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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 노동의 시대

[연속기획-2012 비정규직](4) 노동행정의 대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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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나아가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하여, 국가로 하여금 노동자의 근로조건 보장에 노력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나아가 노동삼권의 보유주체인 국민의 원리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적법하고 적정하게 이행되고 있는지,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지 않는지를 감시감독할 의무가 있고 불합리한 근로조건이나 사용자의 권리방해 행위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민으로서의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에 대해 국가는 국가 스스로 적극적인 근로감독행정을 행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지난 1993. 12. 11. 다자조약 제1203호로 비준한 국제노동기구 제81호 협약인 ‘공업 및 상업부문 근로감독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Labor Inspection in Industry and Commerce)은 이와 같은 국가의 노동행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 협약 제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1. 근로감독제도는 다음의 기능을 수행한다.
(가) 근로시간·임금·안전·건강 및 복지·아동 및 연소자의 고용·그 밖의 관련사항에 관한 규정 등 근로조건 및 작업 중인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규정을 근로감독관의 권한 범위 안에서 집행하도록 확보하는 것
(나) 사용자 및 근로자에게 법규정을 준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관하여 기술적 정보 및 조언을 제공하는 것
(다) 현행 법규정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아니한 흠결 또는 폐해에 관하여 권한 있는 기관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

2. 근로감독관에게 부여된 추가적 임무는 근로감독관이 주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지장을 주어서는 아니 되며, 사용자 및 근로자와의 관계에서 근로감독관에게 필요한 권위 및 공정성을 어떠한 경우에도 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위와 같은 국내외적인 각종 규범들을 통해 미루어 보건데 국가는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일반적인 노동관계에서의 권리보호를 실질적으로 수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고, 국가는 노동자가 일정한 권리행사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사되는 권리로서의 노동삼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일정한 조치를 취해야 함은 물론, 노동자들의 개별적 권리의 행사에 있어 그 권리행사가 방해되는 경우 공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권리관계의 확인과 그에 따른 재산상 권리관계의 조정을 수행하는 민사적 방법이 엄연히 존재하더라도, 국가는 국가의 공권력 및 행정력을 통해 신속하게 노동자의 권리가 이행될 수 있도록 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론부터 이런 원칙론을 거론하는 것은 이러한 원칙과 현실사이에 일정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63년 독립관청으로 노동관련 업무를 담당해 오던 노동부가 2010. 6. 정부조직법 개편으로 고용노동부로 바꾸면서 정부는 노동행정의 방향을 과거의 ‘노동’에서 ‘고용’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개진한 바가 있는데, 그 당시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에 집중해야 할 노동부가 경제정책의 하위영역에 편입되려고 한다는 비판이 일었던 사건은 오늘날 한국 노동행정의 위치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적절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행정은 지속적으로 노동권 보호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권리가 적절히 준수되도록 하는 것 보다는 고용시장정책에 더 매몰되어 있는 듯하다.

정부의 노동행정이 노동권 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국가노동정책을 둘러싼 노-정간의 갈등은 마치 사용자와 노동자의 대결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미 비정규직법 개악과정부터 시작해서, 이후 노동위원회의 권한 강화, 노조법 개정과정 상의 타임오프-교섭창구단일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과 노동권의 실질적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이에 사실상 반대의 의사를 가진 정부 사이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과거 노동법의 개정과정에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첨예하게 갈등하고 그 사이에 정부가 조정자의 역할을 자임하는 형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과 자세를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지난 연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뒤를 이어 많은 해고노동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비극적 상황이 이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정리해고제도의 개정 필요성에 동감하게 되었고, 야3당과 양대 노총은 공동으로 정리해고제 개혁을 포함한 노동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던 중 지난 2011. 12. 23.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차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입법을 반대하는 정부측 인사의 발언이 있었다. 당시 국회 회의록이 기록된 해당 인사의 발언내용을 옮겨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위원님 솔직히 지금 저희들 노동시장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업이 더구나 중견기업이 직접 채용하지 않는 데에서 저희들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직접 채용하지 않는 것을 국제사회하고 비교검토를 하면 기존 근로자에 대한 고용의 경직성이 너무 크다고 보고 모든 국제, 월드뱅크나 이런 평가하는 데에서 저희의 해고제도가 굉장히 엄하다고 평가받고 있고 기업들이 직접 채용을 이렇게 안하고 있는데, 그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보호를 더 강하게 하면 현재 있는 근로자는 약간 보호되는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직접 안 쓰게 되면 모든 근로자들이 하도급을 한다랄지 아까 전문위원님이 설명드릴 대로 채용 자체를 줄여버린다든지 해외로 나간다랄지 이런 부분들이 사실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현재도 모든 저희 노동관계법의 항상 지적받고 있는 부분이 해고나 정직이나 이런 부분의 유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직접 안 쓴다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강화하는 것은 저희들이 어렵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노동자 해고가 어렵다고 평가받는 마당에 무슨 정리해고 요건강화냐는 논리다 더불어 요건을 강화하면 하도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과연 고용유연성이 부족하냐는 현실인식의 차이는 그렇다고 하고, 하도급 노동의 증가는 또 다른 정부정책의 역점과제 아니었던가? 결국 정부의 강력한 반대와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거부로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하려는 입법은 무산되었다. 위 대목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노동정책은 매우 시장친화적이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노동권 침해의 현실을 여하하게 해결하려는 정책당국의 의지가 전혀 읽혀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처럼 노동정책을 전체 시장질서의 일부로 보고 고용정책이 수립되는 방식은 어제 오늘의 현상은 아니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물론이고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러한 노동행정관료의 시장주의적 태도는 그 강도의 정도만 달리할 뿐 별반 달리진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노동행정관료의 시장주의적 노동정책은 복수노조와 타임오프로 상징되는 노조법개정과정에서와 같이 노동권의 정수리를 직접 타격점으로 삼아 전개되었고, 다시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계는 영원한 라이벌인 경영계가 아니라 정부를 직접 상대하면서 비판의 공세를 펼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우리는 노동의 관치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관치 官治’란 헌법이나 법률이 형성한 자치적 영역에 대해 국가 혹은 행정기관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관리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치는 자치적 관리를 보장해야 할 주체들이 이에 반하여 직접적으로 이를 관리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다분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의 관치는 노사간의 자율적인 결정을 가로막는다. 이는 노사자율에 따른 근로조건 결정의 원칙에 반한다. 국가의 책무는 노사가 공평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힘의 균형을 맞추고, 논의가 파행되지 않도록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것에 제한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여기서 국가 또는 정부가 외형적으로 중립성을 가지면서 실질적으로 반노동적인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이는 허용될 수 없다. 노동의 관치를 제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19대 총선거를 목전에 두고 많은 정당들이 앞다투며 각종 노동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사회의 노동현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한 현상을 역설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그와 같은 입법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 더군다나 과거로부터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있는 경험칙에 의해 도출되는 그러한 의구심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입법도 그것이 적절히 해석되고 적절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림에 떡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약속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노동행정의 대대적인 혁신을 요청해야 한다. 노동권 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노동행정, 노동자와 사용자의 교섭평등의 원칙이 보장되는 노동행정을 요구해야 한다. 그와 같은 방법론이 포함된 입법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의 노동악법철폐 투쟁은 일정한 완결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