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과연 지금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인사이트코리아에서 3년간의 투쟁 끝에 대법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을 받고 정규직이 되었을 때, 그리고 금호타이어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을 때 많은 비정규직들은 불법파견 인정을 받고 법적으로 승소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렇게 해서 2005년 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진정을 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아자동차는 화성공장에서 42명만이 불법파견을 인정받았고, 현대자동차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지만 정규직화로 귀결되지 못했다. 오히려 투쟁했던 많은 이들은 해고되고 그 뒤로 기나긴 법정 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2010년 7월 22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 씨가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이고 2년 이상 일했으므로 파견법에 의거해서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아무리 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정규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 해 겨울 투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투쟁이 중요성은 ‘투쟁으로 법적인 유리함을 현실화하겠다’고 한 것에 있지 않다. 그 때 25일간 공장을 점거했던 이들이 외친 것은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였다. 사내하청 노동자들 모두가 불법파견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것인만큼 불법파견을 인정받고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만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 요구와 투쟁에 우려를 표했다. 법적으로 승소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현대자동차가 어쩔 수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시킬텐데 왜 굳이 점거투쟁을 하느냐고 말이다. 이 입장은 두 가지 전제를 갖고 있다. 하나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노동자들의 문제까지 지금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투쟁을 하는 것 자체가 현대자동차를 자극해서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법적으로 잘 해결하고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풀라는 주문이었다.
결국 25일 파업은 정리되었고 교섭의 성과도 남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투쟁이 필요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야말로 투쟁이 필요함을 보여준 것이다. 현대자동차 사측은 대법원에서 노동자들이 이기더라도 호락호락 정규직 일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 판결은 최병승 개인의 판결’이라고 주장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내린 최병승 동지에 대한 부당해고 판정에도 불구하고 다시 행정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결코 노동자들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자동차 비정규3지회와 현대자동차 지부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와 관련한 특별교섭 요구를 확정했다. 그 요구는 모두 6가지로,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수배와 고소고발, 징계와 해고 등을 철회하고 명예회복과 원상회복, 회사 측의 불법행위와 노동탄압에 대한 공개사과, 더 이상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노조와 합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 즉각 중단,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 보장 등이다. 이 요구는 지금까지의 우려나 비판을 넘어 여전히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가 중요하다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요구는 대법원 판결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요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이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았을 때 그 판결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인사이트코리아라는 회사는 실체가 없는 회사이므로 사실상 SK(주)가 노동자들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년이상 일했는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즉 파견법의 조항에 상관없이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판결에 안주하지 않고 투쟁으로 정규직 노조를 민주화하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의 판결은 분명하게 2년이라는 조건 없이 정규직으로 간주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을 저질렀다는 것은 파견을 해서는 안되는 제조업에서 현대자동차가 직접 관리감독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파견의 형식으로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런 상황에 ‘파견법 조항’을 적용하여 2년 이상 일했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불법파견은 파견법의 적용을 받아서는 안 된다.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노동자들을 고용했다고 간주하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2년이 단 하루가 되었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으로 일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불법파견에 합법파견의 조항을 적용했다. 결국 불법파견도 합법파견과 같은 효력을 갖도록 만들어버린 셈이다.
파견법이 이렇게 불법파견을 묵인하게 하는 효과를 갖게 될 것임은 이미 예견된 바이다. 어떤 경우에도 간접고용, 중간착취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중간착취를 금지한 직업안정법에 예외조항을 만들어서 합법파견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파견법’이다. 그런데 이 파견법으로 불법파견 전반을 규율하고 있으니, 결국 파견법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모든 간접고용을 정당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사내하청으로 2년 이상 일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설령 그 불법파견으로 인한 피해자라 하더라도 전혀 구제받을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다. 사내하청 업체들은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면 그 중간착취 구조를 없애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현대자동차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 그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법원 판결의 한계를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 중간착취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원칙이 훼손되고 불법파견을 저질러도 2년 이하로만 사용하면 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형성된다. 결국 노동자들이 2년이 되기 전에 해고시키게 되면 사내하청이라는 중간착취 구조가 합법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파견법을 철폐하라고 하면서 싸운 이유는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사내하청이라는 이름으로, 도급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벌어지는 중간착취의 구조를 끊어내기 위해서이다. 그로 인한 저임금과 고용불안,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불인정으로 인한 노동권 박탈이라는 현실을 뛰어넘어 간접고용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바로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 내부의 분할과 위계를 뛰어넘겠다는 의지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는 요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외쳤던 그 마음으로 1차 하청과 2, 3차 하청의 차이와 위계를 뛰어넘겠다는 의지이다. 현대자동차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신규채용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1차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고용을 어느 정도 보장해왔다. 물론 그것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신 2차 하청 노동자, 3차 하청 노동자, 그리고 한시하청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하청노동자들의 위계가 생겨나고 있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 노동자들을 모두 껴안고 함께하기 위해서 노력해왔지만 현대자동차 자본은 철저하게 1차 하청을 중심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주고, 다른 하청과의 차이를 벌려왔다. 원청과의 교섭은커녕 업체폐업이라는 탄압에 맞서기도 버거웠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힘겨운 투쟁을 거치고서야 간신히 바지사장인 하청업체와 교섭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2차나 3차 하청업체들은 그런 투쟁이 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투쟁은 잘 이뤄지기 어려웠다. 인원조차 파악되지 않는 한시하청의 조직과 투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를 이유로 이런 위계를 조금씩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대공장 사내하청 운동은 계급적 단결의 가능성과 운동적 시야의 확장에서 조금씩 후퇴하기 시작했다. 1차 하청을 중심으로 하여 어느 정도 임금과 노동조건, 그리고 고용의 안정을 보장받는 것에 안주하면서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받아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물으면서 정규직화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 그리고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전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를 함께 부여안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과 계급적 단결을 기치로 해왔던 대공장 사내하청 운동이 더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요구를 제출한다. 모진 탄압을 견디다보니 ‘현실성’이라는 틀에 안주하게 되었던 자신의 운동을 돌아보고, 법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내하청과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 사이의 위계를 이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현대자동차라는 거대자본과 맞서 싸워서 과연 이 요구를 관철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갖는다. 만약에 민주노조운동 모두가 단결하여 최선을 다해서 싸운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지금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3지회만의 힘으로 이 요구가 온전하게 관철되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는 요구가 중요한 이유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말 힘에 부쳐서 모든 요구를 온전하게 관철시키기 못하게 될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요구의 정신은 그렇게 힘에 부치는 순간이 올 때, 법적으로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완전하게 관철시키지 못하더라도 가장 힘들고 나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우선 고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이 이 요구에 반영된 정신이다. 1차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노동자들이 그런 결의를 갖고 이 싸움에 임한다면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신뢰감을 갖고 함께 투쟁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설령 이번에 모든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더라도 이후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전시키는 가장 큰 힘이자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 운동은 그런 계급적 단결을 축적함으로써 발전해온 것이다.
공장의 담벼락을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25일간 공장을 점거하면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그러나 정규직이라는 두터운 벽을 넘지 못했고, 불법파견을 저지르면서 거대한 자본을 쌓아올리는 현대자동차 사측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 투쟁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을 넘어서서 전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의지와 분노를 모으는 투쟁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이제 새롭게 준비되는 투쟁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제는 정규직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함께 투쟁한다는 것은 일방에 기대지 않고 서로가 독립적으로 서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제대로 연대투쟁을 하고자 한다면 우선 2차 하청과 3차 하청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사내하청 모두의 요구를 갖고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보자고 호소해야 한다. 그 힘이 조직되어 스스로 투쟁할 수 있는 힘이 형성될 때 정규직에게 의존하지 않고, 정규직과 같이 투쟁하고 서로의 투쟁에 힘을 보탤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투쟁은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저지른 행위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한 개인에게 한 짓이 아니라, 현대자동차라는 공간에서 일했던 수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적으로 착취하고 노동권을 빼앗은 행위이다. 이런 범죄행위가 경영권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는 이런 범죄행위를 하고도 처벌받지 않는다. 기업에 대해서 처벌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점차로 이런 악독한 범죄행위를 만들고, 그 범죄행위는 결국 삼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더 이상 기업의 경영이라는 이유로 불법적인 행위와 노동권에 대한 침해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알려야 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회사는 결국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사회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이 투쟁은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전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파견이라는 이름으로 간접고용을 허용하고, 심지어는 파견을 하지 못하는 업종도 파견법에 의해서 면죄부를 주는 이런 행위를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을 부려먹고 거대한 부를 쌓아올리면서도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는 이 간악한 제도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 누구도 타인의 노동에 끼어들어 중간착취를 하게 해서도 안 된다. 이 당연한 이야기 하나를 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힘든 투쟁을 거쳐왔다.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판정을 계기로 시작된 이 투쟁이 간접고용을 없애고 원청이 진짜 사용자라는 것을 밝히고 책임을 물리는 그런 투쟁으로 발전하도록 모두가 힘을 다하자. 그 길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승리도 가능할 것이며,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는 요구의 의미가 진정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