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동절을 앞둔 이맘때면 익숙한 풍경들을 마주한다.
몇 년 전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가 노동절에 재량휴업을 실시하면서 노동절에도 일을 해야 하는 부모들이 딱히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들, 어렵게 부탁해서 아이를 맡겼는데 방과 후 교실마저 쉬는 바람에 누가 아이를 데리러 갈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맞벌이 부부들, 규모도 크고 노동조합도 있어서 노동절에 다 쉬는데도 공장에 나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엄연한 노동자이지만 노동절에 출근하는 교사와 공무원들 그리고 학교 등 관공서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들...
노동절이지만 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절에 쉬는 노동자들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노동자들도 있다. 원인은 반쪽짜리 노동절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반쪽짜리 노동절이 되었을까?
원래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1957년까지 10여년동안 대한노총이 중심이 되어 5월1일을 메이데이로 기념해 왔다. 그러다 1959년부터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지시에 의해 5월1일 메이데이 행사를 중지하고 대한노총 설립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변경해서 기념하다가, 1963년 4월17일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을 제정하면서 이날을 '근로자의 날'로 칭하고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노동계에서 세계 각국에서 5월1일을 메이데이로 기념하는 것에 맞추어 근로자의 날을 5월1일로 변경할 것과 원래의 명칭대로 노동절로 변경할 것을 꾸준히 요구했다.
이후 1994년 국회에서 드디어 근로자의 날을 5월1일로 변경했다. 그러나 노동절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는데, 당시 국회 법률 심사보고서에는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근로자의 날을 원래의 명칭대로 노동절로 변경하여 달라는 노동단체 등의 요구에 대해서는 현행 <국경일에관한법률>에 따라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로서 4대명절(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에 한해서만 '절'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헌법> 제33조 제1항에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한 것을 비롯하여 모든 노동관계법률에서 법률용어로서 "근로자"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근로자의 날을 국경일에 해당하는 국민적 축제의 '절' 개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의욕을 더욱 높이는 기념행사의 '날'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국민적 정서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고려해야 할 것임.” - 1994년 3월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 중 개정 법률안 심사보고서 중에서
한 마디로 우리나라에서 메이데이는 ‘열심히 일한 노동자에게 하루 쉬고 더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기념행사를 하는 날인 것이다. 그러니 반쪽짜리 노동절이 될 수밖에...
모든 기념일은 이데올로기
어디선가 모든 기념일은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곱씹어 볼 말이다. 노동해방이 이루어지면 노동절은 무슨 의미일까? 노동절이 노동절로 기념된다는 것은 인간이 노동에 예속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노동은 과연 인간의 본질 중 하나인가? 노동은 무엇인가? 임금노동만이 노동인가?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비생산적인 다시 말해서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인가? 그러면 노동절은 노동하고 있는 노동자들만의 기념일인가? 실업상태에 있는 노동자 즉, 실업자는 노동절을 기념할 자격이 없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장애인의 날은 기념하면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기념하지 않는 이유,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을 국가의 명절처럼 기념하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메이데이를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는 이유에도 이데올로기가 있다.
노동절의 반쪽을 찾아서!
▲ 2003년 113주년 노동절을 맞아 전북지역 비정규직 철폐 실천단 노동자들이 전북 노동사무소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절에 쉬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출처: 참소리 자료사진] |
몇 해 전인가 전북지역 일반노조 소속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전북 각지를 순회하면서 “노동절에 쉬고 싶다!”는 투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순회투쟁에 참가한 한 비정규직노동자가, 정규직노동자에게 노동절은 하루 유급으로 쉬거나 기념행사에 가는 날일지 몰라도 비정규직노동자에게 노동절은 투쟁하는 날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정규직노동자는 쉬지만 이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노동절에 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결근(?)을 하고 거리에서 쉬게 해달라고 외쳐야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노동절의 반쪽을 찾아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