도 구조상 원청 사업주가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노조활동 등 노동관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면 그때에는 원청 사업주도 노조법상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개별적 근로관계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이 저항하듯이 사용자로 하여금 고용의 책임을 부과시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판결은 명시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파견’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원청업체의 경영조직과의 편입, 관련 시설 및 원료의 소유여부, 작업배치 작업방식 작업순서 등 노무제공의 방식과 방법에 관한 결정권이나 노무지휘권의 행사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요소 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간 투쟁의 성과를 잇고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더 확장하는 한편 판결이 가지는 한계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가장 집중해야 할 제도적 요구는 파견법 폐지와 원청을 상대로 한 사용자 책임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구체화 할 것인가이다.
파견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직접고용 원칙의 중대한 훼손이자, ‘중간착취’의 법적 허용이기 때문이다. 파견법이 폐지되어야 파견법의 우산 밑에서 몸을 키워온 수많은 위장도급에 대한 규제가 가능해 진다. 이를 폐지한다고 해서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싸울 요소가 없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파견이 애초에 근로자 공급 금지의 원칙을 깨고 만들어진 것이기에 불법적 근로자 공급으로 규제하면 된다.
그리고 이에 더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는 원청에 대해 노동법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가야 한다. 이는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상의 사용자 개념을 재해석하고, 입법적으로 확대하는 것에서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법의 원칙이 제자리를 잡게 해야 한다. 새로운 법이나 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며, 악법을 손보아 고치는 것도 자본의 대응 속에서 효과를 갖지 못한다. 악법을 폐지하고 노동법이 노동자 권리의 보장이라는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 굳이 에둘러 갈 것 아니다. 방향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향점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굳이 먼 곳에 둘 필요도 없다. 노동자의 투쟁, 그 투쟁을 통해 변화한 자본의 대응과 제도의 개악, 지금 비록 우리 손에 실질적 성과를 잡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투쟁의 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