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핵운동의 요구
현재 일본의 반핵운동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막고 에너지정책을 전환하는 것, 일본정부 및 도쿄전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운동의 목표와 요구는 모아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 반핵운동의 요구에 대해 정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자.
핵발전소 재가동 저지와 에너지정책 전환
후쿠시마 사고 이후 54기에 이르는 일본의 핵발전소는 정기점검에 이은 내성검사를 받느라 잇따라 멈춰, 3월 11일 현재 2기만 운전중이다. 오는 5월에는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이 중지될 예정이다. 이대로 가면 핵발전이 없는 상태를 맞이하지만, 일본 정부는 현재 재가동을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일본 반핵운동 진영에서 가동 중단된 핵발전소의 운전 재개를 막는 것이 현재 가장 핵심적인 요구이다.
핵발전소를 재가동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는 전력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논리는 설득력을 잃었다. 지난해 일본정부는 전력소모가 많은 여름을 핵발전 없이 맞이하면 약 9%의 전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하였는데, 이는 9%만 전력소모를 줄이면 핵발전 없는 사회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력부족의 논리에 맞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독일 등을 좋은 예로 삼아 일본 반핵운동 내에서도 실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엔 핵발전 옹호 논리가 전력 부족에서 핵발전소가 폐쇄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고용문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도 렌고(聯合)등 일본의 거대노총은 핵발전 관련 노동조합이 소속되어있다는 것을 이유로 핵발전소 폐쇄에 대해 반대했고, 아직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탈핵이라는 사회적 흐름에 대해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대하여,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반핵운동은 고용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하는 가운데, 렌고 등 노동조합의 입장을 바꿔내면서 핵발전소의 가동 중지를 못 박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일본정부 및 도쿄전력에 대한 책임을 묻자
일본 정부는 사고 후 피난 기준을 연간 20mSv로 상향 조정했다. 원래 일본 법률에는 연간 1mSv를 허용치로 적시하고 있으니, 기준치를 20배나 올린 셈이다. 기준치의 상향 조정에 대해 일본 반핵운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첫째는, 원래 법률에 적시된 기준치로 보면 현내 거의 모든 지역을 피난 구역으로 설정해야 하고, 둘째로 본래의 법적 기준으로는 배상 대상이 너무 커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 반핵운동에서는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해 정보공개와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도쿄전력의 해체까지 요구되고 있다. 도쿄전력 뿐만 아니라 일본에 지역별로 있는 전력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송전과 발전 기능을 분리하라는 요구도 있다. 일본은 전력회사가 송전 기능을 독점하여, 전력회사의 승인을 받은 업체만 자신들이 발전한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 전력회사가 이런 권한을 이용해 재생에너지 개발을 막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피폭을 줄이기 위한 노력
요코하마 선언의 요구 중 첫 번째 항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권리’였다. 지난해 3월 11일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 수준의 생활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피폭,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피폭 문제이다. 정부가 정한 연간 20mSv라는 피폭허용치는 어린이들에게도 동일한데,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후쿠시마현 주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20mSv라는 잠정적 기준의 철회를 문부과학성에 요구하는 활동이 이루어졌다.
아이들을 방사능 피해로부터 지키려는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개인 및 단체들이 연대하여 각각의 활동을 서로 지원하는 네트워크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식품의 안전을 검사하고, 정부를 대상으로 한 교섭, 후쿠시마 지원, 방사선치 측정 등의 활동을 자체적으로 벌이고 있다.
핵발전소 수출저지 및 핵사이클의 완전철폐
1970-80년대에 일본 내에 핵발전소가 굉장히 많이 지어졌지만, 1990년대부터는 차츰 줄어들어 사고 직전 건설 중이었던 것은 2기에 불과했다. 도시바, 히타치, 미츠비시 등 핵발전소 건설 회사는 국내 수요를 찾지 못하자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운 것은 후쿠시마 사고에도 핵발전소 수출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산업성의 핵발전소 수출 정책은 변화가 없다. 2011년 6월 도시바와 히타치는 핵발전소 건설 시찰 건으로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는데, 이 시찰 후 도시바와 히타치가 리투아니아 핵발전소 건설의 우선적인 교섭권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일본 반핵운동의 비판이 거세다. 작가인 사와치 히사에는 2월 11일 도쿄 반핵 집회에서 “정부는 자신들이 일으킨 사고도 수습하지 못하면서, 외국에 핵발전소를 팔려고 하고 있고, 세계의 시민들은 싫어하고 있다. 이것이 국적을 뛰어넘은 시민의 의사다” 라고 발언하며 정부의 핵발전소 수출을 비판했다.
일본 반핵운동은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발전소가 군사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핵사이클 자체를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핵 탈핵을 위한 여러 활동과 전망
이러한 요구를 가진 반핵운동은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올 1월 14-15일에는 요코하마에서 탈핵 세계회의가 열렸는데, 1개월여의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1만 1500명이 참가하여 주최측을 놀라게 했다. 탈핵 세계회의에서 참가자들은 요코하마 선언을 채택하고, 선언에 포함된 8가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핵발전소 없는 세계를 만드는 행동의 숲’ 활동을 시작했다. 행동제언은 개인적인 실천에서부터 대정부요구까지 다양하다.
직접 행동도 계속되고 있다. 3월 11일에는 16000여명이 후쿠시마 현지에 모여 반핵·탈핵을 외쳤다. ‘탈핵 텐트’라 불리는 농성장이 도쿄의 경제산업성 건물 앞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사요나라 핵발전소’ 1000만 서명은 2월 말까지 420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5월 말까지 1,000만명을 목표로 계속될 예정이다.
일본의 반핵운동은 이렇게 명확한 요구를 가지고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후쿠시마 현지 주민들과 후쿠시마 외부에서 벌이는 반핵운동과의 온도차가 있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는 탈핵 운동의 주요한 원동력이지만, 이것이 후쿠시마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난하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후쿠시마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생활 근거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원전의 위험성이나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소리에 대해서 점점 짜증이 나고, 오히려 방사능 오염은 별거 아니다, 괜찮다는 말에 위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일상생활과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향토애나 애국심과 혼동되기도 한다. 집회에서 ‘다시 한 번 사고가 일어나면 일본은 끝입니다.’ ‘일본을 사랑합니다.’ 등의 수사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피해가 장기화될수록 후쿠시마 주민들은 버티기 힘들어지면서, 반핵운동과의 충돌이 심해 질 수 있다.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이것이 반핵운동의 내부에도 침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며 운동을 지속할 것인가, 현재 일본의 반핵운동이 처한 과제이다.
탈핵 움직임에 대한 원자력 촌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소위 경제전문가들은 ‘상당한 빚을 지고 핵발전소를 지었으므로 국가 재정 차원에서도 핵발전소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그 이면에 국가의 핵발전소 사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그에 따른 기득권이 있다. 핵발전소로 인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의 연대는 강고하다.
1960년대 안보투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이번에야말로 후쿠시마의 희생 위에서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느냐라는 기로에 서 있다.
2012년 한국에서
핵발전소 사고나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에 관한 숱한 문헌과 자료를 읽다보면,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기 쉽다. 핵기술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사고정지에 빠지는 것은 비단 후쿠시마의 주민들만이 아니다.
그러나 핵발전의 위험을 알면서도 목숨 걸고 싸우지 못했다고, 사고의 책임의 절반은 우리에게 있다는 일본 활동가들의 참회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후쿠시마의 사고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보고도 여전히 ‘설마’ 하며 적당히 싸운 오늘을 후회할 내일이 올 수 있다.
우리는 방사성 물질의 오염에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의 반핵운동은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일본에서 ‘핵발전소 수출은 안된다’고 할 때 ‘일본이 안하면 한국이 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걸 막아야 한다. 서로 경쟁시키며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려는 논리를 꺾어야 한다. 그래서 두 나라가 함께 핵발전을 중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가공할 사고의 피해가 자연스레 탈핵의 흐름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싸움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