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 일요일. 2012년 4월 15일은 허세욱 열사가 이 땅을 떠난 지 5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FTA폐기, 노무현정권 퇴진을 외치며 산화하신 지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대추리는 미군기지 공사현장이 되었고 정권이 바뀌고 용산, 쌍용, 재능, 기륭, 두리반, FTA, 강정... 수많은 아픔의 시간이 흐르고 모란공원에 빈자리는 점점 찾아보기 힘듭니다. 승리의 기억은 한순간이고 절망에 처절히 몸부림치는 시간은 늘어만 갑니다. 정권이 바뀌고 MB가 악이라며 저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그리하여 야권연대가 만들어졌습니다. 민주당은 어느 누가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면죄부가 생겼고 처음부터 끝까지 MB심판을 외칩니다. 그리고 그 손을, 그 몸을 통합진보당이 끌어안고 잡았습니다. 민주와 진보가 만났고 노무현과 전태일이 만났다고 말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참여정부 시절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죽음으로 항거하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말한 뒤, 그것을 철저하게 이행합니다. 이용석, 배달호, 전용철, 홍덕표, 허세욱 외 많은 열사들이 온몸을 바쳐 저항했지만 날아온 것은 공권력을 앞세운 탄압이었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는 김선일 씨가 저항세력에게 붙잡혀 살려달라고, 한국군 파병을 철회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쳤던 그 다음날.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군 파병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일하기 위해 타지에 건너간 노동자는 그렇게 목숨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이 외에 수없이 열거하기 힘든 많은 일들이 전 정권에서 자행되었습니다. 이것은 가상이 아닌 흘러간 진실이고 역사입니다. 지금 정권이 악이고 지난 정권이 선이었다는 구도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여정부를 대표했던 대통령이 죽고 사람들은 그를 기리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합니다. 노무현과 전태일이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정하지 못합니다. 노무현과 전태일이 손을 잡았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일 뿐더러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태일과 노무현이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무엇을 했는지, 그 모든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노동자를 생각하고 전태일을 기억한다면 ‘죽음으로 항거하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허세욱 열사의 이름이 유독 많이 불렸습니다. 한 쪽에서는 합당 명분으로, 한 쪽에서는 어떻게 신자유주의 정당과 합당을 하냐며 고인이 된 열사를 기억하고 환기시켰습니다. 그렇게 열사는 하늘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합당을 하고 야권연대가 성사된 지금, 허세욱 열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당신들만 열사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고, 19대 국회에서 FTA를 재협상하고 잘못된 점을 바꾸어 낼거라고.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공허한 울림을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허세욱 열사가 원했던 세상은 단순히 FTA 폐기만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당당히 이 땅의 주인이 되고, 그 무엇에도 휘둘리고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고 단단한 노동자 민중의 정당이 바로서 제 역할을 다 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에 따라 우리는 4월 15일 열사의 기일을 맞이하여 통합진보당이 허세욱 열사와 수 많은 선배 열사들의 뜻을 다시금 기억하고, 한 때만 말로 끝나는 열사정신 계승이 아닌, 진정성 있는 진보정당으로서 활동하도록 경고하고 지켜볼 것입니다.
아래는 허세욱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도문 전문입니다.
열사는 당신들과 손잡지 않았습니다
허세욱 열사를 추모하며
한 기자의 기억 속에 유달리 각인된 사람이 있습니다. 주로 학자들과 관련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에 초로의 노동자가 참석하여 열심히 경청하고 필기하고, 토론에 임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깊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기자가 기억하던 노동자는 바로, 이제는 우리가 추념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허세욱 열사입니다.
지난 2007년 4월 1일, 한미FTA 협상이 타결 직전에 이르렀다는 소식에 열사는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 부근에서 스스로 몸을 불사르며 마지막 저항에 나섰습니다. 의식이 혼미한 채 병원으로 실려가는 그 순간에도 한미FTA 중단과 이를 강행하는 민중을 배반한 노무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열사는 결국 2007년 4월 15일 오전 11시 23분 화상 후유증 및 패혈증으로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비정규직 노동으로 힘겨워하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모금운동을 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열사께서 가시는 마지막 순간, 한미FTA를 반드시 막아달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2011년 11월 22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졸속적인 날치기와 야권의 무책임한 방관 속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FTA가 통과되었습니다. 패배주의와 흐지부지한 후속 투쟁을 이어가던 지난 3월 15일, 결국 한미FTA가 발효되고 말았습니다.
허세욱 열사의 정당이기도 했던 노동자 민중의 정당, 민주노동당은 MB 정부 심판이라는 미명 아래 “전태일 열사와 노무현 대통령이 손을 잡았다”며 구 참여정부계인 국민참여당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미FTA 철회의 이유로 끊임없이 허세욱 열사를 호명했습니다.
허세욱 열사를 기리고 추념하는 시민들이자 유권자들로써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묻고 싶습니다. 허세욱 열사가 눈을 감았던 2007년 4월 15일 당시 이 나라의 대통령의 이름은 무엇이었습니까? 대추리를 짓밟고 비정규직 보호법 통과시킨 정권, 집회시위에 관한 자유를 제한하고, 차벽과 산성을 쌓아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했던 정권이 과연 누구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민의 뜻을 전유하여 MB정권을 심판하기만 하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면 더 나은 세상이 온다는 당신들에게 답합니다. 허세욱 열사의 분신은 당신들이 자랑해 마지않는 민주정권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진보당’을 자처하며, 야권연대를 부르짖지만 정작 원외에 자리잡은 진보정당들의 말살을 동조 획책하며 신자유주의 정당과 야합하고, 또 스스로도 신자유주의의 피가 섞인 통합진보당의 탄생은 원칙을 저버린 정당과 원칙도 없는 정당의 결합일 뿐입니다.
전태일 열사도, 허세욱 열사도 결코 당신들과 손잡지 않았습니다. 아니, 열사의 손을 뿌리친 것은 당신들입니다. 진정 열사의 뜻을 받든다면 통렬한 자기반성과 실천으로 환골탈태해 주십시오. 이는 뒷전으로 둔 채 ‘진보당’을 자처하는 것은 전태일, 허세욱 열사는 물론 이 땅 위에 잠든 수많은 열사들의 뜻을 욕보이고, 그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한미FTA가 발효된 오늘날,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은 너무나도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허세욱 열사를 기립니다. 부디 편안하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열사께서 평안하실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통합진보당 또한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4월 15일 허세욱 열사를 추념하며,
허세욱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올림
* 4월 15일 오전 10시에 모란공원 정문에서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예정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